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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아름다운 이름 꿈 여울의 몽탄夢灘역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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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3호] 승인 2024.02.26  02: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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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채석 기행작가

역사를 거슬러 궁예의 명을 유지한 왕건이 후백제를 치려고 나주 동강까지 들어왔지만, 견훤 군사의 공격도 만만치는 않았다. 왕건은 졸지에 나주 몽송까지 밀렸다. 결국 견훤의 군사에 의해 포위를 당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날 밤이다. 초로의 노인이 왕건의 꿈에 나타나 호통에 이른다. 대업을 일겠다는 장수가 주변 상황도 모르고 잠만 자냐고, 영산강 물이 빠지고 있으니 빨리 강을 건너라고,

그리고 하류에 진을 치고 있다가 뒤쫓아 오는 견훤의 군대를 치라고 일렀다. 왕건은 꿈에 나타난 노인이 가르쳐 준 대로 군사를 재촉해 영산강을 건너 매복했다가 뒤쫓아 온 견훤의 군대를 공격해 승리했다. 이로 후백제 공략의 교두보와 함께 후삼국 통일의 초석을 일군 것이다. 그래서 이 일대의 지명을 몽탄이라 부르고, 이 일대를 흐르는 강을 몽탄강이라 부르는 연유다. 달리 꿈에 건넌 여울이다.

강물이 굽이치지 않고 여유 있게 늘어지듯 길게 굽어 도는 마을에 금남 최부 선생의 묘가 자리하고 있다. 그럼 사실적으로 최부(崔溥)는 누구이며 어떤 인물인가. 최부는 본인이 영면해 누워있는 느러지 마을에서 마주 보이는 영산강 건너에 위치한 나주 동강면에서 출생한 사람으로 조선시대 문신이다. 김광필의 문하에서 공부했으며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쳐 홍문관 부교리가 된 그해에 제주에 간 것까지는 좋았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했던가. 좋은 일에는 탈이 많다고 부친상을 당해 뭍으로 나오다가 망망대해에서 풍파로 표류하다 중국 저장성에 이른다. 반년 뒤 육로를 통해 그토록 그리던 조선 땅 한양에 당도했다. 임금의 어명에 따라 표해록漂海錄을 집필했다. 쉽게 말해서 바다를 떠돈 이야기를 쓴 것이다. 험한 뱃길에서 죽느냐 사느냐의 위태로움이나, 중국 연안의 바닷길이나, 중국의 풍속이나 기후, 산천, 도로 등을 기록한 것이다.

그는 이후에 수차를 제작해서 충청지방의 가뭄 해소에 도움이 컸으나, 김일손 등 신진 사류의 유자광 중심의 훈구세력에게 화를 입은 무오사화로 유배되었다. 그러다가 연산군의 죽은 어머니에 대한 보복 성격의 갑자사화로 사약을 받고 세상을 등졌다. 그러한 최부의 무덤이 있는 느러지 마을의 영산강 강줄기를 따라 잠시 내려오면 식영정(息營亭)을 만난다. 담양의 광주호 상부에 접한 식영정(息影亭)과는 같은 음이지만, 다르다.

담양의 식영정은 그림자도 쉬어간다는 의미고, 이곳 몽탄의 식영정은 쉼을 경영한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맞는 말일까. 첨언하면 그냥 놀 듯 쉬는 것이 아니라 쉬면서도 후학을 가르친다는 심오함이다. 이유야 어떻든 정자에 이르면 우선 쉬어 주는 게 예의다. 나이 500년의 아름드리 느티나무와 팽나무와 함께 너울너울 흘러가는 영산강을 굽어보면서 나도 시인이고 묵객이라고 억지를 부려도 누구 하나 개의치 않을 듯싶다.

