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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영산포 일본인의 쪽 염색옷
허북구  |  bukgu@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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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2호] 승인 2024.02.04  15:4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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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북구 (사)한국농어촌관광학회 수석부학회장

영산포는 미곡, 면화, 잠견, 승입(가마니) 등의 연산액(年産額)이 실로 수백만 원에 달하고, 교통이 편리하여 가히 전남의 보고(寶庫)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지 내용을 보면 모든 이익은 벌써 우리의 손을 떠나간 지 오래다. 농촌경제의 태종(太宗)인 토지의 칠할 이상은 일본의 점령했고, 시내의 상권은 외국인이 팔할 이상을 점령하였다. 그런데도 청년은 이 대세를 만회하려는 노력도 없고, 아니 의식조차 없이 주색잡기 탐닉하니 어찌 개탄할 바 아니랴(동아일보 칼럼. 1931.05.15. 영산포 인사의 각성을 촉함).

위의 칼럼에 의하면 1930년대 초 영산포의 경제 주체 세력은 외국인이었음을 알 수가 있다. 그 배경에는 일제 침탈 및 수탈과 함께 많은 일본인의 거주였다. 나주문화원 윤여정 원장이 발굴한 옛 영산포발전지에 의하면 191512월 말 영산포 호구 수는 일본인 259, 조선인 136호로 일본인 호구 수의 비율이 64.3%이다.

동아일보 1922711일 자 전남 저명지 인구기사에 의하면 나주 인구는 조선인 4,534, 일본인 591, 기타 10명이며, 영산포 조선인은 1,197, 일본인 621, 기타 43명이다. 목포는 13,096, 일본인 5,685, 기타 164명이다. 당시 시내 중심지 인구 중심으로 조사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일본인 인구수 비율을 산출해보면 나주는 13.0%, 영산포는 51.9%, 목포는 43.4%이다.

영산포에 일본인이 많이 거주했음을 알 수 있으며, 그에 따라 영산포에 거주했던 일본인 사이에서는 일본 고향의 풍습이 이입되었을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 영산포를 배경으로 발행된 그림엽서 중 이주자 학교 사진은 그러한 사실을 증명한다. 사진에는 일본 옷을 입은 아이들이 놀고 있고, 교사로 보이는 제복 입은 사람, 일본 옷(기모노)을 입은 어른들이 그 모습을 바라다보고 있다. 어린이나 어른들이 입고 있는 옷의 문양에는 몇 종류가 나타나 있는데, 그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쪽 염색 쿠루메가사리(久留米絣)로 추정되는 직물이다.

일본의 전통 직물은 지역에 따라 다양한 직조기법과 문양이 존재하는데, 쿠루메가사리(久留米絣)는 일본 후쿠오카현(福岡縣) 남부의 치쿠고(筑後) 지방의 전통적인 면직물이다. 실을 부분적으로 묶은 다음 주로 쪽 염색을 한다. 그것을 이용해서 문양이 있게 직조한 기모노용(일본 전통옷) 면직물이 쿠루메가사리다. 이 염색과 직조기법은 동남아시아·중남미·중앙아시아 등 전 세계에 존재하는데, 쿠루메가사리는 후쿠오카현만의 독특한 문양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일제 강점기 영산포 이주학교를 배경으로 한 그림엽서에 나타난 사람들의 옷에 쪽 염색된 쿠루메가사리(久留米絣)가 사용된 것이 보이는데, 이것은 당시 영산포로 이주한 일본인들의 고향과 관련성이 깊어 보인다. 영산포발전지를 비롯해서 여러 자료에 의하면 영산포 이주자 중 후쿠오카(福岡縣)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들은 영산포로 이주해서도 자신의 고향 직물로 만든 옷을 입고 생활했음을 옛 그림엽서는 말해 주고 있다. 그림엽서의 발행 시기를 고려하면 후쿠오카(福岡縣) 출신의 일본인들이 영산포로 이주한 지 30년 가까이 되었을 때이므로 영산포에서 면사에 쪽 염색을 하고, 직조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확실한 증거는 없으므로 상상력의 세계일 뿐이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조선 시대 말 그리고 일제 강점기에 영산포는 국내 최대의 쪽 염료 생산지였다는 사실이다. 풍부한 쪽 염료의 생산은 일본인들의 쪽 염색 옷뿐만 아니라 염료와 직물의 유통 등 영산포의 문화와 경제를 융성하게 하는데 일조했던 자원이고 상품이었다. 일제 강점기에 발행된 영산포 배경 그림엽서 속의 일본인 쪽 염색 옷은 그러한 사실을 상기시켜 주면서 영산포 문화 융성과 쪽 염색을 떼어 놓을 수 없음을 시사하고 있다.

   
▲ 일제 강점기의 영산포 이주자 학교(일제강점기에 발행된 그림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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