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남 10대 고품질 브랜드 쌀로 선정된 ‘왕건이 탐낸 쌀’을 재배하기 시작한 지석천변 석치마을을 대유위니아그룹 연수원 옥상에서 찍었다.

 

‘왕건이 탐낸 쌀 전남 10대 고품질 브랜드쌀 선정’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남평읍 곳곳에 보인다. ‘왕건이 탐낸 쌀’은 품질 고급화를 위해 지난 2003년 남평농협이 엄선해서 육성한 ‘청무’ 품종의 쌀로, 드들강으로도 불리는 지석천에 접한 오계리 1구 석치마을에서 처음 재배하기 시작했다. 작년에 처음으로 미국에 수출(10톤)했고, 2021년에는 대통령 명절 선물세트에 포함되면서 품귀 현상을 빚기도 했다. 명실상부하게 나주의 대표상품으로 자리잡았다고 할 수 있다.

 

직전 이장인 이준호(62세) 씨는 “중학교 다닐 때까지만 해도 제방을 쌓기 전이라 비만 오면 집 앞까지 물이 차곤 했다”며 “지금도 배수펌프장이 없어 빗물이 지석천으로 빠져나가지 못해 논밭이 잠기는 일이 빈번하다”고 지난달에 내린 비로 침수된 논밭의 사진을 보여준다. 이 씨는 서울에서 건축업을 하는 등 객지생활 20여년만에 2003년 귀향해서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농토를 밑천으로 쌀농사에 전념하고 있다.

 

아랫석치에서 주유소를 운영하고 있는 김병하(58세) 씨는 “해양대학을 졸업한 뒤 항해사로 상선을 타고 세계를 누비기도 하고 무역회사에 다니다 35년 만인 5년 전 고향으로 돌아왔다”며 “망망대해 철판 위(상선)에서 1년여 살다보면 바보가 되는 것처럼 멍해지더라”고 한다. 지석천 건너 광이리가 고향인 김 씨는 30세에 완도 출신의 부인을 만나 결혼했다.

 

화순군 도곡면이 고향인 안종희(91세) 씨는 “쌀 하나 없이 보리쌀을 쪄서 비비고 도구통(절구의 방언)에 찧어서 꽁보리밥을 해먹었다”며 “지석천변에 포전을 일궈 땅콩 심고 농사지어 5남매를 키웠다”고 한다. 안 씨는 “스무살에 결혼할 때 산 넘고 물 건너 걸어서 왔다”며 “신작로가 마을 뒤로 있었다”고 기억한다. 

 

“4남매 키우느라 안 해 본 일 없다”고 말문을 여는 박덕임(79세) 씨는 “고향인 다도면 신동리에 살던 시누이 소개로 2구 사람이랑 결혼했는데 전답 따라 1구로 와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고 한다. 박 씨는 “마흔도 되기 전에 혼자되는 바람에 농사에 식당일 하며 고생고생했다”고 한다. 

 

6년 전 석치마을로 이사 온 이영애(81세) 씨는 “50년 넘게 양동시장에서 노점 행상으로 과일을 팔아 생계를 꾸려왔다”며 “건강이 좋지 않은 남편이 친구따라 와서 지금 사는 집을 보자마자 계약했다고 하더라”고 한다. “느닷없는 결정에 ‘난 안간다’고 했지만 나이 들고 몸이 성한 데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와서 살게 됐다”는 이 씨의 고향은 화순군 청풍면이다.

 

▲ 아랫석치 마을사람들이 우산각에서 더위를 피하고 있다.

 

“열아홉살 동짓달 스무날에 결혼했다”고 또렷한 기억을 자랑하는 최오례(91세) 씨는 “지석강 물 길어다 막걸리 담아서 오가는 이들에게 팔았다”며 “18년간 주막을 했는데 도로가 나는 바람에 그만두고 농사지어 6남매를 키웠다”고 한다. 광촌리가 고향인 최 씨는 “귀도 안 들리고 다리며 허리며 안 아픈 데가 없다”고 한다. 

 

“드들강유원지에서 30여년 매운탕집을 하다 도로가 난 뒤 석치마을 입구에 새집을 지어 또 30여년 가까이 했는데 5년 전에 문을 닫았다”는 정성화 이장(77세)은 “올해 초 잠자다 뇌졸중으로 쓰러져 ‘큰 일 치를 뻔’ 했지만 다행히 기적처럼 회복됐고 말만 조금 어눌할 뿐”이라고 한다. 남평농협 이사를 6선 하면서 4명의 조합장과 일했다는 정 이장은 “임기가 끝나는 내년 3월까지 필요할 때 할 말은 한다는 자세로 임하고 있다”며 “왕건이 탐낸 쌀로 만든 떡국은 먹다 남겨둬도 절대 붇지 않는다”고 자랑한다. 

