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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거덕 나무 구름다리 송정리역(광주송정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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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1호] 승인 2024.01.21  22: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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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채석 기행작가

이 시를 한 마디로 축약하면 애환이다. 그 애환의 역을 40여 년 동안 떠나 멀리 부산에서 살다 돌아온 고향은 낯설다. 지루박 아저씨의 모습이 담긴 길은 홀수일과 짝수일로 번갈아 주차하는 노상 주차장이 되었고, 객기 어린 친구를 면회하러 갔던 경찰서도, 단체 영화 관람을 했던 동양극장도, 이가 아파 신경치료를 받던 임치과도, 여학생들과 빵과 우유를 먹던 매일우유 집도 사라졌다. 더 황당한 건 단아한 일본식 목조건물의 송정리역은 세월의 뒤안길로 그 역사를 보낸 거와는 달리, 광주송정역이라는 이름을 달고 시치미를 뚝 떼듯 전혀 딴 모습으로 떡하니 버티고 있다.

그래서 마음을 주워 모아 옛 송정리역을 헤아린다. 서대전역을 뒤로한 호남선 열차가 장정들의 땀이 어린 논산, 수탈의 역사 강경, 전라선의 분기점 익산, 징게맹게들의 김제, 동학의 일성 정읍, 서원의 고장 장성을 달려 기진맥진 송정리역에 당도하면 목마른 증기기관차는 급수탑으로부터 갈증을 달래야 했다. 가을날 낙엽 떨어지듯 열차에서 떨어진 승객들은 삐거덕삐거덕거리는 나무계단을 올라 긴 나무 구름다리를 건너 출구로 오면, 들고 이고 온 보퉁이를 받아주는 환한 반가움들이 마중이라는 이름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출구의 반대편에는 일반 시골역보다 배나 큰 TMO(여행장병휴게소)가 자리했다. 휴가를 나와서 전방 부대로 복귀하거나 귀가하는 장병들의 필수코스로 송정리역을 기점, 1 전투비행단, 보병, 포병, 화학, 기갑 등 전투병과 학교가 있는 상무대. 보병 31사단 등 수많은 부대 장병들의 여행을 도왔고, 그 주변에는 소화물취급소가 자리했다. 지금이야 택배가 발달해 집 대문 앞에 보기 좋게 안착하지만, 당시에는 쌀가마니 등을 리어카나 짐자전거로 날라와 보내고 찾아야 했던 불편함마저도 그때는 그랬지 하는 아련한 기억이다.

잠시 징소리』 『철쭉제로 대표하는 지성 문순태 선생의 장편소설이자 연애소설인 걸어서 하늘까지를 들여다보면 송정리역 부분이 그려진다. “라면집에서 나와 역 앞 낡은 3층 목조건물의 이층에 있는 다방에 들어가 창 쪽에 앉으며 정만이가 입을 열었다,”에서 지금은 도로 확장으로 사라진 3층의 목조건물로 송정리역과 같이 강점기에 지어졌고 삐거덕거리는 나무계단을 밟고 2층에 오르면 만나는 다방의 이름은 신신 다방이다.

파출소 앞, 등나무가 하늘 한가운데를 가린 벤치에 앉아 잠시 쉬고 있던곳에서 그 파출소는 역파(역전파출소)로 동파, 서파와 함께 세 곳의 파출소가 있었다. 지금은 역파도 사라지고 역의 대합실이 부족해 역 마당에 있던 개방형 야외 대합실도 사라졌다. 어디 사라지는 게 역의 주변 풍경뿐이겠는가. 역 앞에 속칭 1003번지라 불리던 홍등가도 사라지고, 그 뒤 매일시장은 1913 송정역시장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고향의 여기저기를 걸어보았다. 정태춘이 부른 노래 ‘5.18’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그 꽃들 베어진 날에 아 빛나던 별들/송정리 기지촌 너머 스러지던 햇살에/떠오르는 헬리콥터 날개 노을도 찢고에서 기지촌의 이름은 용보촌이라 불리던 곳으로 광주공항이 새들어 있는 전투비행단의 정문에 인접한 마을이다. 머리는 곱슬하고, 눈은 새까맣고, 피부색이 달랐던 아이들이 유독 많았던 곳이었다. 자주국방을 하지 못한 단면이기도 하다.

