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용식 공학박사·건축기술사·수필가

누워있던 자리에서 가만히 눈을 뜬다. 이불 속은 새들이 새끼를 치는 보금자리처럼 포근하고 아늑하다. 가만히 귀를 열어놓고 바깥소리를 듣는다. 이 순간이 오래 지속되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을 내려놓고 길게 기지개를 켠다. 아침 일곱 시가 한참 지났다. 침대에서 일어나기 전에 하는 나만의 몸풀기한다. 양다리를 들었다 내리는 운동에서 몸 비틀기, 허리 풀어주기 등.

난 아침잠이 많다. 여덟 시 가까이 까지, 잘 때도 있다. 어느 순간, 이 새벽 시간이 무척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늦은 시간까지 특별히 할 일도 없으면서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저녁형 인간. 생체시계도 열 시에 잠드는 것이 제일 좋다는데 말이다.

작년 가을, 아침 늦잠의 행복감을 과감히 포기하고 여섯 시에 알람을 맞추었다. 한 시간 남짓 맑은 정신에 책을 읽을 요량이었다. 첫날 새로 산 옷을 입고 문을 나서듯 상쾌한 기분으로 일어났다. 문정희 시인의 시 세 편을 필사하고 주현성 작가의 ⟪지금 시작하는 인문학⟫을 펴들었다. 출간된 지 오래되었지만 내 관심의 기본지식을 채워주기에 알맞은 책이었다. 집중력도 괜찮고 메모 노트의 분량도 늘어났다. 하루 한 시간이면 일 년이면 365시간. 이 시간이 온전히 내 것으로 생각하니 그만큼 내 삶이 늘어난 것 같아 미리부터 흥분이 되었다. 지식의 몸무게가 비만이 되면 어쩌지?

작심 칠 일을 넘기지 못하고 무너졌다. 아침잠의 그 달콤한 유혹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낮 동안 졸리는 것을 이겨내기 힘든 것도 구실 하나를 보태 줬다. 지금도 가끔 일찍 일어나 보지만 습관으로 자리를 잡지 못하니 내 의지의 얇음이 부끄러웠다. 어느 날 다시 시도하게 될 때는 아내와 서로 새끼손가락을 걸어야겠다.

살아오면서 많은 책을 읽지 못했다. 더구나 꼭 읽었어야 할 고전과 역사서, 철학 등 인문학 관련 책들을 읽는 데 소홀했다. 스스로 구실을 만든다면, 학창 시절에는 한눈팔며 뻘짓하느라 챙기지 못했고 직장 생활하면서는 자격시험과 학위에 매달리다 보니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이 나이에 새삼 읽으려다 보니 다른 구실이 생겨난다. 시력과 집중력이다. 글을 쓰려면 많이 읽고 많이 사색하고 많이 써봐야 한단다. 그중 가장 중요한 덕목인 지적(知的) 인풋(Input)이 부족하니 가는 길이 참 멀기만 하다. 이 또한 아침잠과 맞닿아있으니 나 자신과 잘 조율해 봐야겠다.

독서량이 부족한 아빠로서 아들이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책 읽기의 중요성을 얘기해 줬다. 꼰대 아빠라는 말 듣지 않으려고 가랑비에 속옷 젖듯 지나가듯 슬쩍슬쩍 얘기했다. 건성으로 들었는지 책과 별로 가까이하지 않은 눈치다. 새해 들어 내가 읽고 싶은 책 주문을 아들에게 시키기로 했다. 하루씩 건너 세 권이 도착했다.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와 쇼펜하우어의 소품집 ⟪남에게 보여주려고 인생을 낭비하지 마라⟫, 최민자의 ⟪손바닥 수필⟫이다. 혹시 알아? 이러다 보면 부자지간 소통의 채널도 되면서 저 보고 싶은 책이 생기면 함께 사서 보게 될는지? 올해에는 부자가 함께 책 읽는 습관 하나씩 더해졌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팔랑귀다 보니 남들이 하루 두 끼만 먹는 간헐적 단식이 좋다고 해서 따라 하고 있다. 저녁 7시 이후에는 물 이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고 아침 겸 점심을 11시 이후에 하는 것이다. 평소 비만이 아닌데도 체중이 3kg 정도 빠졌다.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팔랑귀에 다시 악마의 속삭임이 들려 온다. 육십 넘어 체중이 빠지면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 간헐적 단식은 하지 않는 게 좋다고. 다시 흔들리고 있다.

원하는 습관 가지기가 쉽지 않다. 해가 바뀌거나 입학, 직장을 옮길 때처럼 삶의 매듭이 생기는 날 습관 만들기를 시도한다면 성공률이 높을 것이다. 마라톤 경주에 처음 출전한 사람 중 나이의 끝자리가 9인 사람이 유독 많다는 통계가 있다고 한다. 우연일까. 새해는 자기성찰을 통한 삶의 변곡점을 찾기에 최적의 시간이다. 좋은 습관이 결국 좋은 삶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