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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민(安民)과 이민(利民)을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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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1호] 승인 2024.01.21  22: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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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의 문화유산을 통해서 나주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나주 문화유산은 나주 선조들이 남긴 지혜의 산물이요 당시의 시대상을 보여주는 역사의 창이다. 소리 없이 나주 땅을 지켜온 나주의 문화유산을 재해석하고 나주인들이 귀 기울여 들어야 할 이야기를 살펴보고자 한다.

지역의 지속 가능한 토대는 다양한 자원이 있다. 그 가운데 나주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문화유산의 현장으로 들어가고자 한다. 전 나주시청 김종순 문화예술과장(학예 연구관)이 이러한 의미를 담아 이 코너를 맡아 연재한다. 편집자 주

 

   
▲ 김종순(전 나주시청 문화예술과장, 학예연구관)

나주의 연혁은 동국여지승람을 보면 백제 때는 발라군(통의), 신라에서는 금산군(금성)이라 하였다. 신라말에 견훤이 후백제 칭하고 차지했으나 궁예가 보낸 왕건에 의해 903년에 나주가 되었다. 왕건은 오씨와 결혼하여 무를 낳았고 무는 고려 2대 임금 혜종이 되었다. 이러한 연유로 나주를 어향(임금의 고을)으로 부른다. 9189월 나주도대행대라는 특별기구를 설치하였다. 전광평성 시중 구진을 나주도대행대 시중으로 임명 파견하였다.

983(성종2) 지방제도를 정비할 때 나주는 나주목이 된 이래 조선 후기인 1895년까지 그 지위가 유지되었다. 고려시대 나주목은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은 속군인 무안, 담양, 곡성, 낙안, 남평과 속현인 철야, 회진, 반남, 안노, 복룡, 원율, 여황, 창평, 장산, 진원, 화순을 거느렸다. 현재의 전남 지역을 대표하는 지역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나주목의 목사가 행정을 살피는 관아는 현재의 나주읍성의 안에 있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나주목 객사 금성관이 위치하는 지역을 중심으로 있었다. 이후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규모와 영역이 확장되어 지금의 나주읍성의 사대문을 포함하는 지역이 되었다, 나주읍성 안에는 당연히 목사가 지방관으로서 행하는 각종 업무 처리를 위한 시설들이 들어섰다. 또한 지방행정의 손발이 되었던 향리들의 집무처가 동헌을 중심으로 주변에 배치되었다.

나주 목사가 업무를 보는 동헌은 이름이 제금헌(製錦軒)이었다. 제금이란 비단으로 옷을 만든다는 뜻으로 어진 자가 지방관으로 나아가 정사를 펴는 것을 비유한다. 유래는 춘추좌씨전 양공 31년 편에 정나라 자피가 윤하를 큰 고을을 다스리게 임명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말이다.

나주목 동헌의 명칭인 나주 목사는 백성들의 삶을 비단으로 옷을 만들 듯이 세세히 정성을 다해 살피라는 뜻을 담고 있다. 동헌 자리는 현재의 나주목사 내아 금학헌 앞에 있었다. 목사가 거주했던 내아인 금학헌도 제금헌과 비슷한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거문고는 오동나무로 만든다. 자기성찰의 의미를 담고 있는 이름으로 생각된다.

현재 금학헌은 한옥 체험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각각의 방 이름이 있는데 나주 목사를 지냈던 분들의 이름을 붙였다. 유석증방이 있다. 유석증 목사는 2번에 걸쳐 나주 목사를 했다. 1610(광해군2) 818일 도임했으나 바로 1023일 체직되었다. 9년이 흐른 후인 1619(광해군 11) 624일 다시 도임하여 16235월 이임까지 만 4년을 재직했다.

그런데 여기에는 나주인들의 애틋한 사연이 있다. 나주인들은 유 목사를 다시 보내주도록 상소를 올려 다시 오자 쌀 300석을 받쳐 사례하였다. 이후에는 떠나지 못하도록 1621년 염공일 등이 1천석, 1622년 진사 김종해 등 1백여 명이 1천 석의 쌀을 받쳐 유임을 청하고 있다. 이렇게 414년 전 나주인들은 훌륭한 지방관을 초청하고 오랜 시간 목사로 일할 수 있도록 스스로 쌀을 내어 살기 좋은 나주를 만들었다.

유 목사가 죽자 나주인 시서 김선은 제문을 지었다. 제문의 내용은 유 목사가 나주에 있으면서 행하였던 치적을 보여준다. 즉 수령 7사의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는 장면을 제문은 말하고 있다. ‘소반 속의 낱알 하나도 백성의 기름이라 하였고, 밥상 위의 고기 한 점도 모두 백성의 피라고 하였네라는 제문의 내용에서 유석증 목사가 어떤 자세로 지방관의 업무를 수행하였는지 바로 보여준다. 유석증 목사는 나주 목사로서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고(안민), 백성들의 이로운 일(이민)을 반드시 시행하는목민관이었던 것이다.

414년 전, 나주인들의 현명한 선택과 열정으로 안민과 이민이 나주 땅에 펼쳐졌다. 우리 나주 선조들이 보여주었던 나주의 평안과 번영을 위한 결정이 새삼 주목되는 시간이다. 나주를 위해 훌륭한 인물을 초빙하였던 선조들의 이야기와 나주목 동헌과 내아의 이름인 제금헌과 금학헌이 의미하는 깊은 뜻을 되짚어보자. 이러한 역사를 통한 성찰을 통해 현재를 살피고 미래를 맞이하라는 조상들의 큰 울림이 퍼져나가기를 빌어본다. 선거가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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