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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영산동 2~4통 선창
김덕수 객원기자  |  najukd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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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4호] 승인 2024.03.10  22:4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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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재생으로 부활 꿈꾸는 상업중심홍어 숙성 명맥 유지

영산강에서 재첩잡고 물놀이하던 어릴적 추억에 짠물집 물로 배추 절이기도
·소금 창고며 동척, 일본인 가옥 등 일제 수탈흔적과 유일 내륙등대 있어
 

   
▲ 영산동도시재생사업을 통해 옛 영산포극장 자리에 청년창작소가 들어선다.

영산강변을 매립한 평지엔 일본인들이 살고 언덕배기엔 부두노동자들이 살았다. 일제의 수탈 거점이었던 만큼 쌀이며 소금 등을 저장하는 창고와 동양척식회사, 일본인 가옥 등의 흔적이 남아있다. 1992년 나주시가 펴 낸 나주시마을유래지에는 영산교 건너 양편이 항동과 중앙동으로 기록돼 있다.

남해바다에서 조업한 어선들이 유일한 내륙등대가 있는 영산포 선창가로 몰려들고 자연스레 생선이며 젓갈을 파는 어시장이 형성됐다. 죽전골목과 선창 일대는 인근 지역에서 온 상인과 소비자들로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붐볐다. 당연히 대중교통이 지나는 요충지로 1970년대 중반까지 금성여객, 장흥여객, 광주여객의 버스터미널이 있었다. 명실상부 상업도시의 면모를 자랑했다.

“60년대 중반부터 부모님이 운영하실 때는 여름에 장어, 겨울에 황복을 취급했다는 영일복집 양지연(71) 사장은 함석상자에 얼음을 넣어 저장하던 때라 제철에 나는 생선으로 요리할 수밖에 없었다동강면 양지리 주민들이 잡아온 생선을 주로 사용했다고 한다. 1980년대 중반 미국으로 이민 가서 5년여 살다 돌아와 부모님의 식당을 물려받은 양 사장은 낯선 땅에서 고생한 만큼만 하면 고향이 훨씬 살기 좋겠다는 생각에 돌아왔다그때 고생은 말로 다 할 수 없어 그저 눈물만 난다..

경남 남해군이 고향인 금산수산 홍희정(52) 대표는 홍어를 젊은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고급음식으로 알리고 싶다명절 잔치음식이라는 이미지를 벗기 위해 소량으로 고급진 보자기에 포장해 판매하고 있다고 한다. “여수시의 검도장에서 대학생인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는 홍 대표는 죽림동 삼성아파트에서 유모차를 끌고 가게까지 걸어오면서 아이와 꽃이며 나무, 새 등 자연이야기를 하다 보니 나주가 더 좋아졌다고 덧붙인다.

   
▲ 유일한 내륙등대가 있는 영산포 선창을 중심으로 생선과 젓갈을 파는 점포들이 즐비했다고 한다.

아파트가 생기는 걸 보며 집에서 썰어먹기 힘들겠다는 생각에 처음으로 홍어를 썰어 팔기 시작했다는 김지순(81) 씨는 농약 안 친 짚이 귀해 흑산도 홍어만 짚을 넣고 칠레산은 짚 없이 항아리에서 숙성시킨다고.. “열댓살부터 홍어와 인연을 맺어 칼질 한번이면 깔끔하게 썰어낸다는 김 씨는 보리타작 할 때 홍어 한점에 막걸리 한잔으로 배고픔을 이겨냈다배고팠던 시절을 이야기한다.

영산홍어() 강건희(76) 대표는 홍어 껍질의 콜라겐과 뼈의 콘드로이친으로 산업화에 앞장서고 있다. “여전히 어렵지만 성장 가능성이 충분하다며 자신감을 내보이는 강 대표는 국제적으로 저명한 SCI논문에 4편이나 실릴만큼 피부와 관절, 비만에 효과가 있음을 입증했다고 한다. 충북에서 태어난 이듬해 한국전쟁이 나는 바람에 경기도로 피난을 갔다는 강 대표는 서울에서 성장하고 부산에서 수산대학을 나와 원양어선을 타고 세계를 누비고 다녀 고향이 따로 없을 정도라며 부산에서 수산물업을 하던 80년대부터 영산포와 인연을 맺어 90년대 말에 전입했다고 한다. 강 대표는 남도음식명가로 선정된 홍어음식점 영산홍가도 운영하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홍어와 뗄 수 없는 인연이라는 영산포홍어 김영수(57) 대표는 전통을 지키는 것이 오래갈 수 있는 전략이라 생각해 수분조절 효과가 있는 황토흙집에서 옹기와 짚을 이용해 홍어를 숙성시킨다홍어는 습기에 민감해 적으면 마르고 많으면 썩는 성질이 있다고 한다. 옛 영산포 오일장이 있던 본영동이 고향인 김 대표는 2013년에 전통식품홍어명인으로 지정됐다.

수 없이 많은 또래 친구들과 함께 학교에 다니던 길이 전남미용고에 편입돼 사라졌다는 한양택시와 한진택시를 경영하는 이대수(71) 대표는 택시가 귀할 때인 80년대 초 기아 K303과 현대 포니 두 대로 사업을 시작했다착실히 일하는 직원 구하기가 힘들어 20대 택시 중 9대만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 언덕너머 영산포 오일장으로 이어지던 죽전골목의 풍경이 을씨년스럽다.