이러한 식영정은 우승지, 통정대부, 형조참의, 영암군수, 진주목사, 남원부사 등 요즈음 지방자치장들이 명함도 못 내밀 관직을 두루두루 거친 한호 임연이 1630년 제자들에게 강학을 하고, 소요하기 위해 지은 정자다. 그리고 식영정 위의 마을이 과거 배를 만들었다는 이산마을이다. 강이나 바다에 뜬 배를 만들었다면 주산(舟山)마을이나 선산(船山)마을이어야 하는데 그냥 배 이() 자를 써서 이산(梨山)마을이 되었다.

그러고 보면 세상은 알면 괴롭고 모르면 편하다는 말이 맞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식영정에서 몽탄역까지는 충분한 여유를 두어도 2km 남짓이다.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몽탄역에 내려 남으로 몽탄초등학교와 몽탄 체육공원 사이 교차로에서 해가 뜨는 동쪽 길을 따라 걸으면, 논과 밭 사이로 흐르는 사천천은 자연스레 동무가 되고 사천천을 따라 또 다른 동무 대치천이 끝나는 곳, 바로 영산강이고 식영정이다.

이곳에서 영산강 물굽이를 따라 남으로 십여리 정도에 이르면 몽탄과 나주 동강면을 잇는 몽탄대교가 가로 놓인 마을이 장어구이로 이름을 알리는 명산 마을이다. 예전에 이곳을 몽탄 나루라 했고, 건너 동강면 사람들이 배를 타고 건너와 명산역에서 호남선 열차에 몸을 실었다고 한다. 그러나 세월을 탓하랴 시절을 탓하랴, 명산역도 몽탄 나루도 옛 이름이 되었다. 그래도 나루의 흔적은 관심을 두고 살피면 선심인 양 조금 남아 있다.

명산 마을에 기름기가 줄줄 흐르는 장어를 찾아온 미식가의 눈에 영산강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싶어 씩 웃었다. 왜냐하면 나는 오래전에 여수 돌산의 무슬목에서 남해를 보며 정유재란의 마지막 이순신의 모습을 그렸지만, 장어를 찾아온 식객은 흑산도로부터 홍어를 담고 황포돛대를 펼치고 영산포로 향하는 어선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아무튼 홍어도 좋고, 장어도 좋고 어()자 돌림의 생선에 소주 한 잔이라도⸱⸱⸱⸱⸱⸱,

한 잔 생각은 간절하지만, 나그네는 길에서 머무르지 않는 게 암묵적 룰이기에 발길을 돌린다. 명산 마을에서 영산강과 함께 강변길을 따라 남으로 흐르면 강은 흐르고 길은 끝난다. 하는 수 없이 해가 지는 쪽으로 방향을 바꿔서 느긋하게 조금만 가다가 보면 동양 최대의 백련 자생지로 일로읍 산정리의 회산 백련지에 이른다. 매년 7월에서 9월 사이에 피고 지고를 반복한다니 자연이 주는 장관을 어찌 그리 지나칠 수 있겠는가.

또한 회산 백련지에서 남서쪽으로 시오리 정도의 가까운 이웃 의산리 마을에 품바 발상지가 있다. 품바는 시대를 거슬러 피죽도 연명하기 어려웠던 때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 장터나 길거리를 돌아다니면서 구걸하는 개인이나 무리를 이르는 말로, 여기에서의 품바는 일제 강점기로부터 자유당 말기까지 유리걸식遊離乞食 전국을 떠돌다가 전남 무안 일로의 걸인촌乞人村에 정착한 각설이패의 우두머리 천장근의 인생 역정이자 일대기를 극화한 것이다.

이 고장 출신인 김시라에 이해 각설이타령을 기본으로 구전민요와 재담, 익살을 담은 춤사위로 풀어내는 일인극으로 1981년에 초연되었다. 나는 품바 공연을 부산 남천동에 위치한 KBS 홀에서 처음으로 관람했는데 한 사람의 배우가 마당극 형식으로 14명의 역할을 하며 객석은 배꼽의 행방을 걱정해야 했다. 군사독재라는 암울한 시기에 정치풍자 등이 어우러져 국민 스트레스 해소에 크게 일조한 공연이 품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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