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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최대 규모의 객사客舍 나주 금성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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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3호] 승인 2024.02.26  02: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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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순(전 나주시청 문화예술과장, 학예연구관)

이 금성이란 큰 고을은 실로 호남의 유명한 도읍이다. 바둑알이 퍼진 듯 별들이 나열한 듯이 열두 지역과 섬 지역을 관장한다. 산은 길고 들판은 넓으며 백 리의 마을을 에워싸고 있다. 쌀을 밥으로 먹고 물고기를 국으로 먹는다. 고을은 기름진 땅의 이익을 떨치고, 마을에는 학교가 있고 집에는 서당이 있으니, 그야말로 무성(武城)에 거문고를 켜고 노래를 부르는 풍조가 넘치는구나.’ 이 글은 249년 전인 1775년 금성관을 중수할 때 이조판서 겸 부제학 조명정이 지은 금성관 상량문에 나오는 내용이다.

금성관은 보물이다. 현존하는 전국의 30여 개 객사 건물 가운데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정면 5칸 측면 4칸 팔작지붕의 구조이며 약 90평이다. 객사 지붕이 팔작인 사례는 진남포 객사나 영광 객사, 동복 객사, 개성 객사 태평관 등이 있다. 나주목 객관은 고려시대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영산강의 대표 항구였던 곡화포(회진?)1368년 들어왔던 명나라 사신 설사 일행은 나주의 객관에서 묵었을 것으로 보인다. 최영은 1374년 제주도 목호의 난 진압을 위해 나주 목포(택촌 앞)에서 전함 314척과 병사 25,605명으로 떠났는데 이러한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나주의 객관은 사용되었을 것이다.

고려시대 객관에 대한 기록은 1343년에 준공하고 서쪽에 작은 관사를 지었다는 안축의 경상도 상주목 객관에 대한 기록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특히 경상도 성주목 객관의 동헌인 백화헌(百花軒) 중영기(重營記)에서 신숙주는 고을에 관사와 해우(廨宇)가 있는 것은 사신을 높이고 빈객을 접대하는 것이니라고 객관의 성격을 밝히고 동헌은 2칸으로 지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나주의 객관은 1431년 발행된 동국여지승람나주목 궁실조 기록에 벽오헌은 객관의 동헌이다. 전라도 관찰사 이행이 객관 동쪽에 벽오동나무가 있어 이름을 벽오헌이라고 지었다는 것이다. 이 같은 기록은 성주목의 상황과 매우 비슷한 이야기이다. 즉 객관과 거기에 딸린 날개집(동헌)이 있었다는 것이다.

나주목 객관의 동헌인 벽오헌은 1479년에 나주목사로 부임한 김춘경과 통판 오한이 뜻을 맞추어 14808월에 공사를 시작하여 수개월 만에 완료하였다, 중수하면서 옛 건물에 비해 규모가 배가되게 크게 하였다고 한다. 김춘경 목사는 객관의 동헌인 벽오헌이 낡고 좁은 것을 크게 넓히는 공사만 하였던 것이다. 조선 개국 후 88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전조인 고려의 객관 모습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나 1530년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처음으로 금성관이란 이름이 등장한다. 1481년부터 1530년 사이에 현재와 같은 모습의 나주목 객사에 대한 체계적인 정립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같은 책 전주부 궁실편 이경동의 전주 객관 서헌기(西軒記)를 보면 1471년 조근이 전주 부윤으로 와서 부의 관은 대청이 중앙에 있고 좌우에 익실(翼室)이 있는데 동편은 높고 서편은 낮으며 동편은 넓고 서편은 좁으니 창고를 짓고 남은 재목으로 서헌을 고쳐 동헌처럼 하고자 한다라는 말을 듣고 모두 찬성하여 공사를 시행하였다라는 글이 보인다.

