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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봉황면 철야마을
김덕수 객원기자  |  najukd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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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3호] 승인 2023.09.25  00:2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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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룡산 아래 산 좋고 물 좋은 철야현의 현청이 있던 마을

고인돌이 있는 숲쟁이와 만호정 팔경은 철야마을의 오랜 역사 보여줘
마을 앞까지 물 들어오고 이천서씨·진주정씨 사당과 효열비 넘쳐나
 
   
▲ 철야마을은 덕룡산을 병풍삼아 각동리 수각마을과 철천리 수각·유촌·등내마을로 이뤄져 있다. [드론사진촬영 최종원]
 
쌓인 시간의 무게가 마을 곳곳에 드러난다. 마한 54개 부족국가 중 하나였으며 실어산현(백제), 철야현(신라)의 현청이 있던 봉황면 철야마을. 마을 입구 숲쟁이에 말없이 자리잡은 고인돌이며 고려 중엽에 창건한 만호정, 신라 민애왕과 장보고 군대의 전투, 항일의병, 한국전쟁 양민학살 등 철야마을의 역사를 수백년 느티나무들은 지켜봐 왔을 것이다. 
 
철야현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각동리와 철천리로 나뉘었고, 철야마을은 각동리 수각마을과 철천리 수각·유촌·등내마을로 이뤄져 있다. 철야마을을 감싸고 있는 덕룡산의 한치재를 넘으면 암정리, 돈밭굴재와 매봉재를 넘어 신동리를 통해 다도면을 오갔다. 
 
수각마을 이장 정현진(76세) 씨는 “500년 넘은 고목이 곳곳에 있고 산 좋고 경치 좋고 공기 좋기로 철야만한 곳이 없다”며 “하구언을 막기 전에는 영산강물이 마을 앞까지 들어왔다 나갔다 해서 재첩이며 칼조개 등을 많이 잡았다”고 한다. 
 
만호정에서 만난 정국진(65세) 씨는 “서울에서 예식사업하면서 고향 선후배들과 정기적으로 만나며 우정을 나눠왔던 터라 수도권에 지인들이 많아 노후를 고향에서 보낼 수 없을 것 같다”며 “남아 있는 집을 정리하려고 내려와 있다”고 한다.
 
다시면 가흥리 샛골마을이 고향인 이소례(92세) 씨는 “결혼할 때는 하나뿐인 딸이라고 트럭을 타고 왔는데 결혼하고 나서는 영산포 지나 구진포 거쳐 친정까지 걸어다녔다”며 “6.25전쟁 때는 면 직원인 남편이 해꼬지 당할까 무서워 저녁에 면사무소로 피난을 갔다”고 한다.
 
   
▲ 고인돌과 수백년 느티나무가 있는 숲쟁이는 마을쉼터가 되고 있다.
 
“결혼하고 농사짓다 서울로 가서 30여년 살다 내려온 지 10여년 됐다”는 임순덕(84세) 씨는 “더 이상 서울에서 경제활동이 어려워 부모님 사시던 집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임 씨의 고향은 빛가람동이 들어선 금천면 동악리 배맷마을이다.
 
‘탯자리가 일자리’라는 정순옥(68세) 씨는 “요양보호사로 고향인 철야마을 어르신 세분을 하루 3시간씩 부모님처럼 모시고 있다”며 “2018년쯤 면에서 운영하는 ‘찾아가는 학교’에 참가해서 방치되고 잊혀져가는 철야마을을 소개했는데 이듬해부터 마을 나무에 약을 치고 관리하는 모습을 보며 뿌듯했다”고 한다. 
 
등내마을 덕룡경로당에서 만난 조춘자(82세) 씨는 “덕룡산 한치재까지 가서 갈쿠나무 하고 서숙밥 먹으며 빚까지 내서 6남매를 모두 고등학교까지 가르쳤다”며 “세지면 오봉리 고향에 부모님 드릴 술병 들고 애기 업고 다녔던 기억이 여전하다”고 한다.
 
“20대 때 돌담 쌓는 일하러 제주에 잠깐 나갔던 거 빼고는 탯자리인 등내마을에서 평생을 산다”는 서종렬(79세) 씨는 “하나뿐인 딸 키우느라 농사 지으며 소를 길렀는데 IMF 때 사료값을 감당할 수 없어 그만뒀다”며 “최근엔 농사 일도 힘이 부쳐 밭 1,500여평을 팔아 딸 사업자금으로 줬다”고 한다.
 
   
▲ 고려시대 건축물인 만호정이 마을의 역사와 함께 하고 있다.
 
