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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성북동 2통
김덕수 객원기자  |  najukd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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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8호] 승인 2023.12.10  23:3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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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핏줄같은 골목길에 나주사람들의 역사와 문화 녹아있어

항일의병유적에 나주세무서·우체국, 병원·약국 등 상가 즐비한 중심지
호남 최초 쌀도정공장과 양곡창고는 도시재생 통해 복합문화공간 탈바꿈
 
   
▲ 조선시대 죄인을 가두는 옥이 있었다 하여 이름지어진 옥당거리가 성북동 사람들의 추억을 불러내고 있다.
 
“양복쟁이로 60년을 살았어. 집 사서 여기로 온 지도 36년이여” 성북동 2통이 시작되는 국제양복점 박영문(76세) 씨는 “열여섯살 때 영광군 염산면의 고향 친구와 나주에 와서 매형이 운영하던 양복점에서 기술을 배웠다”며 “나는 양복점으로 친구는 세탁소로 지금까지 살고 있다”고 한다. 중앙동 우주컴퓨터세탁이 그 친구의 점포다.
 
중앙로가 개통되기 전까지 나주의 중심상권이던 금성길에서 가장 오래된 점포는 ‘농림상회’다. 결혼 초 고향인 금천면에서 살다 ‘먹고 살기 위해’ 농림상회를 연 양삼순(79세) 씨는 “1977년부터 했응께 50년이 돼 간다”며 “생필품을 파는 슈퍼도 같이 했는데 지금은 사료와 양곡만 취급한다”고 한다. 
 
‘토끼야 오리야’ 식당을 운영하는 김평월(61세) 씨는 “완고하신 시아버님의 반대 때문에 아이들 다 키우고 2012년에 가게를 시작했다”며 “토끼탕과 오리탕이 주 메뉴지만 오래된 단골들이 부탁하면 어떤 메뉴도 가능하다”고 한다. 김 씨는 “김치며 장아찌, 젓갈 등 모든 반찬을 직접 만드는데 손님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행복하다”고 덧붙인다.
 
대신부동산 정범주(68세) 씨는 “요 앞 불닭발집 자리가 대장간이었는디, 불이랑 인연이 있는 땅이란 생각이 든다”며 “지금은 사라진 장의사며 병원이랑 각종 상가가 즐비했는데 요즘은 사람 보기가 힘들 지경이 됐지만 고향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고 아쉬움을 표한다. 정 씨와 함께 있던 박건기(67세) 씨는 “오랜만에 초등학교에 갔다 학창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오래된 나무를 끌어안고 ‘잘 있었냐’고 혼자 안부를 물었다”며 “친구들과 어울려 놀던 추억의 장소들이 개발로 훼손되고 있어 안타깝다”고 한다.
 
   
▲ 정미소 옆 금성길에 동문 안의 유일한 소방샘이 있었지만 1990년대 말 메워졌다.
 
울금과 지치, 마늘을 활용한 요리로 2007년 특허를 취득한 이도희(65세) 씨는 지난 3일 다향기대복식당을 열었다. 이 씨는 “송촌동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30여년 살다 지난달 12일 돌아왔다”며 “성공해서 돌아오고 싶었는데 세상사가 그리 맘처럼 되지 않는다”고 한다.
 
직장 일로 2022년 이사 온 박국철(46세) 씨는 “단독주택에 살고 싶어 광주의 아파트를 정리하고 세식구 살기 편하고 아담한 새 집을 지었다”며 “도로변에 위치해 있어 대문 앞을 가로막은 주차와 음주 후 흡연소음이 다소 불편하긴 하지만 사는 데 불만은 없다”고 한다.
 
경북 김천이 고향인 풍전쭈꾸미 장은숙(61세) 씨는 “구미에서 나주 출신의 남편과 결혼해 살다 2003년 나주로 돌아왔다”며 “맡며느리로 평생 손에 물이 마를 날 없었던 어머니가 양님딸(외동딸의 전라도 사투리)인 나는 절대 장남에게 안 보낸다고 했는데 큰며느리가 됐다”고 한다. 
 
송월동으로 옮겨 간 나주세무서 터에는 2014년 대한노인회나주시지회와 중부노인복지관이 들어섰다. 나주시청에서 정년퇴직하고 이듬해부터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이민철(68세) 씨는 “노인대학 운영과 615개 경로당 지원 등 2만여 어르신들을 부모님처럼 모시는 일에 긍지와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1백여년 전 호남지역 최초의 쌀도정공장과 정부양곡창고로 사용됐던 옛 정미소 자리는 2016년 도시재생사업, ‘나주읍성 살아있는 박물관 도시만들기’를 통해 복합문화공간 ‘정미소’로 다시 태어났다. 정미소를 위탁운영하고 있는 ‘나주읍성 마을관리사회적협동조합’ 곽영선(41세) 사무국장은 “2019년 개관 이후 공연과 전시, 도심캠핑 등을 통해 나주시민은 물론 인근 지역민들의 사랑을 받는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며 “다른 지방자치단체들로부터 성공사례로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음에도, 내년 사업이 축소될 상황이라 당혹스럽다”고 한다. 정미소 앞에는 동문 안의 유일한 ‘소방샘’이 있었지만 1990년대 말 회색 시멘트 아래로 사라진 것을 주민들은 아쉬워한다.
 
