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학년 5반 건물은 빨간 벽돌이 인상적인 현대식 2층 건물이었다. 발이 푹푹 빠지던 낡은 판자가 얼기설기 놓여있고 비가 새던 낡은 교실에서 지내다가 새로운 교실에 들어서니, 마치 내 앞에 신세계가 펼쳐지는 듯했다.

 

마룻바닥도 일렬로 깔끔하게 깔려있고 초로 바닥을 미끈하게 하는 작업도 고른 나무 바닥이라 편하게 할 수 있었다. 한 가지 단점은 실내화를 신지 않고 다니다가 까닥 잘못하면 발에 비접이 들어가서 피를 봐야 하거나 비접을 빼느라 애를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실이 새 건물이라 안에 있는 물건들도 모두 반짝반짝 빛이 나고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칠판도 기존의 칠판과 달리 잔흠집도 없고 매끈한 초록색의 자태를 뽐내며 윤기가 났으며, 전체적으로 낡아서 오래된 건물에서 배어 나오는 칙칙하고 우중충하며 음산한 기운이 없어서 좋았다.

 

낡은 건물의 창가에 드리워진 햇살과 새 건물의 창가에 드리워진 햇살조차도 다르게 느껴졌다. 천정부터 내려오는 통창에 걸려있는 하얀 커튼이 살랑살랑 바람에 움직일 때 가벼운 움직임도 좋았다. 이러한 모든 것이 우리 교실에 더욱더 애정을 갖게 했다.

 

5월이 지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 때 우리 3학년 5반은 이산가족처럼 흩어졌다. 그때가 언제쯤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임신 중이셨던 담임선생님은 출산을 위해 휴직하셨다. 황금 돼지띠에 아이들을 많이 낳아서 우리 학년은 다른 학년보다 1반이 더 많은 7반까지 있었고 우리 반은 다른 6개 반으로 흩어졌다. 

 

기간제 선생님이나 임시로 우리를 맡아줄 선생님이 없었던 것일까? 생각해보면 여름방학이 가까울 때쯤이라 그랬을 것으로 생각된다. 방학이 끝날 무렵 우리를 맡아줄 임시 담임선생님께서 오셔서 우리는 다시 한 교실에서 공부할 수 있었다. 

 

아가씨 선생님이라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여리여리한 몸에 눈이 동그랗고 가녀린 목소리를 가진 하얀 피부의 얼굴도 예쁜 선생님이었다. 한 달 정도 함께하며 우리를 돌봐준 선생님이었지만 헤어짐은 항상 슬프고 아쉬움이 남는다. 결혼한 선생님과 결혼하지 않은 선생님의 차이를 알 수 있었던 만남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여름방학은 영산포 곳곳을 돌아다니며 즐길 거리가 많았다. 여름방학 동안 친구들과 함께 들로 산으로 돌아다니느라 얼굴이 새까매지고, 온종일 땀 흘리며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다닌 덕에 때꼬장물이 꼬질꼬질해서 얼굴에 검정 얼룩이 뭉쳐있을 때도 있었고, 노봉산 지나서 흐르는 실개천에서 손으로 땅 짚고 수영하며 여름을 보냈다.  

 

빨래 가는 언니들을 따라가서 수영하고 기다란 민물조개, 재첩 조개 등을 잡기도 하고 물놀이하다 깊은 곳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기도 하고, 바닥의 돌부리에 넘어지고 부딪혀도 물놀이에 정신이 팔려 아픈 줄도 모르고 웃고 떠들던 시절이었다. 맑은 물의 실개천은 아이들에게 풍성한 놀 걸이를 제공하는 자연발생 놀이터였다. 즐겁게 물놀이 정신 팔려있다가 물뱀이 흐느적거리며 지나는 것을 보며 소스라치게 놀란 적도 있었다.

 

노봉산을 지나야 갈 수 있는 실개천, 여름방학이면 산 곳곳을 누비며 소꿉놀이하기도 하고 조그만 동굴탐험을 하기도 하던 동네 뒷산이 노봉산이다. 노봉산은 돌로 된 산으로 발파작업이 자주 있었던 곳이었다. 바위산의 바위에 구멍 뚫느라 ‘다다다다 다다다다’ 하루종일 들려오던 기계음과 그 구멍에 다이너마이트를 넣고 폭파하는 소음이 들리던 곳이었다. 

 

아이들이 뛰어다니며 오르내리기엔 위험한 곳이 많았지만, 놀이에 집중하느라 위험한 줄도 모르고 놀기에 바빴다. 가파른 돌 사이를 지나서 산을 내려가야 하기도 하고 구불구불한 밭 사이 샛길을 지나야 실개천으로 향할 수 있었다. 

 

동네 사람들이 언덕 사이사이에 작은 밭을 만들어 밭농사를 짓고, 그 밭 중에는 목화를 재배하는 밭도 있었는데 그 밭을 지나다가 하얀 솜덩어리가 보들보들할 때쯤 밭 주인 몰래 따먹기도 하고, 골목 사이사이 피어 있는 하얀 찔레꽃을 꺾어다 물병에 꽂아두고 꽃 구경을 하기도 했다.

 

노봉산 꼭대기에 올라서 먼 들판을 바라보면 속이 뻥 뚫리는 듯했고, 더운 여름 노봉산 나무 그늘에 만들어 놓은 원두막은 여름 더위를 피하기 좋았다. 

 

지금은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산이지만 그때 그 시절 소소한 즐거움을 주었던 동네 골목골목, 바람 부는 대로 움직이는 나뭇가지 사이로 비추는 햇빛과 나뭇잎의 움직임이 손을 뻗으면 잡힐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