몇 년 후에 나주 금성관과 망화루를 건립한 이유인이 1479년에 전주 부윤으로 와서 교화를 일으키고 어진 것을 독려하기 위해서 1480년에 전주향교에 다섯 채의 누각을 지었다. 당시 전주 부윤 이유인은 객관에서 부임에 따른 예를 올리고 객관 공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이러한 경험과 이해 속에서 1487412일 나주 목사로 부임한 이유인 목사는 14897월까지 있으면서 객관의 동헌인 벽오헌과 동쪽에 있던 무이루를 보면서 옛터(대청, 정청)에 금성관을 짓고 정문인 망화루를 건립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서익헌에 대한 기록이 없으나 이때 가운데에 정청인 금성관과 서익헌을 건립하여 전주부와 같은 객관 구조를 완성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과정은 유교 이념의 성리학의 나라로 재편하는 과정에서 국왕의 중앙집권적 제도가 정착화되면서 지방에 나타나는 공간구성의 재편으로 봐야 한다. 그런데 전주는 양익헌이 균형을 이루는데 나주는 형식은 받아들이되 구조는 양익헌을 다르게 하는 나주만의 색깔을 유지한 것으로 해석해야 하지 않을까? 새로운 제도를 나주만의 지역적 상황을 반영한 객사공간을 창출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후에 임난 전쟁의 피화를 입은 금성관은 1617년 김개 목사에 의해 중건되고 1775년 이명중 목사의 개수 1884~1886년 박규동 목사의 중수를 거쳐서 최종적으로 1976년 해체보수를 거쳐 현재에 이른다. 20194차례의 보물 지정 신청에 이르는 지난 한 과정을 거쳐서 보물로 승격 되었다. 그 이전에 보물로 지정된 나주향교 대성전의 공포와 금성관의 공포구조가 비슷하여 눈여겨볼 대목이다. 1775년 중수 당시 공사를 기획하고 감독 직접 참여한 명단은 다음과 같다. 249년 만에 나주투데이 지면을 통해 밝혀 그분들의 노고에 감사드린다.

성조도유사(成造都有司): 생원(生員) 박사만(朴師萬), 도감(都監): 좌수(座首) 홍정한(洪井漢)

유향별감(留鄕別監): 강세기(姜世奇) 강세검(姜世儉) 이동혁(李東爀), 성조감관(成造監官): 절충장군(折衝) 이하송(李夏松), 철물감관(鐵物監官): 문범일(文範一), 색리(色吏): 양정익(梁廷翼), 수호장(首戶長): 나지택(羅知宅), 부호장(副戶長): 양정렬(梁廷烈), 이방(吏房): 손영백(孫永百), 책용색 겸 부이방(責用色, 兼副吏房): 오사덕(吳思德), 물력책용감관(物力責用監官): 서명욱(徐命郁), 색리(色吏): 이운익(李雲翼), 번와감관(燔瓦監官): 윤동일(尹東逸), 색리(色吏): 오상권(吳尙權), 초석수축감관(礎石修築監官): 강걸(姜傑), 객사감고(客舍監考): 윤득형(尹得衡), 성조고직, 책용고직노(成造庫直, 責用庫直奴): 희열(希烈), 사령(使令): 김자갈(金者葛), 전득남(錢得南), 번와사령(燔瓦使令): 김봉택(金奉宅), 도변수목수(都邊首木手): 김성택(金成宅), 목수(木手): 조윤옥(趙允玉), 봉덕송(奉德宋), 시훈스님(僧是訓), 김반석(金盤石), 김한성(金漢成), 강득수(姜得水), 김성득(金成得), 적훈스님(僧迪訓), 찬화스님(僧贊化), 대은스님(僧大訔), 김득수(金得水), 박상신(朴相臣), 이흥춘(李興春), 임해원(林海元), 박창령(朴昌令), 최용손(崔用孫), 정유위(丁有爲), 유유재(柳有才), 조중태(趙仲太), 배순태(裵順太), 쾌언스님(僧快言), 박순재(朴順才), 쾌진스님(僧快眞), 최상운(崔尙云), 긍천스님(僧肯千), 도철장(都鐵匠): 김봉(金奉),개와장(蓋瓦匠): 차금(車金)

이처럼 나주역사에 표면적으로 나타나지 않지만, 수많은 민초들의 땀과 눈물로 이루어진 문화유산이 많다는 것이다. 또한 당시의 시대적 흐름 속에서 새롭게 재편되어 나간 시대의 상징을 보여주고 있다. 곰탕 한 그릇 먹고 이웃한 금성관을 볼 때 건축물의 이면에 서려 있는 변화의 모습과 나주인들의 얼굴을 그려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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