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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새도 울던 명봉鳴鳳역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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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4호] 승인 2023.05.15  01: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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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채석 기행작가

명봉역. 광주송정역에서 경전선 무궁화호 열차에 몸을 담으면 극락강 철교를 달려 서광주역과 효천역을 지난다. 열차가 화순역에 이르기 전 남평역과 앵남역은 이름뿐으로 폐역이 되었다.

화순역을 떠난 열차는 지석천 옆 영벽정에 철교와 함께 그림 같은 배경이 되고, 젊은 개혁자 조광조의 생이 멈춘 능주역과 이제는 폐역도 아니고 칠판에 백묵으로 쓴 글씨를 지워버리듯 흔적도 없이 지워진 석정리역을 지난다.

열차는 화순의 이양역에 이른다. 이양은 옛 다방에서 껌을 질경이며 커피 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던 그 이양이 아니라, 배 이梨에 볕 양陽의 이양이다.

열차는 화순군을 지나 보성군 노동면의 명봉역에 도착한다. 대부분의 시골역이 면소재지 정도에 있으나 명봉역은 한적하기 이를 데 없는 마을에 더 한적하게 자리하고 있다. 길 이름 노동면 예재로 384다. 아담하다는 말조차도 어울리지 않은 역이다. 

역 앞에는 버스 정류장이 이웃하고 이제는 고목이 되어버린 느티나무가 풍경을 더한다. 내가 명봉역에 발을 디딘 날 느티나무 가지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고, 부화를 했는지? 새끼를 지키려는 어치의 무차별 공격을 받았다. 급 하강해 날개를 퍼덕이며 머리를 치는 본능을 발휘하는 거다. 마치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 ‘새’에서 갈매기가 사람을 무차별 공격하는 장면이 새삼 떠올랐다. 인간이 쏜 납덩이에 맞아 죽는 새가 아니었다.
 
이날 나를 공격한 어치는 참새목 까마귀과에 속하는 텃새로 잡식성이다. 어치는 다른 새로 꾀꼬리나 까마귀의 울음을 흉내 내는 이른바 새 중의 이미테이션이다. 달리 우리가 산까치라 부르는 친숙한 새다. 단지 내가 찾아갔을 때 새끼를 지키기 위한 모성과 부성이 최고조에 이른 것이다. 그러한 모성과 부성 중에 또 다른 부성이 전해오는 명봉역이다. 바로 명봉역 역사 앞에 세워진 문정희 시인의 시비 〈명봉역〉이 그것이다.
 
아직도 은소금 하얀 햇살 속에 서 있겠지
서울 가는 상행선 기차 앞에
차창을 두드릴 듯
나의 아버지
저녁노을 목에 감고
벚나무들 슬픔처럼 흰 꽃 터트리겠지

지상의 기차는 지금 막 떠나려 하겠지

아버지와 나 마지막 헤어진 간이역
눈앞에 빙판길
미리 알고
봉황새 울어 주던 그날
거기 그대로 내 어린 날
눈 시리게 서 있겠지
 
(문정희 시 〈명봉역〉 전문)
 
눈물이 먼저 앞선다. 바로 부성이다. 은소금과 같이 하얀 눈이 쌓인 겨울, 차창을 두드릴 듯 딸을 보내는 아버지의 모습이, 심경이, 아프다. 그렇게 사랑하는 딸을 보내고 자신은 열차표가 없이도 떠나야만 하는 세상을 등지고 떠났다. 이때 광주로 가는 문정희 시인은 기껏 초등학교 4학년에 지나지 않은 소녀였다. 아버지와의 영영 이별을 예감해서였을까. 지금은 사라진 역이지만 남광주역에 도착할 때까지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울음을 그칠 수 없었던 소녀는 학동리 호미 마을에서 자랐다. 마을 앞으로는 경전선 철길이 흐르고 뒤로는 예제 준령이 동향으로 뻗어 내려온 곳에 말봉산과 봉화산이 함께한다. 호미 마을이라 부르는 건 두 산의 형상이 우뚝 솟아올라 범 형상의 지형을 이루어 복스럽게 생긴 호랑이의 꼬리 부분에 이루어진 마을이라 하여 호미라 하고, 생가는 20여 가구 정도가 사는 마을의 정중앙에 자리하고 있다.
 
마을 앞 철길로 상행 하행 모두 합해 10번 정도 지나는 명봉역까지는 걸어서 400여 m 남짓이고, 도착한 명봉역은 붉은 벽돌집이다. 일제 때부터 영업해 온 역은 1950년에 지어져 몇 차례 보수를 하며 지금에 이른다. 역 앞은 시골스런 슈퍼도 없다. 있는 거는 드라마 촬영지를 알리는 간판과 시골버스 정류장이다. 단지 명봉은 명봉천이라는 조그만 시내를 사이에 두고 암수 봉황이 서로 그리워 울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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