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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의 진산이자 나주를 지켰던 역사의 현장 – 금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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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2호] 승인 2024.02.04  15:5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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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순 전 나주시청 문화예술과장 학예연구관

광주에서 나주로 들어오면 눈 앞에 펼쳐지는 들판 저편에 우뚝 솟은 산이 하나 보인다. 좌우로 길게 늘어선 크고 작은 봉우리를 거느린 산이다. 진산이란 그 고을을 지켜주는 산이란 뜻이다. 광주는 무등산, 영암은 월출산 등 각 고을에는 진산이 있다. 

최근에 금성산을 군부대를 통해서 들어가지 않고 오를 수 있도록 등산로가 개설되었다. 우리들이 오르는 봉우리는 금성산의 4개의 봉우리 가운데 가장 우측 동쪽에 있는 노적봉이다. 
 
금성산의 가장 높은 주봉은 정녕봉이며 북쪽에 있다. 서쪽으로 오도봉, 남쪽으로 다복봉 등 4개의 봉우리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는 없어졌지만, 정상부에는 물을 담아놓은 둠벙같은 것이 있었다. 
 
1970년대 아버지를 따라 금성산에 오르면 사람들이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옹달샘도 있었고, 경작했던 작은 밭이 있었다. 또한 산 중턱에는 무당들이 치성을 드렸던 흔적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나주에 귀양 왔던 정도전은 「소재동기」라는 글에서 “금성산은 단중하고 기위하여 동북에 웅거하였으니 나주의 진산이다.” 라고 하였다. 
 
김극기와 윤소종은 시로 금성산을 이야기하기도 하였다. 재미있는 것은 나주사람들은 금성산에서 뻗어 내린 재신산을 목사의 비보라 하고 시랑산은 판관의 비보라고 하였다. 
 
금성산 정상 부근에는 산성이 있었다. 『세종실록』 「지리지」에 “둘레 1,095보이고 샘이 5개가 있고 연못과 군창이 있다”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중종 때의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석축이며, 둘레가 2,946척이고 높이가 12척이며 군창은 없어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현재 금성산 정상을 가는 길이 방어에 가장 가장 취약한 곳이다. 나머지 지점은 대체로 가파른 지형이어서 방어에 유리하다. 
 
금성산성에서는 큰 전투가 있었다. 고려 중기 1270년(원종 11) 진도 용장성에 근거를 마련한 삼별초가 나주를 공략하려고 나주 경계에 이르자 사록 김응덕과 부사 박부가 결정을 내리지 못하자 상호장 정지려가 “성에 올라 굳건히 지키지 못한다면 산골짜기로 도망을 갈지언정 고을의 수리(首吏)가 되어 무슨 면목으로 나라를 배반하고 도적을 따르리요” 말하여 성을 지키기로 결정하였다. 여러 고을에 알리고 금성산에 들어가 가시나무로 목책을 만들고 삼별초군과 7일 밤낮으로 싸워 이긴 750여 년 전의 현장이다. 
 
당시 이러한 전공에 대하여 김응덕에게 7품의 관작이, 나주의 김서·정원기·정윤에게 섭오위를 하사하고 각각 쌀 15석을 내렸다. 특히 1277년 나주정씨 4대조인 설재 정가신(당시 벼슬은 보문각대제)의 보고에 의해 금성산신은 정녕공으로 봉작되고 나라에서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다. 조선 초기인 1394년에는 호국지신으로 예우되기도 하였다. 이렇게 금성산신이 대우를 받았던 것은 삼별초군의 격퇴는 물론 진도와 탐라의 삼별초군 정벌에 금성산신의 음덕의 징험이 있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금성산신의 영험함은 부작용을 낳기도 하였는데 금성산신이 장성의 무당에게 내려 그 이야기를 국왕에게 전한다는 명목으로 서울로 가는데 각 고을의 관리들이 극진한 대접을 하였으나 공주의 심양은 이를 의심하여 철퇴를 가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때 금성산신의 호칭이 금성대왕이었다. 
 
또한 금성산신 제사가 있으며 전라도의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여러 가지 문제점이 노출되자 나라에서는 음사로 규정하고 제사를 성종 10년에 금지하였다. 
 
그러나 이후의 조선 후기 기록인 『서원사우개수등록』이란 책에 금성신사 건물을 수리해야 한다는 기록이 있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학계에서는 금성산신과 무등산신의 지역적 성격을 통해서 양 지역사회의 운영에 대한 당시의 상황을 알려주는 지표로 보기도 한다. 
 
제주도 서귀포시 표선면의 본향당 당신이 나주 금성산신이라는 사실은 매우 흥미로운 부분이다. 
 
제주도에 전해오는 전설에 나주의 금성산신이 포수의 총에 맞아 금, 은, 옥바둑 돌로 변하여 하늘로 날아가 종로에 왔던 제주도 향리의 보따리 속에 들어가 제주도 본향당의 당신이 되었다는 것이다. 
 
한편 서울의 은평구 진관동에는 나주의 금성산신을 모시는 금성당이 있다. 이처럼 나주에서는 잊혀진 존재이지만 바다 건너 제주도와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는 그 존재가 이어져 오고 있다. 
 
금성산의 나주 지킴이의 역할은 나주인들이 만들어낸 역사적 사실 속에서 다양한 해석을 생산했다. 나주를 찾는 손님에게 보여주는 것이 문화유산과 자연경관(음식)을 통한 나주인의 마음이다. 금성산은 나주의 잔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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