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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요일의 다짐
송용식 수필가  |  songys8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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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6호] 승인 2023.11.13  00: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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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용식 공학박사·건축기술사·수필가

얼마 전 11월 1일, 광화문에서 ‘詩의 날’ 행사가 있었다. 전날 조간신문을 보고서야 시의 날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실은 잡지 ‘소년’의 창간일(1908년 11월 1일)을 기념해 제정되어 올해로 벌써 17년이나 지났다는데도 말이다. 

행사장에 조금 일찍 도착해서인지 300여 석 의자에 드문드문 빈자리가 많았다. 주최 측에서는 참석자들에게 ‘광화문에서 詩를 노래하다’라는 행사 로고가 새겨진 에코백과 ‘서울, 365일 시를 만나다’ 시집 한 권씩을 선물로 주었다.
 
이순신 장군 동상 옆에 자리한 행사장에서 유자효 한국시인협회 회장의 “정치적 구호가 넘쳐나는 광화문에서 시가 넘쳐나는 날을 만들어보고 싶었다.”라는 말에 동참이라도 하듯 이날따라 일상이 되어버린 다른 정치집회는 없었다. 
 
이순신 장군의 주요 연대기를 시로 쓴 ‘남해 찬가’를 다섯 낭송가의 낭송으로 행사가 시작되었다. 원로 배우 박정자는 서정주의 ‘광화문’을, 연극인 손 숙은 한용운의 ‘님의 침묵’을 원고 없이 낭송했다. 얼마 전 별이 되신 김남조 시인을 추모하기 위해 나태주 시인은 ‘시의 어머니’를, 배우 김성녀는 김남조의 시 ‘겨울 바다’를 해금 연주에 맞춰 낭송했다. 모두 18편의 작가들 시가 낭송되고 행사의 마지막은 박목월의 ‘나그네’를 출연자와 참석자 모두가 낭송하며 마무리되었다. 근처를 지나는 시민들은 그저 그런 일상의 어떤 행사를 보듯 관심 없이 지나치지만 많은 시민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무대를 보기 위해 깨금발 서기를 반복하면서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찍기도 했다. 정치 구호로 혼탁한 광화문 광장이 잠시나마 격을 찾은 순간들이었다.     
 
몇 번 실내에서 하는 시 낭송회에 참관해 본 적은 있으나 낭송하는 시와 낭송자 모습이 무대 뒤 대형 스크린에 띄어질 때 느낌과 감동은 확실히 다르게 다가왔다. 특히 문정희 시인이 자작시 ‘한계령을 위한 연가’를 낭송할 때 시도 좋았지만, 검정계열의 코트에 빨간 머플러를 개성 있게 코디한 스타일이 너무 멋있었다. 낭송이 끝나자마자 재빨리 무대 뒤로 쫓아가 갖고 있던 시집에 사인을 받았다. 순간, 이 순간을 놓치면 오랫동안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칠십 중반의 시인에게 홀린 칠십 초반의 새내기 시인의 용기가 자신조차 어리둥절하게 만든 최초의 사건(?)이었다. 
 
행사 끝나고 뻐근한 다리를 끌며 종로통을 걸었다. 피맛골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면서도 선짓국에 소주 마셨던 기억을 더듬으며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공사장의 가설울타리가 한 벽을 이루고 띄엄띄엄 애연가들이 피우는 담배 연기와 꽁초들만 조심스럽게 버려져 있었다. 골목을 빠져나가 인사동 쪽으로 들어서니 갑자기 허기가 몰려왔다. 파전에 막걸리 한 잔이 당기기는 했지만, 혼자서라는 게 마음에 걸렸다. 그냥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한 개에 삼천 원 하는 ‘십 원 빵’ 세 개를 사서 인사동 초입 계단에 걸터앉았다.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문학 시대’에 성춘복 시인의 추천으로 문단에 등단해 말석에 자리 하나 받은 지도 4년이 흘렀다. 등단 시인이라는 무게에 짓눌려 시다운 시 한 편 쓰지 못하고 흘려보낸 시간. 감정의 근육이 무디어졌거나 굳어버렸나 보다. 대학 시절 지금은 작고하신 문병란 교수님이 생각난다. 시화전을 하겠다고 열 편의 시를 가지고 찾아뵙던 날 저녁, 술을 계속 권하시더니만 첫마디가 “시화전의 시로서는 훌륭하나…”로 시작하는 교수님 말씀. 대충 요약하면 설익었다는 것이다. 설익은 채 시화전은 감행했지만, 아직도 설익은 땡감은 익을 줄을 모르고 있다. 
 
시는 문득 예고 없이 온다. 밥 먹다 말고 오고 지하철 안에서나 뒷산을 맨발로 걸을 때도 온다. 비가 오고 바람만 불어도 온다. 갑작스러운 친구의 부음을 들었을 때는 눈물과 함께 서서히 빠져나간다. 한 줄 문장이나 남의 시 한 구절에서도 섬광처럼 지나간다. 엉뚱한 단어에서도 온다. 연관 검색어처럼 단어가 단어를 불러오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내 한 줄의 시가, 한 연 두 연으로 이어져야 하는데. 왜 끊기고 길을 잃을까. 이는 나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거나 자신을 객관화시키는데 치열하지 않아서인지. 시를 위한 시를 쓰다 나타난 후유증은 아닌지.
 
집으로 오는 지하철 안에서 詩의 날, 詩 요일에 다짐 하나를 했다. 우선 남의 시를 읽으면서 시의 몸부터 풀자. 그러면서 서서히 시의 근육을 다시 만들자. 하루 세 편의 시를 읽고 한 편씩 필사하자. 그런 날들이 쌓이다 보면 언젠가 내 체취가 묻어나는 나다운 시 한 편 건질 날 오겠지. 오늘부터 문정희 시인의 ‘한계령 연가’를 찬찬히 읽으며 필사를 시작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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