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미린아파트 정문에 자리한 벚나무는 이곳이 빛가람동 이전에 금천면 석전리 유전마을이었음을 알려준다.

 

마을이 반달 모양이라 하여 달밭으로 불리다, 발음 때문에 닭밭으로 변형되어 닭 유(酉)·밭 전(田) 자를 써서 유전마을이라 했던 금천면 석전1리. 광주전남 공동 혁신도시에 편입되어 마을에 살던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2015년 3월 30일 빛가람동 첫 민영아파트인 우미린아파트가 들어섰다. 아파트 동쪽 한빛로 건너 유전저수지와 출입문 앞에 우뚝 선 오래된 나무만 이곳이 유전마을이었음을 알려준다.

 

“저수지 규모가 조금 줄어들고, 마을 뒤편에 사당 지을 때 심었다는 300년 넘은 벚나무가 아파트 정문 앞에 남아 있다”는 임명순(67세) 씨는 유전마을 마지막 이장을 지냈다. 임 씨는 “탯자리인 닭밭마을에서 50년 넘게 살다 혁신도시가 들어서면서 배과수원은 영암으로 옮기고 집은 원곡리 아파트로 이사했다”고 한다.

 

산포면 산제리가 고향인 윤도혁(83세) 씨는 “서울에서 비닐하우스에 고추랑 토마토 등을 재배하며 살다 연로하신 부모님이 절대 ‘서울 생활’은 못하겠다고 하시는 바람에 장남인 내가 내려올 수 밖에 없었다”며 “1980년 귀향해서 농사짓다 힘에 부쳐 정리하고 이사 온 지 8년째”라고 한다.

 

빛가람동으로 이전한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아들과 함께 2019년 이사왔다는 이군자(82세) 씨는 “아들이 2022년에 결혼하면서 분가해 혼자 있지만 경로당에 나와 사람들과 어울려 즐겁게 지내고 있다”며 “전에 살던 서울집이 재개발돼 2025년에 입주해야 하는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는 걱정 때문에 그새 정 든 여기서 계속 살까 고민 중”이란다.

 

▲ 커뮤니티센터에는 빛가람동 아파트 중 유일하게 수영장이 있다.

 

영암군 신북면에서 금은방을 하다 2018년 이사 온 정금순(74세) 씨는 “먼저 와서 직장생활하는 아들이 바깥에서 식사하는 게 마음에 걸려 2년만 같이 살자고 했는데 어느새 3년이 지났다”며 “혼자 사는 게 익숙했는지 아들이 나가 살고 싶다고 해서 더는 붙들지 못하겠다”고 아쉬움을 드러낸다.

 

바닷바람 맞으며 잠 못 자고 일해야 하는 김농사가 힘들어 1988년 완도군에서 왕곡면 덕산리로 와 배과수원을 시작했다는 서금례(79세) 씨는 “배농사를 처음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배나무 한그루면 대학 보낸다는 말을 할 정도였다”며 “과수원 터에 배테마파크가 들어오는 바람에 2011년 금천면으로 왔는데, 이마저도 아파트 부지가 돼 정리하고 2019년 이사왔다”고 한다.

 

혁신도시를 만들면서 5대조 할머니 묘를 잃었다는 이완석(52세) 씨는 “광주도시공사가 등기부등본 상 명의자와 보상협의를 진행하는 바람에 문중에선 선산을 옮기는 것조차 몰랐다”며 “당시 명의자가 치매를 앓다 사망하는 바람에 이장한 위치조차 확인하지 못했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낸다. 이 씨는 “선산이 있던 곳이라 항상 문중 어르신들을 모시고 산다”는 기분을 느낀다고.

 

광주광역시의 아파트에 살다 ‘시골살이’를 바라는 부모님과 함께 다시면 가흥리로 이사 온 지 5년여 됐다는 김윤정(36세) 씨는 “결혼하고 이사 와 7개월 된 아이 키우느라 직장을 휴직하고 있다”며 “노안면에 있는 회사에 출퇴근하기도 편하고 공원 등이 잘 돼 있어 살기 좋다”고 만족감을 표한다.

