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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채석 기행작가 |
남으로는 길손이와 감이와 스님과 산 깊은 곳에 맑은 물과 같이 깨끗하고, 아름답고, 따뜻한 『오세암』의 동화작가 정채봉이 순천 해룡에서 태어나고, 「“무진엔 명산물이??? 뭐 별로 없지요?” 그들은 대화를 계속하고 있었다. “별게 없지요. 그러면서도 그렇게 많은 사람이 살고 있다는 건 좀 이상스럽거든요.”」와 같이 『무진기행』의 배경이 되는 순천은 김승옥이 일본에서 태어났으나 자란 곳으로 정이 흐르는 웃장과 아랫장이 있다.
이날 내가 구례구역 주변에서 찾고 있는 곳을 고백하자면 뜬금 헌책방이었다. 새벽녘에 열차가 토해놓은 사람들은 대부분 성삼재나 노고단에 이르려는 사람들일 것이고, 점심때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은 화엄사나 천은사를 돌아 은어회나 송어회, 눈치회 또는 다슬기탕이니, 참게탕이니, 메기탕이니, 쏘가리탕이니 하는 섬진강에서 잡아 올린 싱싱한 민물고기의 맛을 쫒아서 온 관광객이 필시 맞을 것이다.
그러한 환경이다 보니 눈 씻고 찾아도 한 집 건너 식당뿐 책방은 언감에 생심이었다. 이는 책방에 대한 정보나 첩보를 잘 못 알고 왔다는 판단이다. 다행히도 임진강을 지나 판문점 인근에 돌아올 수 없는 다리는 아니기에 다리를 건너 순천시 황전면에서 구례읍으로 잠입, 섬진강변을 거슬러 코다리 조림이라는 강변 맛집과 나들목 민박집을 연거푸 지나니 어디를 보아도 모텔로 보이는 3층 건물과 만났다.
그런데 간판이 ‘섬진강 책 사랑방’과 ‘북카페 선’이다. 여기에 ‘OLD & RARE BOOKS WITH CAFE'라 쓰인 걸 보니 내가 찾고자 했던, 오래되고 귀한 책을 파는 헌책방이 분명했다. 달리 기묘함이 더해졌다. 건물의 외관이 주는 이미지가 요양병원이나 모텔 외에는 다른 게 도무지 스밀 수 없었기에 말이다. 그러나 선입견은 금물이다. 출입문을 들어서는 순간 화들짝, 기묘함은 세상에 이런 일이로 바뀐다.
두 눈을 압도하는 것은 책과 책, 그리고 또 책이다. 교실 복도와도 같은 기다란 양 옆으로 섬진강물과 같이 책이 흘러오고 흘러가는 느낌이다. 그만큼 누군가가 읽었을 오랜 책들이 또 다른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러한 책방의 쥔장은 남원 생으로 이름은 김종훈이다. 순천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1978년 군에서 전역하고 부산 보수동의 헌책방골목에 ‘대우서점’이라는 이름으로 개업했다. 일취월장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세상은 흐르는 세월 따라 변하기 마련이듯 새 책만을 찾는 트렌드에다 알라딘이니 예스 24니 하는 대형 중고서점이 잠식하면서 환경은 극도로 어려워졌다. 거기에다 헌책방골목에는 용두산 공원과, 자갈치시장과, 국제시장과, 깡통시장을 연계해서 오는 관광객의 숫자만 부지기로 늘어나면서 점포 임대료만 껑충 뛰었다. 심사에 숙고를 거듭했다. 결과 부산에 머물던 마음이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는 귀로를 결심했다.
동안 지친 마음과 몸을 추스르며 평온하고 착한 사람들과 욕심 내려놓고 어울려 사는 게 꿈이었다. 삶의 동반자인 아내도 흔쾌히 뜻을 같이했다. 이때 먼저 머리를 스치는 곳이 지리산이었다. 그래서 형제봉 골짜기로부터 흘러오다 범왕천과 만난 화개천이 섬진강과 만나는 화개를 염두에 두고 최적지를 물색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차선으로 현재의 구례읍 신원리 섬진강로 46에 책의 둥지를 튼 것이다.
이러한 과정의 일성으로 2020년에 대략 20만여 권의 책을 1톤 트럭에 싣고 남해고속도로가 기억할 정도로 40여 회에 걸쳐 부산에서 구례로 옮겨왔다. 그러나 무슨 난리인가? 날벼락인가? 8월 8일에 뜻하지 않는 섬진강 물난리로 남원과 곡성에 사망자가 6명에 이르고, 제방이 터지고, 소들이 그 높은 사성암까지 오르는 일이 벌어질 때 그 많은 책들도 불어난 강물에 함께 휩쓸려 떠내려가는 참상을 겪어야 했다.
비록 쓰라린 절망과 아픔일지언정 좌절하지 않고 일어서 10만여 권의 책이 1. 2. 3층에 빼곡하다. 이러한 책을 만나러 온 사람들과 함께 카페에서 차 한 잔을 마시고 어느 책이든 종일 읽어도 무방하다. 창문너머로 흘러가는 섬진강물을 바라다보는 건 덤이다.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흐르는 강을 굽어보면서 한 잔의 차와 함께 누군가가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다는 거 얼마나 아름다운가.
아르헨티나의 문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가 이르기를 어딘가 천국이 있다면 바로 도서관일 거라 말했는데 섬진강 책 사랑방도 어떤 도서관에 뒤지지 않을 정도 책이 함께한다. 이날 나는 이기형 시인의 감동 기행문 『시인의 고향』과 인간의 불안과 소외 등을 다룬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의 소설 중에 『변신』 등 다섯 권의 책을 샀다. 주인이 나에게 이르기를 “글 쓰시는 분이시죠?”
그랬었다. 구례구역을 지나칠 때면 영산 지리산의 노고단과 화엄사도, 섬진강 맑은 물의 수달과 물고기도, 산동면의 노란 수채화 산수유도, 토지면의 고택 운조루도, 연곡사와 핏빛으로 붉게 타는 피아골 계곡도, 역동적인 삶이 묻어나는 구례오일장에 장꾼과 손님이 항꾸네 살아가는 모습도 죄다 좋다. 그러나 더 좋은 건 구례구역 앞 섬진강 건너에 ‘섬진강 책 사랑방’이 있어 좋다. 내 마음에도 꽃이 피니까. 책 꽃이 환하게 피니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