강변경로당에서 만난 대흥동(현 이창동)이 고향인 전정순(80) 씨는 밀물과 썰물이 있던 영산강에서 친구들과 함께 재첩 잡고 헤엄쳐 건너다녔다물이 빠질 때면 허리춤에 차는 물에서 수십명이 어울려 놀 때가 좋았다고 옛 시절을 떠올린다.

영산포역이 있을 때는 강진이며 해남 등지로 가는 손님들이 많아 택시가 돈벌이가 좋았다는 대흥동 출신 문인숙(79) 씨는 역도 없어지고 혁신도시가 생겨 사람들이 빠져나가는 바람에 경제가 다 죽었다고 한숨짓는다. 문 씨는 택시업을 하는 전북 정읍 출신의 남편과 결혼해 30여년 살다 2002년 고향으로 돌아왔다.

장성군 남면이 고향으로 영산동에 산 지 50여년 됐다는 임효자(83) 씨는 서너곳 있던 샘의 물을 길러 식수로 사용했다바닷물이 들어왔던 지역이라 지하수가 짭짤한 짠물집물은 김치를 절이거나 냉장고 대용으로 과일이나 야채를 담가두던 생활용수로 썼다고 한다.

서너번 물난리로 살림을 완전히 못 쓰게 된 적도 있다는 김월순(87) 씨는 건축현장에서 미장일을 하는 토수였던 남편이 일을 잘해 벌이가 괜찮았다고 한다. 다시면 영동리가 고향인 김 씨는 큰 딸이 남평초등 교장 김미숙이라며 어깨에 힘을 준다.

   
▲ 김영수(57세) 명인은 수분을 조절해주는 황토흙집에서 옹기와 짚을 이용해 홍어를 숙성하고 있다.

본채는 이창동, 앞마당은 영산동에 속하는 영산나루는 카페이자 펜션, 레스토랑을 겸하는 복합문화공간을 표방한다. 동양척식회사 문서고가 자리하고 있는 영산나루의 홍은영(56) 대표는 한주의 4일은 서울에서 직장에 다니고 3일은 영산나루에 와 있다컨텐츠홍보마케팅 분야에서 일한 전문성을 살려 나주와 영산포의 역사문화자원을 활용해 영화나 뮤지컬 제작자, 시나리오 작가 등의 워케이션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라는 뜻을 밝힌다.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풍부한 영산포는 일과 여가를 함께 즐기기에 최적의 장소라는 홍 대표는 직장생활 30년을 맞는 내년에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와서 본격적으로 일을 한번 저지를 생각(?)”이란다. 홍 대표는 서문 앞 서내동이 고향이다.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 이후 홍어의 거리가 조성된 선창 일대는 도시재생사업이 한창이다. 사이렌을 울려 시간을 알렸던 오포대가 복원되고 상생센터며 청년창작소, 공원 등이 조성될 계획이다. 도시재생이 성공적으로 진행돼 선창의 옛 영화를 되살릴 수 있기를 꿈 꿔 본다.

 

   
 

인터뷰/ 신정구 영산2통 통장

영산강을 한강처럼 개발해야 다시 살아날 수 있어

지금 CU편의점이 들어온 광주여객 터미널 자리에 영산포 최초로 지은 철근콘크리트 건물이 그 모습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영산2통 신정구(80) 통장은 이듬해인 1977년에 역시 처음으로 레미콘을 이용한 2층 건물인 이창동 흥부원예사(현 청록회센터)를 짓기도 했다언론계에 있던 선배들과 인연으로 영산포의 개발 필요성과 발전 가능성을 느껴 1975년 이사왔다고 한다. 영산포에 와서 회사를 차려 50여년 건설업을 한 신 통장은 10년 전 건강에 적신호가 와서 사업을 정리했다고 한다.

충북 영동군이 고향인 신 통장은 “6·25전쟁 때 경북 안동으로 피난가서 살다 군대 마치고 서울서 직장생활을 했다경기도 수원에 있는 농촌진흥청 원예시험장에서 받은 첫 월급7,500원으로 도저히 가정을 꾸릴 수 없다는 생각에 1년여만에 건설회사로 이직했다고 한다. “중앙정보부장과 건설부장관을 지낸 김재규의 동생이 경영하던 서진건설에서 받은 첫 월급이 32,000원이었다는 신 통장은 고교 선배이기도 한 김재규의 보문동 집에 세배가서 윷놀이도 했다박정희 최측근의 동생이 경영하는 회사였던 만큼 여의도 비행장 철거나 인천 동암역 건축과 같은 큰 사업을 할 수 있었다..

“‘알아 볼 것 다 알아본처고모 소개로 만난 집사람의 첫모습은 말 그대로 전형적인 현모양처였다는 신 통장은 교감선생님이던 장인어른이 월급봉투 그대로 꺼내 놓고 생활비와 본인 및 어머니, 딸 등의 용돈을 고르게 나누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고 한다.

영산동은 영산강을 터전으로 삼아 사는 유일한 동네라는 신 통장은 영산강을 한강처럼 개발하고 나주와 영산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저류지를 활용해서 사람들이 와서 먹고 놀고 자는 공간으로 만들 때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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