또 다른 마을로 신덕마을이 있다. 내가 초등학교에 가던 길을 잠식해 버린 금호타이어와 인접한 마을로 목포로 향하는 완행열차가 송정리역에서 서서히 출발을 서두르면 증기기관을 위한 석탄을 갈취라 해야 하나, 훔쳤다 해야 하나, 철길로 던져진 석탄은 단지 그들의 생계를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다. 운수리 마을은 어등산에 포병학교 105mm 사격이 끝나면 위험천만의 불발탄에도 파편을 캐내야 했다. 파편은 그들의 생계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아득한 그 시절을 더듬으며 송정공원에 오른다. 도서관이 있고, 현충탑이 있고, 일본식 건물형태의 절집이 있다. 절 뒤에 있던 일제 신사는 사라졌다. 신사 뒤에 있던 상무대 포병학교 105mm 포 사격장도 사라졌다. 당시에 공원 뒤 사격장에서 포를 쏘면 어등산에 떨어졌다. 폭발과 함께 흙먼지가 일어나고 한참 지나면 귀에 꽝하는 폭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고 보면 송정리의 앞에는 종일 전투비행기가 뜨고 내리고 뒤에는 종일 포탄이 터지는 전장 터와 다르지 않았다.

그러한 최악의 환경 이전에 예인이 태어났다. 용아 박용철과 국창 임방울이 그들이다. 함께 소촌리에 살기도 했다고 들었다. 내가 부산으로 가기 전에는 박용철 시인의 부인 임정희 여사와 마을길을 거닐며 많은 이야기를 듣고 담았다. 떠나가는 배는 영랑이 서정시의 상아탑이라 했고, 비 내리는 날은 미당이 좋아했고, 이대로 가랴마는은 선생이 외로워하던 21세 쯤 작은 사랑채에서 쓴 시라 하셨다.

큰 사랑채는 시아버지가 쓰셨다고 하셨다. 특히 사랑하던 말이라는 시는 용아 나이 25세로 광주학생사건이 일어났을 때 쓴 시라 일렀다. 당시에 솔모리라 불렀던 지금의 소촌동 용아 생가의 마루에 앉아 아득한 지난날을 생각하니, 고향을 떠난 시절의 부채가 조금은 탕감이 되는 듯 풋풋했던 그때의 기억이 너무나 선명하다. 어디선가 앞산도 첩첩하고 뒷산도 첩첩한디 혼은 어디로 향하신가하는 임방울의 노랫가락이 들려오는 것만 같다.

용아와 함께 솔모리에 살았으나 사랑했던 젊은 기생 산호주를 먼저 보내고, 그 슬픔을 노래한 임방울도 전북 김제의 한 무대에서 쓰러졌다. 죽음이라는 이름으로 한 번 떠나면 영영 되돌아 올 수 없다. 철이 많이 부족했던 그때 나는 마치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고향을 뒤로했다. 우리 대중가요에 타향도 정이 들면 고향이라고사실 고향에 살았던 것보다 배로 더 살았던 부산에 정도 많이 들었다. 무뚝뚝하지만 속이 깊은 부산 친구들과의 우정이 그렇다.

옛 말에 이르기를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 했다. 정말이지 옛 말이다. 아날로그 시대가 시대의 유물이 되고, 디지털 시대라 부르는 작금의 현실은 2~3년이면 변한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만큼 송정리도 변화의 물결에 편승, 많은 흔적이 지워지고 낯선 풍경의 고향이 되었다. 그래도 내 마음에 담긴 고향은 변함이 없다. 흐르는 황룡강에서 모래무지를 잡고 환하게 웃던 어린 날 동무들의 모습이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처럼 흐르는 송정리역에서 궁리한다. 오늘은 호남선 목포행 열차에 오를까? 경전선 순천행 열차에 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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