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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노안면 금안동
김덕수 객원기자  |  najukd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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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3호] 승인 2024.02.26  01:5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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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안권역·공간 정비사업 등 ‘호남 3대 명촌’ 명성 회복 기대 

금안리 일대 12개 마을이 하나의 공동체…일제 이전까진 금안면으로 불려
정가신·신숙주 등 인물 많고 서원·정자·고인돌 즐비한 살아있는 박물관
 
   
▲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4호 쌍계정은 매년 음력 4월20일 지방자치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금안동 대동계가 열린다.
 
고려시대 첨의중찬(종1품)을 지낸 정가신(1224~1298), 해군 잠수함 ‘정지함’에 이름을 준 도원수(정2품)로 조선 건국의 기틀을 만든 무관 정지(1347~1391), 책 읽다 잠 든 집현전 학사에게 세종대왕이 옷을 덮어줬다는 일화의 주인공으로 두 번의 영의정(정1품)을 지낸 신숙주(1417~1475), 왜란에 맞서 의병을 모집해 싸우고 당상관인 첨지중추부사(정3품)를 지낸 홍천경(1553~1633), 그리고 우리나라 언론사상 처음으로 신문사를 사회와 사원에 환원한 매일경제신문 창업주 정진기(1929~1981), 나주부시장을 지낸 전라남도 동부본부장 정찬균(1965~ ), 나주배원협 전무 신명수(1967~ ), 나주시청 도시재생팀장 정찬종(1970~ ), 노안농협 전무 신영천(1970~ ).. 이들의 공통점은 금안동이다. 
 
금안동은 노안면 금안리 인천, 반송, 광곡 등 7개 마을과 영평리 영안, 구정리 구축, 용산리 월송·송정·금곡마을 등 12개 마을을 부르던 이름이다. 1914년 일제에 의해 행정구역이 통폐합되기 전까지 금안면으로 불렸다. 우거진 숲에 모여 든 새들의 낙원이라는 의미에서 금안(禽安)이라 불렸으며, 사신으로 가서 공을 세운 정가신이 원나라 황제로부터 금으로 만든 말안장 등을 받고 돌아왔다 하여 금안(金鞍)이라 했다고 한다.
 
금안동의 자랑 중 하나로 대동계를 꼽을 수 있다. 임진왜란으로 황폐해진 마을을 다시 일으키고 주민들이 함께 가꾸자는 취지로 행해진 대동계는 지방자치의 근원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지금도 음력 4월 20일이면 마을 사람들이 쌍계정에 모여 계를 연다. 1280년 정가신이 세운 쌍계정의 현판은 조선 서예의 대가인 한석봉이 썼다.
 
금안권역단위정비사업으로 2018년 건립된 전통한옥 금안관을 오른쪽에 두고 반송마을 지나 광곡마을로 향하다 보면 척사정과 경렬사, 신숙주 생가터, 서륜당, 쌍계정, 월정서원을 만난다. 한걸음 옮길 때마다 역사를 만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원과 정자, 재실이 20여곳, 효자비 등 비석이 100여개, 고인돌 56기가 있는 금안동은 그 자체가 살아있는 역사교육장이자 박물관이다. 
 
   
▲ 금안권역단위정비사업을 통해 2018년 금안관과 명촌관이 건립됐다.
 
인천마을회관에서 만난 이춘희(81세) 씨는 “5형제 가르치려고 1984년 상경해 당시 유행하던 전자오락실 등을 하며 10년을 살다 돌아왔다”며 “육사를 나온 막내아들 결혼식장에서 고생했던 때가 떠올라 절로 눈물이 나더라”고 지난날을 회상한다. 빛가람동이 된 금천면 동악리가 고향인 이 씨의 큰 아들(홍선희)은 지난해 서울시 용산구청 자치행정과장으로 정년퇴직했다.
 
“금성산 장사바우 지나 문평면 동막골이랑 백동까지 나무하러 갔다 캄캄한 밤길에 돌아왔다”는 정옥순(89세) 씨는 “큰 딸 낳고 먹을 게 없어서 죽음을 생각할만큼 막막하기도 했고, 산에서 밤을 주워 명절 때 쓰려고 뒤안 흙에 묻어뒀는데 쥐들이 다 먹어치웠을 땐 어이가 없더라”고 한다. 영평리 영안마을 출신인 정 씨의 댁호는 영안댁이다. 
 
함평군 나산면이 고향인 이순임(84세) 씨는 “65년째 살고 있응께 고향이나 진배 없다”며 “농협에서 빚 내서 소를 샀고 쟁기질해 준 삯이랑 송아지 판 돈을 밑천 삼아 논도 사고 살림을 키웠다”고 한다.
 
광곡마을에서 만난 정국기(69세) 씨는 “군대를 마치고 광양제철, 울산석유화학단지 건설현장 등에서 일하다 20여년 전 고향으로 돌아왔다”며 “조경 일하는 틈틈이 논농사와 감나무를 가꾸는데 금성산에서 고라니며 멧돼지가 내려와 농사를 망칠 때가 많다”고 한다. “비가 많이 오면 노안천 징검다리가 넘쳐 건너지 못하고 원당마을로 돌아서 왔다”는 정 씨는 정지 장군 후손이라고 목소리에 힘을 준다.
 
