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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대구大邱역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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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6호] 승인 2023.11.13  00:3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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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채석 기행작가

언젠가 내가 대구역에 발을 내디뎠을 때는 남쪽 지방 산허리에도 적상치마를 두른 것처럼 추색이 깊은 날 대구를 거닐면서 근대로의 여행을 했다. 이동하의 연작 『장난감 도시』와 김원일의 『마당 깊은 집』을 오래전에 읽고 대구라는 도시는 마음에서 줄곧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가끔은 열차표를 손에 쥐고 동대구역이 아닌, 대구역에 내려 현대의 거리 동성로나 근대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향촌동 길을 걸었다.

대구역을 나와 지하상가를 지나 출구로 나오면 대구의 다른 이름 달구벌의 최대 번화가라 일컫는 동성로다. 달리 패션과 멋과 유행을 선도하는 젊음의 거리로 각광을 받는 곳이다. 반면에 대구역의 우측 횡단보도를 통해 대각선으로 건너면 곧바로 향촌동이다. 금세 경성의 어느 거리나 골목에 있는 듯 한 환경과 풍경이다. 낙후되었다기보다는 깊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더 정이 가는 곳이다.

맨 먼저 찾은 곳은 대구문학관이었다. 오랜 건물을 죄다 헐어버리지 않고 리모델링을 통해 개관한 곳으로 문학관의 1. 2층은 향촌문화관이다. 향촌은 광주의 충장로나 부산의 광복동과 같이 대구의 중앙 통으로 불릴 만큼 옛 영화를 간직하고 있었던 곳이다. 한국전쟁 때는 피난 문단이 형성될 정도로 문인들의 정신적 고향이었으며 대구의 발전을 이어온 역사와 같은 향촌의 옛 모습을 정겹게 담아 놓았다. 
 
시네마스코프 필름의 흑백영화가 은막에 흐르는 영화관, 카운터 턴테이블과 전축이 자리하고, 까만색 P-70형 다이얼 전화기와 시종 미소를 머금고 있던 마담이 있는 다방, LP판이 돌아가고 바늘 끝에서 스피커를 통해 소리를 잉태하던 레코드점, 가봉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해 준 양복점과 양화점, 막걸리 한잔에 고단하고 힘든 하루를 달랬을 주점 등의 모습은 시절과 세월을 담아둔 창고와 같았다. 
 
문학관은 3. 4층으로 빙허 현진건, 상허 이상화, 고월 이장희 등 대구를 꽃피울 정도로 대표하는 문인들을 만날 수 있는 전당도 있고, 당시의 작가와 동행하며 걸을 수 있는 공간이나 황소그림 이중섭의 은박지 그림, 비운의 화가 이인성의 그림도 만날 수 있었다. 또한, 작가로서 치열한 삶을 살았던 가치를 알 수 있는 공간 문학관은 그야말로 문학적 감정과 정서를 공감할 수 있는 대구의 또 하나의 자산이었다. 
 
또 다른 지하층에는 그 이름만으로도 녹슬지 않은 클래식 음악 감상실 '녹향'이 자리하고 있었다. 녹향은 해방 이듬해 이창수 선생이 축음기판 500여 장과 축음기 한 대로 시작한 예술의 공간이었다. 이후 피난시절에는 대구에 내려온 예술인들의 사랑방이었으며 양명문 선생의 가곡 '명태'도 이곳에서 탄생되었다고 한다. 하나 시류의 흐름은 질이 낮은 대중음악이 주류가 되었고, 고전음악을 찾는 발길이 뜸해지면서 경영난으로 말미야마 세월의 뒤안길로 사라질 뻔했으나 뜻있는 대구 예술인들의 노력으로 그 이름은 사라지지 않았고, 선친의 뜻을 이어 3남 이정춘 씨가 녹향을 지키고 있었다. 
 
나는 참으로 오랜만에 듣고 싶은 음악을 신청했다. Iosif Ivanovici의 ‘Danube Waves’였다. 음악이 흐르는 동안 한 여인을 생각했다. 대구를 여행하면서 마치 결혼식을 올리는 신랑이 성혼서약을 하면서도 첫사랑 여인을 잊지 못하는 것과 같은 걸까. 허무의 바다에 전신을 던져버린 한 떨기 패랭이꽃 같은 여자이며 화가 나혜석과 함께 당대 신여성을 리드했던 아이콘 윤심덕이라는 여인이었다.
 
이유는 그 곡과 연관이 있을뿐더러 숱한 스캔들, 뭇 남성들의 구애에도 미동조차 하지 않았던 그녀, 동안 마음이 심난하거나, 쓸쓸하거나, 허전할 때면 어김없이 그녀가 생각남은 물론이요. 이바노비치의 왈츠 곡 '도나우 강의 잔물결'에 직접 자작시를 붙인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하는 의문과 박인환의 시 '세월이 가면'이 그렇듯이 이 노래 또한 페시미즘의 극치를 이룬다. 다른 나라에서는 뭔가를 기념하는 노래로 불렸다.
 
어찌 보면 서정적일 수도 있고, 종교적일 수도 있고, 센티멘털하기도 하고, 낭만적일 수도 있지만, 내가 느끼기엔 너무나 비관적이다. 자신의 죽음을 미리 예견이라도 했기 때문이었을까?
 
“광막한 황야에 달리는 인생아 너에 가는 곳 그 어디냐 쓸쓸한 세상 험악한 고해에 너는 무엇을 찾으러 가느냐. 눈물로 된 이 세상이 나 죽으면 고만일까 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것 서름. 우는 꽃과 웃는 저 새들이 그 운명이 모두 다 같으니 생에 열중한 가련한 인생아 너는 칼 위에 춤추는 자로다.” (하략)
 
대판(오사카)의 축음기 회사에서 이 노래를 녹음할 당시 그녀의 모습은 처절하리만큼 침통했고, 그렇게도 울었다고 한다. 윤심덕뿐만 아니라 피아노 연주를 하던 동생 성덕도 마찬가지로 건반 위에 떨어지는 눈물을 씻으려고도 않고 그대로 고개를 돌려 독창하는 언니를 바라보았다고 한다.
 
"언니 왜 울었수?"
"넌 왜 울었니?" 
 
서로 묻기만 하고 울은 까닭은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말하지 않아도 안다. 예술이 그들을 울렸던 것이다. 그렇다. 나도 글을 쓸 때는 눈물이 나올 정도로 아름다운 문장의 글을 한 줄이라도 쓰고 싶은 생각이 들었고, 원고지에 그 눈물이 번져 알아보지 못하더라도 그런 글 한 줄 쓰고 싶었다. 그리고 소중한 보물처럼 아까워하고 싶다는 생각을, 생각을, 생각을 하며 골목과 골목길을 따라 걸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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