 

육묘사업에 대한 인식이 없던 90년대 초 사업을 시작한 성일육묘장 우상완(56세) 대표는 “고향인 고흥군에서 멜론 재배기술을 배우기 위해 나주에 왔다가 종자회사에 다니던 지인 소개로 수출오이 시범포와 인연을 맺고 오계리에 정착했다”며 “다른 사람의 논을 임대해서 10여년간 기술을 쌓은 뒤 본격적으로 사업화 한 게 20여년이 지났다”고 한다. “과채류와 엽채류 10여종 600여만 주를 기르고 있다”는 우 대표는 “사업 초창기부터 함께 한 분도 있고 20여명의 직원 대부분이 10년 이상 함께 일하고 있어 가족같은 분위기”라고 한다.

 

석치마을은 지방도 822호선을 기준으로 윗석치와 아랫석치로 나뉜다. 육묘장이 있는 윗석치의 육묘장 옆에는 ‘드들강장어양만장’이 있다. 양만장의 최영주 대표(61세)는 “우리마을엔 당산나무와 같은 오래 된 나무가 없다”며 “3구 오룡마을에 살던 사람들이 ‘큰 재’ 넘어 농사지으러 다니는 게 힘들어 논에 가까운 이곳으로 분가해 와서 살며 마을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전히 큰집은 오룡마을에 있다는 최 대표의 부친도 그런 경우라고 한다. 

 

석치마을엔 민물매운탕을 주로 하는 식당들이 10여곳 있었다고 한다. 하루에 수만명씩 드들강유원지로 나들이오던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80년대 중반까진 드들강에서 민물고기를 잡는 어부도 있었다. 

 

최근 들어 다시 드들강유원지에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주로 캠핑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지난 2019년엔 마을 입구에 대유위니아그룹의 연수원이 들어오기도 했다.

 

 

“농사꾼은 걱정없는 날이 없다. 바람 불면 바람 불어 걱정, 추우면 추워서 걱정, 더우면 더워서 걱정!”

 

스스로를 ‘몸이 묶인 농사짓는 어민’이라고 밝힌 최영주 전 남평읍지역발전협의회장(61세)은 “내 땅에 형님이 시작한 양만장을 완공하지 못하고 돌아가시는 바람에 내가 마무리하고 2008년부터 장어를 기르게 됐다”며 “장어양식을 전문적으로 계속하기 위해 아들을 수산대학에 보냈다”고 한다. “아들 녀석이 군에 다녀와서 복학하더니 ‘선택 잘한 거 같다’고 하더라”는 최 회장은 “5년째 아들과 교대로 24시간 내내 장어만 바라보고 있다”고 웃어 보인다.

 

공고에서 배관을 전공하고 대학 진학을 희망했지만 실패하고 울산 현대중공업에 취업한 최 회장은 “87년 노동자대투쟁 때 노조활동으로 해고된 게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며 “가정할 순 없지만, 그런 일이 없었다면 울산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고향으로 돌아온 최 회장은 비닐하우스에서 오이를 재배했다. “대나무로 만든 하우스 골조가 태풍에 날아가 낭패를 보기도 했다”는 최 회장은 “각화동농산물시장이 생기기 전이라 양동시장에 가서 직접 팔아야 해서 수지가 맞지 않아 농기계를 이용한 쌀농사에 전념하게 됐다”고 한다. 고향에서 농사지으며 직접 접한 현실은 ‘답답’하기만 했다고 한다.

 

최 회장은 “농민을 위한 농협인지, 농협을 위한 농협인지 의문이 들어 대의원으로서 조합장, 전무 등 임원들과 싸우기도 많이 싸웠다”며 “남북농민대회와 육묘시설 지원 등 남북교류협력사업도 하고 WTO반대를 위해 홍콩의 바닷물에 뛰어들기도 하는 등 소위 ‘아스팔트 농사’도 많이 지었다”고 한다. 

 

2001년 남평농민회 창립을 주도한 최 회장은 첫 사무장으로 시작해서 작년까지 10년 넘게 농민회장을 맡기도 했고, 2017년부터 4년간 남평읍지역발전협의회 회장을 지냈다.

 

석치마을이 탯자리인 최 회장은 1989년에 최연소 이장을 지내기도 했다. 울산에서 만난 대구 출신의 부인과 사이에 서울에서 직장생활하는 딸과 아들을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