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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과 둘이 아닌 원동院洞역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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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5호] 승인 2024.03.25  06:4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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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채석 기행작가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가 기지개를 켜고 불쑥 튀어나온다는 경칩과 봄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춘분 사이의 따스한 어느 봄날, 나는 부산 구포역에서 열차표 한 장을 손에 꼭 쥐고 객석에 앉았다. 열차가 콘크리트 숲과 같은 고층건물이 즐비한 도심을 지나자 창문 너머로 나타나는 풍경은 문명과 자연의 대비랄까. 파노라마와 같은 낙동강의 유장함이 답답하고 응어리진 내 가슴을 환하게 열어 주었다. 정녕 봄이었다.

열차는 왼쪽에 강을 따라 스치며 반대편으로의 넓은 들판은 이제는 들판이라는 정경을 신축건물들에 의해 상실당하고, 예전에 섬처럼 홀로 둥실 떠 있던 산은 그 모습 그대로다. 
 
산의 서쪽 가파른 지형에 다닥다닥 붙여 지은 집들이 있는 마을, 경남 양산시 물금읍 남부동이다. 1930년대 양산 농민봉기 사건을 모티브로 한 김정한의 소설 『산서동 뒷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곳으로 들판은 상전벽해가 따로 없이 빼곡한 아파트촌이다.
 
달리는 열차는 물금역을 지나 오봉산과 임경대, 용화사가 있는 원동의 화제리를 지난다. 이곳 역시도 김정한의 소설 『수라도』의 배경이 되는 곳이다. 소설에서 베랑 길이 있은 곳은 낙동강 자전거 종주도로의 일환으로 강물 위로 방부목 다리가 2km에 이른다. 낙동강의 옛 이름을 딴 ‘황산강 베랑길’이다. 베랑은 지방 방언으로 절벽이나 비탈진 곳을 이르는 말이다. 옹색할 정도로 협소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열차는 원동역에 도착했다.
 
원동은 영축총림 통도사와 봄이면 진달래와 철쭉이 번갈아가며 아름다운 천성산, 울창한 숲 사이로 경관이 수려한 내원사 계곡, 사시사철 풍부한 물이 떨어지는 홍룡폭포, 가지산과 영축산 등 고봉을 타고 흘러온 물이 태고의 비경을 간직하며 흐르는 배내골, 낙동강의 낙조를 가장 아름답게 조망할 수 있는 천태산 등이 있는 양산의 가장 서쪽에 위치하며 낙동강에 접해있는 전형적인 시골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열차에서 내려 역에 비치된 여행자 스탬프를 수첩에 꾹 누르고 날짜를 적었다. 찍힌 그림은 원동역과 매화꽃이 어우러진 그림으로 ‘매화의 아름다움이 있는 원동’이라는 글이 들어 있다. 
 
동안 여행을 하면서 역을 들고 날 때마다 의식처럼 행하는 일이다. 많은 날들이 지난 후에 스탬프 그림을 보면서 “그래, 그때 내가 거기에 갔었지”라며 아련한 기억에 머물 때가 더러 있다. 이제는 하나의 습관이 되었다.
 
원동역 주변은 신부의 환하고 화사한 드레스처럼 철길 주변을 따라 겨울을 이겨내고 꽃봉오리를 연 매화가 하얗게 흐드러진 채로 상춘객의 마음을 붙든다. 달리는 열차도 주춤거리고, 흐르는 강물도 쉽게 흐르지 못하는 장관을 연출한다. 나 역시도 서성인다. 꽃은 아무 말 없이 피어만 있어도 환장하게 좋다. 그러나 살랑살랑 불어 가는 봄바람에 꽃잎 날리면 금세 잊힐 존재라는 게 몹시도 서글펐다.
 
울컥한 마음에 매화 밭을 뒤로하고 원동 면소재지 길을 걸었다. 고향에서 어린 시절에 거닐던 6~70년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착각이 일 정도로 낯설지 않은 풍경과, 독백처럼 혼자 웅얼웅얼 이야기를 나누며 들여다본 이발소는 모든 게 그대로인 것에 반가우면서도 묘한 감정이 일었다. 어제가 먼 옛날처럼 느껴질 정도로 하루가 바쁘게 새로운 시제품이 문명을 비웃고, AI가 인간의 지능을 능멸하려는 지경인데.
 
또 다른 풍경을 만나기 위해 나그네의 이동수단인 발걸음을 옮겼다. 낙동강 제방 위로 달리를 열차를 보며 천태산에서 흘러오는 물줄기 신곡천을 따라 걷는 길은 봄의 향연 그 자체였다. 진회색의 보송보송한 꽃을 피워낸 버들강아지가 그렇고, 수초 사이마다 푸른 싹을 피워 올리는 수양버들이 그랬다. 
 
매화도 물론이지만, 여기저기에서 저마다의 자태를 드러내며 봄을 알리기에 분주한 가운데 단곡 마을에 도착했다. 단곡 마을은 천태산으로 오르는 등산로 초입의 마을로 농가주택과 전원주택이 서로 조화를 이룬다. 마을 안 뒤편 언덕에 단층의 조그만 교회가 하나 있다. 불러 영광교회다. 마침 점심시간. 목사부부가 차려준 식탁은 농촌에서 일군 산물로 쑥국과 나물, 손 두부 등 겸손하고 소박하기 그지없는 시골밥상 그 자체다. 성도는 아니지만, 맛있게 먹고 한 끼의 일용할 양식에 고마운 마음을 담고 다시 원동역으로 향했다.
 
원동역에 들어서자 예전에 사용하는 대합실이라는 말 대신에 ‘맞이방’이라는 글귀가 그런대로 정겹다. 벽면에는 원동역의 역사와 같은 사진이 즐비하게 전시되어 있다. 
 
“내려갈 때 보았네/올라갈 때 못 본/그 꽃”이라는 고은 시인의 詩 <그 꽃>과 같이 열차에서 내려 나올 때는 못 보았는데 열차를 타러 가던 차에 만났다. 여러 사진 중에서 작가 미상이라는 한 사진을 열차가 도착하기 직전까지 오래도록 주목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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