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연재 > 김덕수 기자의 마을과 사람
28. 영산동 10통
김덕수 객원기자  |  najukds@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861호] 승인 2023.08.27  22:30:25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전남남부 도매시장 오일장 옮기고 발길 끊긴 골목은 ‘썰렁’

영산포경제 중심지 본영동 기억하며 영산강서 물놀이하고 재첩잡던 주민들
인근 논에 농사짓고 생선 팔아 생계 꾸려…마을회관조차 없어 모이지 못해
 
   
▲ 영산동 주민센터에서 바라본 10통 전경.
 
일제식민치하에서 일인들이 모여 살던 중심시가지를 ‘본정통’이라 했다. 서울의 충무로, 광주의 충장로가 그곳이다. 영산포는 영산동주민센터 일대가 본정통이었으며 해방후 본영동으로 불리다 1981년 금성시로 승격되면서 영산동이 됐다.
 
80년 넘게 전라도 남부지역의 도매시장 역할을 하던 ‘영산포 오일장’이 2003년 이창동으로 이전하고 나주시노인복지관과 주민센터가 들어왔지만, 마을은 온기를 잃고 사람들은 떠났다. 점포와 사람들로 북적이던 영산포 상권의 중심지가 인적마저 드문 썰렁한 골목길만 남았다. 골목길마저 소방도로가 난 뒤 곳곳이 끊어지고 말았다. 영산동 10통의 2023년 풍경이다.
 
국도13호선 영산대교 건너 대신이발관에서 10통이 시작된다. 대신이발관 김형태 사장(74세)은 25년간 도로 건너에서 이발관을 하다 이곳으로 옮긴 지 8년째다.
 
“저녁 6시면 전깃불이 들어오고 학생들이 바글바글한 번화가였다”고 이야기를 시작한 김 사장은 “저희들 교육을 위해 부모님이 도시로 나온 것이 영산포와 인연이 됐다”며 “호롱불 켜고 살던 고향 해남군에서는 상상할 수 없던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며 60여년 전을 기억한다. 
 
“이발 솜씨도 좋고 농사짓는 정보도 함께 나누다 보니 단골이 됐다”는 노영기(74세) 씨는 “김 사장이 군 복무 중 사고로 다리를 다쳐 절고 있지만 마음씨가 참 좋은 사장님”이라며 왕곡면에서 매달 꼬박꼬박 이발하러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대를 이어 60년째 지업사를 하고 있는 김박(81세) 씨는 “영산강을 헤엄쳐 건너려다 생각보다 센 물살로 인해 죽을 뻔하기도 했다”며 “복지관에서 만나는 어릴 적 친구들과 물놀이하고 새조개잡던 이야기하며 추억을 나누기도 한다”고 한다.
 
“열여덟살에 결혼하면서 고향인 왕곡면 양산리를 떠나 지금까지 살고 있다”는 박복경(96세) 씨는 “지금은 직불금도 있고 보험도 있지만 옛날에는 비가 많이 와서 논이 물에 잠기거나 가뭄에 말라죽어 수확이 적을 때는 꼼짝없이 굶어야 했다”며 “평생 농사지어 9남매를 키웠다”고 한다.
 
   
▲ 주민들의 공동체공간이었을 우물터가 영산동 10통의 삶과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 오일장을 오가던 사람들로 북적였을 영산동 10통의 골목길이 텅 비어 있다.
 
20년 넘게 서울에서 살다 탯자리로 돌아온 지 25년째라는 이복남(75세) 씨는 “일자리 찾아 무작정 상경해서 음식점 배달 일부터 시작했다”며 “강원도 제재소에서 나무를 사다 옷걸이 만드는 사업이 망해서 답십리 배추밭의 시래기를 주워다 죽을 쒀먹고 살기도 했다”고 한다. 선창에 홍어배가 들어올 때를 떠올린 이 씨는 “친구들이랑 홍어 배에 오르락내리락 하며 놀기도 하고 홍어 하역하고 사고파는 광경을 구경하면서 자랐다”고 한다.
 
“배에서 홍어랑 갈치며 멸치를 사서 기차 타고 장성군까지 팔러다녔다”는 송영자(80세) 씨는 “젊을 때 장사를 시작했는데 혹여 아는 사람 만날까봐 다른 지역으로 다녔던 것”이라고 한다. 50년 넘게 장사를 하고 있다는 송 씨는 “영산강 재첩은 크기도 크고 맛도 좋아서 갈쿠로 긁어 잡아다 끓여먹던 죽의 맛을 아직도 기억한다”며 “바닷물이 열려 재첩이 다시 돌아오길 기대한다”는 바람을 조심스레 꺼낸다.
 
