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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강 진례들에 학교鶴橋역(함평역)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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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3호] 승인 2023.09.25  00:3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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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채석 기행작가
판소리 단가 중 하나인 호남가湖南歌의 도입부는 “함평천지咸平天地 늙은 몸이”로 시작되는데 하늘과 땅 모두가 평평한 고장 함평에 호남선 열차를 타고 가려면 학교역에 내려야 했다. 조류 중에 가늘고 기다란 학이나 두루미의 다리를 연상하는 한자어 학교의 의미를 풀어 현지에 사는 사람들은 학교역이라 부르지 않고 모두 학다리역이라 불렀다. 나 역시도 고교생 때 친구인 광무를 따라 학다리역에 내려 버스를 타고 함평에 딱 한번 갔다. 
 
여행도 아니고, 친구의 친척이 요즘말로 함평터미널 옆에서 아이스깨끼(케이크) 공장을 한다는 말 한마디에 어떤 이유도 없이 따라가서 몇 년에 걸쳐 먹을 량을 실컷 먹고만 왔다. 그러니 함평에 돌머리해수욕장이 있는지, 고막천에 석교가 있는지, 향교리에 느티나무 팽나무 개어서나무 등의 숲정이가 있는지, 엄다에 자산서원이 있는지, 육회 비빔밥이 그렇게 맛있는지 등 아무것도 모르고 함평에 학다리라는 이름만 알고 갔다.
 
그랬던 내가 왜 다시 학다리를 떠올렸을까는 엄혹한 시대에 시답잖은 한가한 시詩가 아닌, 독재의 살벌한 바람, 독재의 지독한 악습, 독재의 무조건 강요, 독재의 불법적 폭력, 독재의 교묘한 탄압 등에 비겁하게 몸을 사린다거나 기회주의적이지 않은 시인의 고향에 이르고 싶었다. 4?19 혁명 시위로 다니던 고등학교에서 제적되고, 유신독재를 비판하는 시 〈겨울 공화국〉을 발표해 교사 재직 중 파면되고, 긴급조치 9호로 수감된 시인.
 
그는 신파조의 사랑이나 서정을 우려먹는 한가한 시인이 아니라, 군사정권에 정면으로 저항했다는 점이 내 마음을 확 붙들었다. 구리와 같이 휘어지라면 휘어지지 않고, 입 다물고 있으라면 침묵하지 않고,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지 않고, 부당하고 더러운 세상에 저항하는 시대정신이 살아 있는 시인을 내가 존중하지 않는다면 나 자신이 되레 비겁한 작자라 여기며 시인의 시비詩碑를 먼저 만나기 위해 함평엑스포공원 안 군립미술관에 이르렀다.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나 이미 떠났다고 대답하라.
꿈도 없이 누웠다가
이 새벽 안개 속에
떠났다고 대답하라.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나 이미 떠났다고 대답하라.
흙먼지 재를 쓰고
머리 풀고 땅을 치며
나 이미 큰 강 건너
떠났다고 대답하라.
 
(양성우 시인의 시 〈청산靑山이 소리쳐 부르거든〉 전문)
 
선돌에 새긴 시를 읽고 난 느낌은 딱 잘라서 한恨이다. 응어리지고, 답답하고, 억울하고, 원망이 풀어지지 않는 그 한이다. 어떤 대중가수가 노래했다. “벗어나고파 그대에게서 벗어나고파”라고, 그러나 양성우는 불행하고 암울한 현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절대적 현실을 벗어나기보다는 극복과 함께 절망의 시대를 넘어서고 싶은, 고통과 시련이 없는 이상적 이상향의 세계를 갈망하고 동경하며 함께 이르고 싶은 의미로 이해했다.
 
시비를 뒤로하고 출출한 배를 달래야 했다. 함평 재래시장의 뒷길에 육회비빔밥 식당이 몇 곳 있다. 맛있게 먹었다. 간판이 화랑식당 이던가는 명확지 않다. 다만, 한우 하면 주민이 살고 있는 인구수 보다 배나 많다는 전남 장흥이나, 강원도 횡성이나, 전국 각지에 유명한 곳이 더러 있지만, 게 중 함평이 으뜸인 이유는 우리나라 한우의 시세가 함평에서 결정이 된다고 한다. 이날 처음으로 생비(생고기) 익비(익힌)를 알았다.
 
동안 어디를 가면 그 지방의 유명 짜한 맛 집이나 특산물을 알아 두어야 하는데 동안 게을렀다. 전남 담양에 가면 대나무 숲길이나, 메타세쿼이아 길이나, 관방제림 둑길이나, 송강 정철의 송강정이나 식영정, 면앙 송순의 면앙정, 양산보의 소쇄원, 배롱나무 가득한 명옥헌 등에나 관심을 두었을 뿐, 국수거리가 있을 정도로 국수가 유명한지는 도무지 몰랐다. 실지로 천변 둑 위를 따라 길게 열차를 타고 가는 줄 알았는데 국수 먹는 풍경에 깜짝 놀랐다.
 
먹는 이야기를 하다 보니 함평에서 멀리 열차도 다니지 않는 담양에까지 와버렸다. 다시 양성우 시인이 광주로 대처로 드나들던 학교 학다리역으로 간다. 실지는 학교역이라는 이름을 계급장 떼어내듯 떼어 내고 함평역이 되었다. 추정컨대 KTX 노선 이설로 철길도 반듯해지고 역사도 새로 지었다. 그렇다고 빠른 열차가 모두 정차하는 것은 아니다. 하루에 한쪽 손가락을 굽힐 정도나 뜸하게 머물다 간다.
 
그만큼 시골 역들은 쇠태일로의 길에 들어서는 게 초고속열차만큼 빠르게 진행된다. 그래서 타고 내리는 게 아니라 카메라 들고 구경하러 오는 역으로 변하고 있다. 지금의 학교역은 왕복 4차선으로 뻥 뚫린 1번 국도변에 자리하고 있다. 역에 내리면 으레 있을 숙박시설이나 음식점과 같은 일상의 시설이 전무하다. 큰 길만 횅하다. 여타 지방은 시골 역으로부터 왁자한데 함평역 앞은 분위기가 뭔가 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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