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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샛골나이와 쪽 염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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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7호] 승인 2023.11.26  20:2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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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북구 (사)한국농어촌관광학회 수석 부학회장
나주세목은 조선말 최고의 무명 옷감이었다. 옷감이 돈처럼 사용되던 일제강점기 시절 장안 도부상(到付商)들은 나주세목을 비단 다음가는 유통수단으로 높이 취급했다. 그들은 거드름 피우는 선비들에게 나주샛골의 무명을 팔고 다녔다. 
 
조선일보 1925년 1월 13일 자 ‘음력설을 압해 두고’라는 기사를 보면 “와사직(瓦斯織)이 1필에 3원 70전, 한양목(漢陽木)이 1필에 2월 20전, 평양수목(平壤水木)이 1필에 2월 50전, 나주세목은 1필에 6원이다.”라는 내용이 있다. 나주세목이 유명 직물로 언급된 것과 함께 가장 비싼 직물로 소개돼 있다.
 
동아일보 1931년 8월 28일자 ‘신안혼례식(新案婚禮式) 아울러 신구례식(新舊禮式)의 검찰(檢察)’이라는 기사에는 “나주세목(羅州細木), 평양수목(平壤水木), 철원명주(鐵原明紬), 한산세저(韓山細苧), 안주항라(安州亢羅)... 등은 결코 외국의 주단에 내리지 않는다,”라는 내용이 있다.
 
일본인 철학자이자 미술가로 유명한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는 1937년 5월 8일 목포에서 광주로 이동 중 나주 다시면(多侍面)을 지나다가 장날이어서 다시 석천(石川) 기슭을 따라 형성된 장터에 들렀다. 그는 “시골 장터에서 다시 무명(多侍木綿) 1필이 8, 9엔에서 상등품은 20엔을 호가하는 매우 비싼 가격이었다.”라며, “이는 이것을 사랑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라고 했다.
 
나주세목은 위와 같이 명품으로 알려지고 유통되었는데 그 비결은 세목(細木)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가느다란 실로 직조되었기 때문이었다. 실을 뽑고 옷감을 짜는 길쌈 공정에서 난이도는 승(升)의 수치에 따라 달라진다. 승(한 승은 80올)이 높을수록 실오라기를 더욱 가늘게 뽑아내야 하므로 기술과 차분한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조선 시대 옷감의 수치는 대체로 궁중에서 12승(升) 이상을 사용하게 하고 양반들은 10승(升) 내지 그 이하로 한정 사용케 하였으며, 서민층은 9승(升) 이하를 사용케 하였다고 한다. 베 한폭 32cm에 12승이라고 하면 9백 60올이 들어가고, 12승 베 한 필의 실을 다 풀어 그 길이를 이으면 장장 3만 6천 4백 80cm(약 90리)나 된다.
 
모시에서 세모시라고 하는 것은 10승 이상을 가리키며, 무명은 곱게 짜도 보통 10승(升)인데, 나주세목은 11-12승으로 가느다란 올로 짜여졌기 때문에 마치 옥양목처럼 고왔다. 가격도 다른 고을 무명 한 필이 벼 한 가마 정도인 데 비해 나주세목은 벼 한 섬 가격으로 매우 비쌌다. 비싼 나주세목에다 쪽 염색을 해서 남성은 두루마기, 아낙네는 저고리를 만들어 입으면 최상의 사치였다.
 
나주세목은 고운 만큼 길쌈 과정이 까다로웠다. 좋은 목화송이를 따로 따 모았다가 잡티를 가려낸 뒤 씨아에 앗고, 거기에 나오는 잡티를 가려냈다. 고치를 말고 물레에서 실을 뽑은 뒤 12승 세목 한 필을 짜는 데 18일이 소요됐다. 물레나 베틀은 정결한 독방에 차려 놓고 하되 밤에는 석유 등불의 그을음과 담배 연기를 피하고 목화 씨앗 기름(綿子油)을 접시에 담아 불을 켜고 작업을 했다. 성격이 차분하고 손끝이 야무진 아낙네가 10년 혹은 20년을 익혀야 비로소 제대로 된 나주세목을 짤 수 있었다.
 
나주세목의 산지로는 특히 다시면 샛골 마을이 유명해 육당(六堂) 최남선(1890-1957)은 ‘고사통(故事通)’에서 조선 말기 부녀자들의 직업으로 ‘나주샛골나이’를 소개했다. 이것이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는데, 샛골나이에서 ‘나이’는 ‘낳이’에서 온 말이고, ‘낳이’는 ‘낳다’에서 유래된 말이다. 그래서 정확하게는 ‘나이’는 ‘실잣기’가 되나 일반적으로 ‘옷감을 짜는 일’로 해석되고 있다.
 
나주 샛골의 샛골나이는 전해오는 섬세한 기술로 인해 1969년에, 나주세목을 더욱 값지게 만들었던 샛골의 쪽 염색은 2001년에 각각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나주 샛골나이와 샛골 쪽 염색은 수레바퀴처럼 균형을 이루며 나주 염직(染織) 문화의 상징과 정체성이 되어 왔다. 그런데 쪽 염색 기능은 활발하게 전승되고 있는데 비해 샛골나이는 소멸 위기에 놓여 있다. 관련 기관은 물론 시민들의 보다 많은 관심과 응원이 필요해 보인다.
 
   
▲ 쪽 염색 된 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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