다도면이 고향인 김순임(68세) 씨는 “금천면 논에 농사짓기 위해 1997년에 운전면허를 땄다”며 “10리가 넘는 길을 걸어서 다니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기도 했다”고 한다. “영산포에서 가장 낙후된 동네가 됐다”는 김 씨는 “변변한 마을회관이나 우산각이 없어서 사람들이 함께 모이는 것조차 어렵다”고 한다. 
 
주소가 적힌 쪽지를 들고 골목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던 곽성신(67세) 씨는 “집사람이 건강이 좋지 않아 광주를 벗어나 공기 좋은 곳에서 요양하며 노후를 보내기 위해 찾아왔다”며 “교통도 나쁘지 않고 한적한 게 살기에 좋을 것 같다”는 기대감을 나타낸다. 지나던 주민들의 도움으로 주소를 찾은 곽 씨가 영산동에 정착해 살게 되기를 희망해 본다.
 
한 때 셋방을 구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살던 10통엔 25세대만 남았다. 잡초만 자리를 지키고 있는 빈 집터가 곳곳에 보이고 중간중간 철제 가림막에 가려져 있는 곳도 있다. 그럼에도 주민들은 ‘본영동의 옛 영화’를 추억하며 살아가고 있다.
 
10통의 경계가 되는 언덕에 나주시 향토문화유산 제18호인 경주이씨 영강사가 있다. 1712년 대호동 율정마을에 창건됐던 영강사는 1960년 지금의 자리에 터를 잡았다. 마을 가운데에는 상수도가 들어오기 전까지 수십년간 주민들의 식수를 해결했을 우물이 파란색으로 새옷을 입고 자리하고 있다.
 
   
 
이상필 영산동 10통 통장 인터뷰
 
“아기자기한 골목길 특성 살린 도시재생했으면...”
 
“낮에는 돈 벌기 위해 일하고 밤에 공부할 수 있는 마산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다”는 이상필 통장(66세)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더 배우고 싶은 욕심에 형이 직장생활하던 마산으로 갔다”고 한다.
 
섬유회사에서 1년을 일하다 목수일을 하게 됐다는 이 통장은 “초등학생 때 본영동에 즐비하던 가구공장에서 배운 대패질이 그렇게 대접받을 줄 몰랐다”며 “건축현장의 목수 수입이 공장보다 훨씬 많았다”고 기억한다.
 
이창동 용산마을이 고향인 이 통장은 큰 홍수가 난 1989년에 10통으로 이사왔다. “셋방살이 시절 아이들끼리 싸우고 나면 집주인 눈치가 여간 껄끄러웠다”며 “침수된 집을 사서 내 손으로 직접 수리해서 살았다”고 한다. 그 때만 해도 10통 집값이 만만치 않게 비쌌다고 한다. 
 
“사람 인연이란 게 따로 있구나”라며 말문은 뗀 이 통장은 “영암군 신북면에 건축일로 갔다가 만난 장모님이 ‘착하고 성실하다’며 딸을 소개했다”고 한다. 이 통장은 “묵묵히 가정을 일구고 3남매 키워 온 집사람이 한없이 미안하고 고맙다”고 덧붙인다.
 
8년째 통장 일을 하고 있는 이 통장은 새마을지도자회 나주시협의회장 등으로 경제사정이 어려운 이웃과 어르신들의 집을 고쳐주는 봉사활동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으며 3년 전부터 전국농업기술자협회 나주지회장을 맡고 있다.
 
“채소를 팔고 사는 사람들로 북적이던 골모실길이 텅 비었다”는 아쉬움을 나타낸 이 통장은 “아기자기한 골목길이 많은 10통의 특성을 살려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올 수 있는 도시재생의 모델을 만들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조심스레 내놓는다. 
 
   
 
김덕수 객원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최근인기기사
1
맨발로 걷다 보면
2
나주시, 숙박업소 침구류 구입비 지원
3
34. 문평면 산호리 1구 남산마을
4
‘나주판 지록위마 조고’는 존재하는가
5
나주시…무분별한 ‘협상에 의한 계약 방식’ 지양해야
6
나주시, ‘2023 빛나주’ 축제 전격 취소
7
나주시, 2024년 본예산 9396억원 편성⋯민생안정·성장동력 중점
8
나주시, ‘2023 빛나주’ 축제 전격 취소
9
全(全州)羅(羅州)도의 全州 - 전주의 도시재생 ‘인후반촌마을’
10
나주시, 시내버스 노선 개편 조정기간 운영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이메일무단수집거부청소년보호정책
전남 나주시 빛가람로 685 비전타워 206호 나주투데이  |  대표전화 : 061)334-1102~3  |  팩스 : 061)334-1104
등록번호 : 전남 다00334   |  발행인 : 윤창화  |  편집인 : 이철웅  |  e-mail : njt2001@hanmail.net
Copyright © 2013 나주투데이.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