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구례는 전라도 곡성의 동쪽, 광양의 북쪽, 남원의 남쪽, 경상도 산청과 하동의 서쪽에 위치하고, 지리산의 품에 있는 남원, 함향, 산청, 하동 중에서 서남쪽에 위치한다.

 

진안으로부터 흘러온 섬진강과 남원에서 오는 요천과 순천 주암에서 잠시 머물다 온 보성강이 곡성에서 만나 구례를 지나 하동과 광양 사이로 흘러 바다를 만난다. 그렇게 구례를 적시고 흐르는 섬진강변에 구례구역이 자리한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구례에는 철길도 없고 역도 없다. 그래도 구례가 고향이라는 사람에게 구례에도 역이 있냐고 물으면 10중 8~9는 역이 있다고 한다. 그만큼 착각도 자유라는 말이 있듯 순천시 황전면 섬진강로 217에 자리한 구례구역은 그냥 구례역인 것이다. 구례읍에서 섬진강 다리(구례대교) 하나만 건너면 구례 입구에 있다는 의미의 역에 대한 시가 없을 리가 없다. 바로 고재종 시인의 시 〈구례구역의 사랑노래〉가 그것이다.

 

 

(고재종 시 〈구례구역의 사랑노래〉 전문)

 

상하행 각각 24번 정차했다 떠나는 전라선의 구례구역에 용산행 상행은 18시 56분에, 여수엑스포역행 하행은 19시 15분에 있다. 그러함에도 고재종은 “네가 가고 나는 남는 이 저녁” 시간으로 오후 7시가 가장 적당했나 보다. “산정 위에 막 돋는 별들”, “강물도 떨리는 푸르른 저녁”과 뻐꾸기를 전라도에서 이르는 쑥꾹새로 보아 겨울은 아니고 여름인 것 같다. 너를 보내고 남은 나에게 쑥꾹새의 외로움이 함께해야 이별의 맛이 제격일 터.

 

“저렇게도 우뚝한 산봉우리”는 지리산 중에서도 노고단老姑壇(1,507m)으로 천왕봉, 반야봉과 함께 3대 주봉에 속한다. 그런데 왜 이름이 늙은 할미일까? 는 본디 통일신라시대까지 천왕봉 기슭에 ‘할미’에게 산제를 올리는 할미당이 있었으나 고려시대에 옮겨지면서 노고단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고, 조선시대에는 지금의 노고단에서 서쪽으로 2km 지점에 위치한 종석대 기슭으로 할미당을 옮겨 산제를 드렸다고 한다.

 

다시, 기차가 일곱 시에 떠나 주기를 바라는 고재종의 구례구역에서 미키스 데오도라키스Mikis Theodorakis의 ‘기차는 8시에 떠나네(To Traino Feygei Stis Ochto)'를 생각한다. 아그네스 발차가 부른 곡이 많이 알려졌지만, 나는 해리스 알렉시우Haris Alexiou의 목소리로 듣는다. 뭔가 나치에 저항하는 비정함이 묻어나는 이유다. 2차 세계대전, 나치독일이 그리스를 침공한다. 이에 그리스의 한 청년이 열차에 오른다.

 

젊음은 고향의 사랑하는 여인을 뒤에 두고 조국을 위해 싸울 힘만을 싣고 독일에 대항키 위해 ‘카테리니’로 가는 열차에 오른다. 그리고 8시에 떠난다. 전쟁이 끝나고 참전했던 사람은 모두 돌아오는데 그 청년만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렇게 돌아오지 않는 애인을 애타게 기다리는 연인의 절절한 심사를 그린 노래가 ‘기차는 8시에 떠나네’다. 기차가 8시에 떠나든, 7시에 떠나든 산모퉁이를 돌며 기적 소리를 내며 떠났을 것이다.

 

그런데 고재종과 미키스 데오도라키스만 기차를 떠나보냈을까. 신경숙도 떠나보냈다. 소설 『기차는 7시에 떠나네』가 그것이다. 매주 금요일이면 어김없이 노을이라는 음악다방에 가서 실수인지 고의인지 8시를 7시로 신청했다는 내용으로 DJ랄까. 뮤직 박스랄까. 오래전 젊은 날에 광주 충장로 화신다방에서, 그해 오월 화재로 소실된 MBC 문화방송 지하다방에서 C.C.R.이나 무디 블루스Moody Blues 등의 노래를 신청해 듣던 기억을 문장이 대신한다.

 

“남자와 여자가 있었어요. 대체로 여자가 먼저 노을다방에 와서 남자를 기다리는 편이었죠. 남자는 어느 날 내게 음반 한 장을 건넸습니다. 그 음반 안에 「기차는 8시에 떠나네」가 실려 있었죠. 나도 그때 그 노래를 처음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했던 건 8시를 꼭 7시라고 적어 보냈어요. 음반까지 소지하고 있었던 걸로 보아 잘 못 알고 있지도 않을 텐데 그랬어요.” (신경숙 소설 『기차는 7시에 떠나네』 135쪽 부분)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