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구역에서 보면 오산은 가깝고 낮은 160m의 병방산을 살짝 왼쪽에 두고 조금 멀리 높게 북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그런데 ‘오’하면 의례 까마귀 오烏나 개 오獒 등이 생각나지만, 이곳은 특이하게도 자라 오鰲를 써서 오산이라는 이름을 하고 있다. 산이 금자라 형국이라 해서 원래는 금오산이었다. 그러한 금을 욕심을 더해 어디에 꼭꼭 숨겼는지는 몰라도 지금은 그냥 해발 531m의 오산이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현미경의 대물렌즈를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듯 섬진강이 물속까지 선명하다. 노고단에서 천왕봉에 이르기까지 영산 지리산의 전경이 망원경을 통해 보는 것처럼 눈앞에 장엄하다. 정상부근 서쪽 아래 깎아지른 바위가 병풍을 이루는 단애에 사성암이라는 암자가 애타게 매달리듯 붙어있다. 사성암은 말 그대로 원효, 의상, 도선, 진각 등 네 분의 고승이 수도한 암자라 하여 이름 한다. 

 

그러면 구례 문척면에 오산과 사성암만 있을까. 아니다. 반내골이 있다. 반내골은 『빨치산의 딸』의 작가 정지아가 쓴 다른 책 『아버지의 해방일지』의 주요 공간이며 작가의 가족이 구례 읍내로 이사하기 전까지 살았던 마을이다. 기실은 구례를 찾은 이유이기도 하다. 사회주의 혁명가로 전남도당조직부부장이었던 아버지와 남부군 정치지도원이었던 어머니와의 사이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이 빨치산의 딸로 태어난 정지아. 

 

문학작품을 읽고 나면 늘 그 배경이 궁금해 침투하듯 스며들어 낯선 곳에서 서성이는 일은 다반사로 『아버지의 해방일지』의 배경이 되는 구례로 가는 날은 장날에 맞춰 3일과 8일에 해당하는 날로 정하고, 광주 유스퀘어 터미널을 통해 화엄사가 종착지인 버스에 올랐다. 곡성을 경유하는 버스는 공선옥의 『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 살』의 배경에 섬진강과 17번 국도와 전라선 철도가 함께 흐른다. 아름답다.

 

버스는 구례 터미널에 도착했고 나는 내렸다. 개인택시 조동제 기사의 도움으로 섬진강 건너 문척면 중산리에 이르렀다. 반내골이다. 사성암이 있는 오산에서 광양과 구례의 경계에 있는 백운산으로 이어지는 골짜기에 있는 산간마을로 앞에도 뒤에도 산뿐이다. 달리 척박한 곳으로 작가의 생가는 남의 소유가 되어 묵정밭을 방불케 하는 빈집으로 아버지와 어머니와 정지아의 옛이야기만 간직한 체 쓸쓸했다.

 

중산천을 따라 뚜벅뚜벅 걸어서 가면 소설 속 이름 고아리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읍내에 나갈 때 배로 건너던 섬진강의 문척나루다. 양쟁이들(뜰)을 바라보며 구례 장에 도착해 구례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스캔했다. 활기에 찬 모습에 환한 모습뿐 좌니 우니 이데올로기적 이념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일상이다. 침탈로부터 해방에 이르면서 양분된 이 나라는 수많은 희생 속에 겉으로만 화평한 지금에 이르렀다.

 

소설의 주요 공간은 구례 산림조합장례식장이다. 뼛속까지 사회주의자인 아버지 고상욱의 장례를 치르면서 문상객을 통해 아버지의 생전을 조명한다. 1946년에 입산한 구 빨치산. 1952년에 위장 자수한 사회주의자. 1974년에 다시 투옥되어 6년을 옥살이하고 나와 서툰 농부가 된 아버지의 이야기를 생각하며 구례를 걸었다. 황사장이나 떡집 언니, 학수, 큰집 길수 오빠, 삼오 동창 모임 등 등장인물들을 생각하며 걸었다.

 

어딘가를 여행하다 보면 삼거리나 사거리는 많으나 오거리나 육거리 등은 흔치 않다. 전남 장흥에는 칠거리가 경남 김해에는 육거리가 있기는 하다. 그런데 구례에는 오거리가 두 곳에 있다. 그 하나는 구례 경찰서 인근이고 또 하나는 옛 구례여고였으나 지금은 구례고등학교 인근으로 『아버지의 해방일지』에서 주요 공간이다. 소설 속에서 하동댁 가계는 사라졌지만, 편의점은 그대로이고 오거리 슈퍼는 다방이 되었다.

 

나는 오거리 공간에서 노랑머리가 언니 고아리에게 했던 말을 생각하며 빙긋이 웃었다. “할배가 그랬는디, 언니가 여개서 썽을 냈담서? 할배가 아줌마 궁뎅이를 두들게다고?” 부분에서다. 노랑머리는 시대상을 반영하듯 다문화 가족을 이야기하고, 한편으로 전남 동부에 속하는 곡성, 구례, 순천 등에서 유독 사용하는 말이 있는데 ‘항꾸네’다. 이는 우리 모두 함께라는 의미다. 아무튼, 나는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재미있게는 읽었다. 그러나 생각은 늘 정지아의 앞선 책이자 역사적으로 깊이가 있는 『빨치산의 딸』에 머물러 있다.

 

정지아의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출간되기 이전 마스크가 전 국민의 식민화 내지는 지배화가 본격적이던 해 봄. 나는 구례구역 주변을 수색 나온 빨치산처럼 눈을 부릅뜨고 타깃을 찾아 두리번거린 기억이 있다. 목표물은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높은 건물이래야 기껏 2층이다. 역 앞의 섬진강 다리를 건너면 구례와 김동리의 역작이자 단편 『역마』의 지리적 배경이 되는 화개와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 1부의 원형적인 공간 평사리로 연결된다. 

 

부러 찾아간 곳에서 만나야 할 곳을 만나지 못하고 헤매다가 에라! 화개장터 옥화네 주막으로 내달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구례에서 온 체 장수의 딸이자 옥화의 이복동생 계연이가 큰 눈에 환한 모습으로 있을 것만 같아서다. 옥화와 계연은 성기와 더불어 『역마』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이다. 그러다가 북으로 눈길은 던진다. 곡성 쪽이다. 섬진강을 따라올라 〈국토〉의 조태일 시인과 『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 살』의 공선옥이 먼저 떠오른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