   
▲ 2019년 문을 연 정미소는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공연과 전시 등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금성길 46에 위치한 성북동우체국은 1993년 송월동으로 옮겨가기 전까지 나주우체국이었다. 우체국  건물 오른쪽 소나무 아래에 ‘1929년 11월 27일 오후 오일시장에서 경찰의 포위망을 뚫고 탈출한 학생시위대가 북망문을 거쳐 다시 시내로 진입해 시위를 벌이다 진압당한 곳’을 알리는 ‘나주항일학생운동 유적지’ 표지석이 있어 회한의 역사를 되새기게 한다.
 
국제양복점에서 시작한 2통은 라일세탁소까지 금성길 양편의 상가와 주택으로 이뤄진다. 라일세탁소 임병윤(75세) 씨는 “나주군청 앞에서 30여년간 양복점을 하다 군청이 떠나고 나서 이곳으로 옮겨 세탁소를 차린 지도 20여년 됐다”며 “라일양복점 단골들과 지금도 만나며 정을 나누고 있다”고 한다.
 
라일세탁소에서 중앙로 공영주차장으로 이어진 골목은 오래된 소나무가 있었다 하여 ‘솔청거리’로 불렸다. 솔청거리를 따라가다 보면 ‘옥당거리’로 이어진다. 골목 끝 정미소 인근인 성북동 171번지에 조선시대 죄인을 가두는 옥이 있었던 데서 유래한다. 금성길에서 사마교로 향하는 금성관 뒷길은 조선시대 곡물대여기관인 사창이 있었다 하여 ‘사창거리’이고, 금성관과 2통이 맞닿은 골목은 길이 좁아 남녀가 오갈 때 스칠 정도라 하여  ‘연애고샅’이다. 실핏줄처럼 2통을 감싸고 있는 골목길에 나주시민들이 살아온 역사와 문화가 녹아있음을 느낀다.
 
   
 
인터뷰/ 이경호 성북동 2통 통장
 
“순수하고 정의롭지 않다고 생각될 때면 결단!”
 
군복무 중 특수분장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성북동 2통 이경호(50세) 통장은 “오전 9시 반부터 오후 5시까지 학원수업을 하고 밤 10시 반부터 새벽 6시까지 일하는 강행군이었지만, 꿈을 갖고 도전하는 분야라 힘든 줄 몰랐다”며 “낯설고 새로운 분야로 제대로 시장이 형성되지 않고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계속 꿈만 꾸고 있을 수 없어 그만둘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고향선배의 소개로 중고차 판매 일을 하기도 하고 친구와 노점옷가게 등을 하던 이 통장은 “IMF 때 수입이 불안정한 객지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며 “목회활동을 하던 동네 형이 ‘너는 사회복지에 잘 어울린다’며 대신 지원한 바람에 1998년 늦깎이 대학생이 됐다”고 한다.
 
“경제활동도 병행해야 하는 대학생활은 쉴 틈이 없었다”는 이 통장은 “낮에는 복지관에서 일하고 밤에 공부해서 학사학위를 받았다”고 한다. 불합리한 복지관 운영을 둘러싸고 관장에게 문제를 제기하던 이 통장은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자 사표를 냈다고 한다. 전북 임실군의 노인복지센터장으로 일할 때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해 직장을 그만뒀다. 순수하고 정의롭지 않다고 생각되는 순간 다른 생각은 떠오르지 않더란다.
“나주성당 소속으로 간 교리교사 모임에서 학과 동기인 집사람을 만나자 공통점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는 이 통장은 이후 자연스레 어울리며 사랑을 키웠고 지금은 두 아들을 둔 가족이 됐다. 
 
2017년부터 옥상에 공방을 만들어 목공을 시작한 이 통장은 “색과 무늬가 예쁜 나무로 독특한 십자가를 만들어 봤는데 반응이 너무 좋았다”며 “이듬해 실용신안등록을 받았고 최근엔 ‘우리내십자가’라는 이름으로 수제공예품 전용 인터넷쇼핑몰에 입점확인까지 받았다”고 한다. 쉬지 않고 일하며 도전하는 이 통장의 꿈이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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