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울 만큼 배운 사람들이 텔레비전에 나와서는 이런다.

저희 나라는 땅은 좁지만 뛰어난 인재는 많아서….

분명히 내용은 자부심이 가득 찬 것인데 ‘저희 나라’라는 한마디에 그만 들을 것 없는 말, 듣기 싫은 말이 돼버린다. 언뜻 보기에는 겸손한 표현 같지만 알고 보면 ‘저희 나라’는 망발에 가까운 말이다.

먼저 외국인과 이야기할 셩우, 단순히 생각해 봐도, 자기 나라를 낮춰 말해서 도대체 누구에게 겸손해지려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또 누가, 어떤 권리로 감히 ‘나라’를 ‘낮춰’ 말할 수 있겠는가. 대한민국 대통령이라 한들 ‘우리나라’를 낮추어 ‘저희 나라’라고 말할 권리도 없고 그럴 힘도 없다.

외국인과 이야기할 때는 “우리나라는 말이야!….” 하고 되레 자부심 강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보기 좋고 그런 우리에게 외국인들도 더 호감을 가질 것이다.
그뿐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끼리 이야기할 때도 문제가 있다.

아래 표현을 보자.

(가) “여보, 저희 집에 가요.”
     "아빠, 저희 집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요!“
(나) “선생님, 저희 집에 가셔요.”
     “아저씨, 저희 집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요!”

(나)는 괜찮지만 (가)는 어색하다. 이 두 보기 글의 차이는, ‘여보’와 ‘아빠’는 ‘집’에 속해 있지만 ‘선생님’과 ‘아저씨’는 그렇지 않다는 것.

다시 말하자면, 같은 집단의 구성원들끼리 이야기를 할 때는 자기가 속한 집단을 낮춰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아니 낮춰서는 안 된다. 그 때문에 (가)는 “여보, 우리 집에 가요”와 “아빠, 우리 집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요!”라야 옳은 것이다.

정상적인 직장인이라면 외부인과 이야기할 때는 “저희 회사는…”이라고 하고, 회사 동료와 이야기할 때는 “우리 회사는….”이라고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이치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끼리 이야기하면서도 ‘저희 나라’라고 부를 까닭이 없는 것이다.

(이진원의 ‘우리말에 대한 예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