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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대구(大邱)역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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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8호] 승인 2023.12.10  23:4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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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채석 기행작가

“여사님! 대구 태생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천재 화가이면서 비운의 화가라 불리는 이인성 화백이 살던 곳이 이 근처 어디라고 그러던데 아시면 좀?” 

“어머, 어떡하지요. 이야기는 들었는데 정확한 곳은 몰라요. 남산병원 근처라던가, 그 화백이 남산병원장 딸과 결혼했었거든요.” 

그러면서 다방의 손님들에게 이인성 화백의 집 위치를 물으며 어떻게든 알려주려고 하지만 아는 분은 없었다.
 
“이거 죄송해서 어떡하죠. 그런데 오래전에 제가 이인성 화백의 그림을 한 점 가지고 있었어요. 그리고 이 다방을 운영 한지가 30여 년이 넘었는데 바로 이인성 화백과 연관이 있어요. 왜냐하면, 이 화백이 아카데미극장 부근엔가 ‘아르스(ARS) 다방’을 열었어요. 그러면서 주인이 바뀌고 점포를 옮기면서 이름도 ‘미도 다방’이 되었어요.”
 
“아! 그렇군요. 진해에 가면 흑백이라는 다방이 있었는데 그 유명한 유택열 화백이 운영했죠. 그러고 보니 이인성 화백이 다방을 열었던 것도 모두 문화를 사랑하는 예술인들과 만나고 소통하기 위해서 숫제 직접 그 공간을 생각했던 게 다방만큼 좋은 장소가 없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면에서 유택열 화백과 공통점이 있었군요. 여사님!”
 
동안 유치한 나로서는 다방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하느님이 말씀하시는 그 어린양이 아니라 김양, 이양, 정양, 등의 레지들이 쟁반에 커피를 나르고, 쌍화차를 나르고, 도라지 위스키를 나르고, 세월을 나르던 공간에 손님이라야 터줏대감처럼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유난히도 엉덩이를 씰룩거리던 박양의 탐스러운 방뎅이나 손목을 은근슬쩍 만지려고 애를 쓰던 곳으로, 중요한 일로 요긴한 사람을 만나는 장소가 아닌 딱히 시간을 보내기 위한 것이지만, 그 시간은 잉여시간은 아니었다. 
 
어떻게든 양들의 환심을 사고 싶은 수컷 나름의 계산이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이날 찾은 미도 다방에는 그런 양들은 없지만, 어르신들이 군데군데 앉자 도란도란 추억을 나누고, 테이블마다 찻잔 외에도 웨하스나 비스킷 종류의 과자가 푸짐하다. 아마 덤으로 드리는 정 여사의 배려다. 요즈음 다른 나라 이름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는 커피숍에선 번호표를 받고 기다리거나 실내장식 등 세련미는 있다. 
 
그러나 뭐라도 하나 더 주문하려면 추가만 있을 뿐 덤은 없다. 정나미가 없다. 언제부턴가 핵가족화되면서부터 ‘우리’라는 말보다 ‘나’라는 지극히 개인적 타성에 젖어 남에게 배려보다는 나의 이익에만 파묻히고, 보이는 아름다운 미소는 위선적 친절만 습관처럼 묻어 있다. 이러한 것은 조그만 지나도 헌것이나 촌스러운 것 정도로 치부해 버리는 하위적인 키치와 컬트문화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싶다.
 
아무튼, 나는 세월의 속도가 무섭다. 머무르고 싶은데 머무를 수 없는 속도전의 세상, 뭔가 까닭 모르게 울컥 밀려오는 그리움마저도 그리워할 수 없는 세상에서 추억의 공간을 떠올려준 것이 바로 옛날식 다방이었다. 그래서 진해에 있는 흑백에서 북방 북청의 선 굵은 추상화가  유택열을 만났고, 대구의 미도 다방에서는 한국전쟁 당시 경찰관과의 시비로 인해 총탄에 맞아 생을 달리 한 비운의 화가 이인성을 만났다.
 
그러고 보니 예술가와 다방이라는 공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으로 까마귀가 굽어본다는 그림 ‘오감도’의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 이상이 운영했던 ‘제비 다방’이 생각나고, 다방은 아니지만, 프랑스 여류 화가 마리 로랑생의 이름에서 따온 ‘마리 서사’는 ‘세월이 가면’의 박인환이 운영했던 서점인데 아마 책을 판다기보다는 김수영이 찾아오고, 전혜린이 찾아오고 등 서로 만나 문화적 담론을 나눴던 장소가 아니었을까. 
 
아무튼, 1952년에 문을 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전주의 ‘삼양 다방’이 추억을 품고 이미 사라졌고, 결국에 대구의 미도다방도, 그 어떤 사소한 것이나 가치 있는 것도 사라지겠지만, 우리는 알아야 한다. 정녕 소중한 것은 사라지거나 잃어버린 후라는 것을 마음속 깊이 생각하며 걷는 대구의 후미진 길에서 이상화, 이인성, 현진건, 이장희, 이동하, 김원일 등의 문화예술인과 함께 걸었다.
 
광주 무등산과 같이 팔공산 자락 아래 거대한 분지로 금호강과 낙동강이 에워싸고 흐르는 달구벌達句伐 대구는 지금 수구 보수적 일지는 모르겠으나, 이육사 등과 함께 항일저항운동의 근거지로 그 몫을 했고, 서상돈과 김광제 등이 국채보상운동을 전개해 전국적으로 큰 호응을 얻었고, 경남 진주와 더불어 형평사운동이 활발했고, 이승만의 독재가 노골화되자 대구지역 고등학생들이 2. 28 학생운동을 전개해 4. 19 의거로 이어졌다.
 
아무튼, 대구는 한국동란의 피난지이며 부산과 함께 급격한 인구의 유입으로 발전한 도시다. 2003년 2월 지하철 참사로 200여 명에 이르는 사망자 외에도 실종자와 부상자 등 큰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이 시간 이후로 지하철이라는 이름도 도시철도로 바꿔 부르게 되었다. 그래도 방천시장에서 태어난 뮤지션을 기리는 시장 주변의 김광석 거리에 스피커에는 생전에 그가 부른 노래가 은은히 흐른다.
 
“거리에 가로등 불빛이 하나둘씩 켜지고/검붉은 노을 너머 또 하루가 저물 땐/왠지 모든 것이 꿈결 같아요” 라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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