 

▲ 잔디밭에 석재조형물이 놓인 중앙광장을 주민들이 지나고 있다.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면 직설적으로 지적하는 성격 탓에 동대표와 입주자대표회장을 맡기도 했다”는 강정진(55세) 씨는 “보육시설·학원 등과 계약한 대형버스가 아파트 안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교통체증으로 인한 주민불편이 심각해 관련 행정기관을 쫓아다니며 소형 승합차량만 출입하도록 했던 것이 가장 큰 보람”이라고 한다. 서울서 나고 자란 강 씨는 지인 소개로 혁신도시에 편입된 금천면 동악1리 상야마을 출신 남편을 만나 광주광역시에서 살다 2015년 이사왔다고 한다. 

 

혁신도시가 조성될 당시 인근 산포면에서 공인중개소를 운영했다는 김이곤(77세) 씨는 “서울 등에서 온 사람들이 큰 여행가방에 현금다발을 담아가지고 와서 부동산에 투자했다”며 “2년여 짧은 시간에 부동산 가격을 올려서 돈 벌고 떠나는 ‘투기’라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고 한다. 우미린아파트 노인회장을 맡고 있는 김 씨는 “전임자의 잔여임기 1년만 하려고 했는데 주민들이 다시 일을 맡겨 앞으로 4년을 화합하고 즐거운 아파트로 만들기 위해 봉사할 작정”이라고 덧붙인다.

 

1,078세대 2,647명이 살고 있는 우미린아파트는 국공립 어린이집 1개소와 민간 어린이집 3개소, 돌봄교실 2개소, 어린이놀이터 2개소 등이 있다. 정문을 들어서면 만나는 에듀센터는 1층에 무인카페와 작은도서관이 있고, 2층에 독서실이 마련돼 있다. 커뮤니티센터에는 빛가람동 아파트 유일의 수영장과 골프연습장, 탁구장 등이 있으며 에듀센터와 커뮤니티센터 뒤편으로 잔디밭 위에 석재조형물이 놓인 중앙광장이 있어 주민들의 산책로로 이용되고 있다.

인터뷰 / 박상하 입주자대표회장

 

 

“전체의 부담은 줄이면서 이용자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활용할 수 있도록 사용요금을 부과함으로써 만성 적자인 커뮤니티센터 운영개선을 위해 주민들과 함께 고민했습니다” 우미린아파트는 지난 5월부터 커뮤티니센터 공동부과금 1만4,400원을 1만2천원으로 낮추고, 헬스와 골프, 수영장 등 시설별 이용자들이 각 5천원에서 1만5천원으로 부담하는 것으로 바꿨다.

 

주민들의 재신임으로 지난 9월 연임에 성공한 박상하(55세) 우미린아파트 입주자대표회장은 “신뢰와 소통으로 입대회를 운영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수영장을 없애는 것보다 적은 부담으로 더 높은 효율을 가져올 수 있는 방안을 찾았다는 데서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서울특별시가 고향인 박 회장은 “초·중·고를 다닌 경기도 이천시가 두번째 고향이라면, 집사람의 탯자리이자 지금 살고 있는 나주는 제3의 고향”이라며 직장 동기의 소개로 만난 부인과 3년여 연애 끝에 2002년 결혼해 두 아들을 두고 있다. 

 

“나주시에서 수학1등급이 2명 나왔는데 그 중 한명이 우리 둘째”라며 어깨를 으쓱해 보이는 박 회장은 “전남대 전자컴퓨터 계열에 합격해 입학을 앞두고 있다”며 웃음을 감추지 않는다. 운동을 좋아해 체육을 전공하는 큰 아들은 현재 군 복무 중이라고.

 

15년여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2008년 떡과 인연을 맺은 박 회장은 “처음엔 광주광역시 남구에서 가게를 열었는데 상권이 신통치 않아 힘들었다”며 “혁신도시에 희망을 걸고 2015년 지금의 가게를 열었는데 자리를 잡을만 하니 코로나가 터져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고 아쉬워한다. 동도 트기 전인 새벽 4시에 어김없이 일을 시작한다는 박 회장에게 희망의 해가 환하게 떠오르길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