전숙

친정어머니가 싸주신 봇짐을 풀면
어머니의 꿀단지에 절여있는 설운 맛에
내 몸의 여기저기 마른 구멍들에서
축축한 것들이 울먹울먹 스며 나왔다
어머니는 귀한 것이나 맛난 것이 생기면
생인손처럼 아린 막내딸이 눈에 밟혀서
큰 보자기에 차곡차곡 좀들이로 아껴두셨다
한 놈이라도 봇짐에서 도주할까싶어
어머니는 몇 번이고 고를 단단히 내어
매듭을 묶어두셨던 것인데
나는 어머니의 매듭을 풀다가
젖은 구멍들에 피멍이 들곤 하였다

우리의 생도 그랬을 것이다
귀한 것들을 그득하게 넣어
한 생의 봇짐 단단히 묶어주신 손이 있었으리라
나는 그 첩첩의 매듭을 하나씩 풀 때마다
초경 같은 선홍색 통증이 울컥 치밀어오르곤 하였다
때로는 소용돌이치는 겹겹의 파도에 허우적거릴 때도
텅 빈 객석에서 들려오는 그 공허한 박수소리에도
다음 매듭을 풀기 위해 피멍든 마디마디 힘을 주었다
내 생애의 매듭이 모조리 풀리면
사대삭신 쭈욱 펴고 드러누운 내 봇짐에
얼마나 공들인 꽃댕기가 매여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