봉황면 송현리 송길마을이 고향인 김금자(83세) 씨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당산제며 문중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마을사람들이 모여 전 부치고 나물 무치고 생선 찌고 떡 하고 했다”며 “멀리서 온 문중 어른들은 자고가기도 했다”고 한다.
 
늦깎이 대학생 때 송월동 건설현장에 일하러 와서 나주랑 처음 인연을 맺었다는 충북 영동군이 고향인 김재구(60세) 씨는 “서도훈 이장과 친분으로 10여년 전 오랜 역사와 함께 이야깃거리 많고 사람 냄새 진하게 나는 등내마을로 들어왔다”며 “집 마당에서 주민들이랑 어울려 고기도 굽고 이야기하며 자주 어울린다”고 한다.
 
김 씨는 덕룡산 병풍바위며 너럭바위, 금굴, 항일의병이며 남로당, 만호정 이야기 등을 끊이지 않고 이어간다. 특히 원일정에서 무송정, 쾌심정, 영평정에 이어 지금의 이름을 가진 만호정의 팔경이 철야의 모습을 대표한다고... 만호정 팔경은 △ 덕룡산의 갠 달빛(룡산제월), △ 금성산의 저물녘 노을(금성만하), △ 매봉우리의 아침햇살(응봉조양), △ 여우고개의 저녁노을(호현낙조), △ 수정의 맑은 바람(수정청풍), △ 연포로 돌아가는 돛배(연포귀범), △ 옥등에서 타는 거문고(옥등탄금), △ 웅사의 저녁 종소리(웅사모종)이다.
 
철야마을의 오랜 역사는 고려 때 병부상서를 지낸 서린을 배향하는 철천사를 비롯, 임란 때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운 향북당 정준일과 아들 초심당 정현을 모시는 용산사 등 여러 사당과 각종 효열비와 기적비에서 드러난다. 등내마을 출신으로 일본에서 사업으로 성공해 마을진입로 개설과 ‘리 단위 최초’로 전기가 들어오게 하는 등 고향발전을 위해 많은 기여를 한 금하 서상록과 작년에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장(부이사관)으로 정년퇴임한 서대훈이 있다. 마을 입구 옛 서원자리에 세워져 1977년 첫 예배를 시작한 철애교회가 있다.  
 
   
 
서도훈 등내마을 이장 인터뷰
 
“주민이 주인되는 방향으로 ‘마을가꾸기’ 이룰 터!”
 
“돌도 되기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어려워진 가정형편 탓에 하고 싶은 공부도 못하고 운동도 포기해야 해서 방황도 했지만 고향을 근거지로 마음을 다잡고 4-H와 농어민후계자회 활동을 하게 됐다.”
 
광주의 고등학교에 입학했지만 채 한 학기도 마치지 못했다는 등내마을 서도훈(59세) 이장은 목포의 고등학교 야구부에 합격했지만 이 역시 경제적 뒷받침이 없어 꿈을 접어야 했다. 현실의 벽에 부딪친 서 이장은 “2년여의 방황 끝에 무작정 상경해서 봉제공장에 취직했지만, 적성에도 맞지 않고 희망도 없어 고향으로 돌아왔다”며 “어려운 환경 탓만 할 게 아니라 주어진 여건에서 더 열심히 하자는 각오로 노력한 끝에 1990년 4-H 나주군회장을 맡기도 했다”고 한다.
 
운동감각을 ‘타고났다’는 서 이장은 “하나를 잘하면 다 잘한다”며 “각종 체육행사에 봉황면 대표로 참가하면서 면사무소 직원인 집사람과 인연이 됐다”고 한다. 6년여 연애 끝에 1998년 2살 아래 부인과 결혼해 아들 둘을 두고 있다. 매일 부인의 출퇴근을 담당하고 있다는 서 이장은 “집사람이 지역을 잘 알고 맡은 일을 꼼꼼히 해서 봉황면민들로부터 사랑받고 있어 자랑스럽다”고 밝게 웃는다. 큰 아들은 승강기 관련 산업기사로, 둘째 아들은 물리치료사로 각자의 인생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360세대나 되는 큰 마을로 골목마다 아이들이 넘쳐나던 철야마을이 90세대에 불과하고 사람 수는 1/10로 쪼그라 들었지만, 활력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서 이장은 “시의 ‘마을가꾸기사업’에 선정돼 주민들과 함께 어떻게 효과적으로 사업을 할지 의견을 나누고 있다”며 “공모할 때에 비해 반으로 줄어든 사업규모로 고민이 많지만 ‘주민이 주인이 되는 방향’으로 주민들과 함께 헤쳐 나갈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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