“작은아버지가 만든 매일경제 신문과 잡지 등을 통해 60여년 째 세상과 소통한다”는 정회만(68세) 씨는 “미래 세대엔 현재 직업의 90%가 새로운 일자리로 대체되고 빈부격차는 더 심해질 것”이라고 한다. 정 씨는 “어려서부터 글쓰고 책읽고 노래 듣는 걸 좋아했는데 어느새 시인이 됐다”고.. 정윤기(1922~2007) 전 나주중앙초등학교 교감선생이 정 씨의 부친이자 정진기 매일경제신문 창업주의 형이다.
 
   
▲ 금안동을 가로지르는 노안천 빨래터에 금안동 사람들의 애환이 쌓여 있다.
 
55년 만인 2020년에 귀향한 정춘봉(73세) 씨는 “중학생 때 검찰공무원이던 아버지의 근무지인 대구로 이사갔다”며 “서울 무교동에서 식당을 하던 30대 중반 어느날 ‘60 넘으면 고향으로 돌아가 곧은 선비의 표상이던 할아버지처럼 살아야겠다’고 맘 먹었다”고 한다. 
 
원당마을에 사는 홍기동(55세) 씨는 “30년 가까이 수도권에서 수입가구를 유통하는 직장에 다니다 사업을 시작했는데, 경제상황이 나빠져 정리하고 탯자리로 돌아왔다”며 “혼자 계신 어머니랑 의견차이로 다투기도 했는데 ‘평생 살아오신 삶에 끼어들 게 아니라 도와드리자’고 맘먹고 나니 사는 게 즐거워졌다”고 한다. 홍 씨는 나주교통에서 버스운전원으로 일하고 있다.
 
공장 부지를 찾던 중 아버지 고향에 터를 잡았다는 홍기재(55세) 씨는 “전남에서 최대인 주민 42명이 조합원으로 참여해 초벌구이한 볏집삼겹살과 김치 등을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마을기업 금안협동조합의 성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현대 유통트렌드에 맞춰 지역이 갖고 있는 자원을 활용함으로써 지역발전에 기여하고자 한다”는 뜻을 밝힌다. 
 
20여년 가까이 악취 문제로 갈등을 빚어 온 마을 입구 돈사를 정비하는 농림축산식품부 공간정비사업을 위해 주민협의체를 구성해 대표를 맡고 있는 홍 씨는 “금안동이 갖고 있는 역사문화자원과 금성산이라는 자연자원을 연계해 살기좋은 마을을 만드는 데 주민들이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할 것”이란다.  홍 씨의 바람대로 ‘호남 3대 명촌, 금안동’이 새롭게 탈바꿈하길 기대해 본다. 
 
 
   
 
인터뷰 / 최안순 금안한글농촌체험마을 사무장
 
“교복 입고 시작한 40년 공무원 퇴직…마을에 보탬 되길”
 
“이 옷 입지 말고 언니가 입는 옷 입고 와요” 
 
첫 출근하던 날 군수의 말이 또렷하다는 최안순(69세) 금안한글농촌체험마을 사무장은 “고3 때 9급 공무원시험에 합격해 재학 중인 11월에 신안군청으로 발령났다”며 “어렵던 시절이라 옷이라곤 교복 밖에 없었다”고 한다. “군에서 소개해 준 양장점에서 웃옷을 맞춰 입고 매달 월급에서 나눠갚았다”는 최 사무장은 “4년여 신안군에서 근무하다 1980년에 고향인 나주군 다시면으로 오게 됐다”고.. 그 해 풍산홍씨 종부가 돼 4남매를 키우고 2016년 나주시청 규제개혁팀장으로 40년 공직생활을 마친 최 사무장은 “이웃이 누군지도 모른 채 인사만 하며 출퇴근했었는데 이제야 조금씩 마을사람이 되는 것 같다”고 덧붙인다.
 
“서울 구로공단의 인형공장에서 일하면서 고등학생인 친구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공부하고 싶은 열망을 키웠다”는 최 사무장은 “또래들보다 2년 늦게 새끼돼지 팔아 등록금을 내고 고등학교에 진학했다”고.. “명절이 다가오면 회사에서 점심시간에 나눠주는 빵을 아껴 뒀다 명절에 부모님과 형제들에게 선물했다”는 최 사무장은 “고구마나 밀가루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던 시절이라 빵은 부잣집 음식이었다”고 선한 웃음을 짓는다.  
 
“금안한글농촌체험마을은 전래놀이나 요가 등 문화강좌를 통해 주민들과 함께 하는 한편, 인근 학생들이 참여하는 쿠키 만들기, 한복·한옥·한글 체험을 진행하고 있다”는 최 사무장은 “한복체험을 위해 지인들로부터 집에 묵혀 둔 한복을 모아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고 덧붙인다.
 
금안2리(반송·원당) 이장 일을 겸하며 “주민들이 함께 금안권역을 가꾸는 데 자그마한 힘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한다”는 최 사무장의 바람대로 금안동이 주민들과 방문객들이 함께 즐기는 명촌으로 거듭나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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