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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영강동 택촌마을
김덕수 객원기자  |  najukd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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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3호] 승인 2023.04.24  01: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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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 영산창과 성, 기와굽던 와요지가 기록만 남은 택촌

  나합의 탄생이야기가 있는 도내기샘과 마을영화·바느질 제품 만들기도
강물 막히고 국도1호선 옮기고 영산포역 문 닫고 발길 끊어져 쇠락의 길
 
   
▲ 옛 국도1호선을 따라 가다보면 영산강에 접한 택촌을 만난다.
 
도로가 끊기고 철길이 멈추고 강물도 막혔다. 마을 앞으로 국도1호선이 지나고 영산포역에 호남선 기차가 설 때만 해도 사람들이 왁자지껄했다. 강변 모래밭이 은빛으로 반짝이던 영산강은 삶의 터전이자 물놀이장이자 피서지였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오가는 사람도 끊기고 영산강을 찾는 이도 없다. 마을은 활기를 잃고 잊혀져간다. 영강동 택촌의 모습이다.
 
“영산강이 나주 발전을 위한 핵심자원이라 생각한다”는 나진균 통장(65세)은 “나주가 갖고 있는 무수히 많은 역사문화 자원을 연계해서 외지인들을 끌여들이기 위한 고민 없이 방치되고 있는 것처럼 10년 후 우리 마을의 모습이 걱정된다”고 안타까워한다.
 
나 통장은 “2015년 주민들이 주인공이 돼 살아온 이야기로 마을영화를 찍고, 이듬해엔 주민들이 녹슬지 않은 솜씨로 손수 바느질해 만든 제품을 광주 송정역시장의 가게를 빌려 판매한 적이 있다”며 “준비한 작품들이 한나절도 안 돼 모두 팔렸는데, 어느 중년 부인이 작품을 준비한 영상을 보고 ‘어머니 생각이 난다’며 눈물을 흘리던 모습에서 어르신들 일거리도 되고 마을이 살아날 수 있는 비전을 찾았다”고 한다. 여러 이유로 사업을 계속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고 덧붙인다.
 
마을 표지석을 따라가다 보면 ‘삼영수퍼’ 간판을 만난다. 8년 전 문을 닫았지만 여전히 마을사람들이 사랑방처럼 들른다는 수퍼 주인 김막래(83세) 씨는 “직접 기른 푸성귀 무침을 안주삼아 막걸리 마시러 오는 손님들이 많았다”며 “나이 들어 건강이 나빠지기도 했지만 오가는 사람이 없어서 수퍼를 그만뒀다”고 한다. 21세에 결혼하면서부터 택촌이 영암군 삼호면에 이어 제2의 고향이 됐다는 김 씨는 “모심고 큰 비가 오면 다 쓸려 내려가서 못 먹게 되는 일도 많았다”고 옛일을 떠올린다. 
 
   
▲ 폐선된 호남선 부지에 만들어진 철길공원에 나합의 이야기가 있는 도내기샘이 있다.
 
운동하러 나왔다는 최현숙(90세) 씨는 “부영아파트 옆에 식품공장이 있을 때는 고구마를 썰어 말리는 일로 돈벌이를 하기도 했다”며 “마을 앞 삼영천 둑길을 너무 낮게 포장해 물에 잠기고 질퍽거려 다니기 곤란할 때가 많다”고 한다. 다시면 동당리가 고향인 최 씨는 18세에 결혼해 70년 넘게 택촌에 살고 있다.
 
영산포역 수화물취급소에 취직해 1978년에 이사왔다는 강성철(84세) 씨는 “2001년 영산포역이 문을 닫기 전까지 택촌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할 정도였다”며 “80년대 초 국도1호선이 새로 생기던 때부터 마을이 쇠락해갔다”고 한다. “공산면 금곡리가 고향이지만 태어난 곳은 일본 오사카로 어릴 때 지진으로 도로가 뒤흔들려 걸어다닐 수 없었던 기억이 있다”는 강 씨는 2006년 나주역에서 퇴직했다. 
 
열일곱살에 일자리를 찾아 무작정 상경했다 50년만에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나종만(72세) 씨는 “마을 뒤 ‘참나무밭’에서 열댓명 또래친구들과 함께 땅콩치기(길고 짧은 두 개의 막대로 하는 자치기의 방언)하며 하루 종일 놀던 기억이 여전하다”며 “객지에서 식당일로 시작해서 목수로 집짓고 다니느라 콩팥이며 척추, 눈 등 성한 데가 없다”고 한다.
 
마을회관에서 만난 한동금(90세) 씨는 “23세에 결혼하면서 고향인 영암군 금정면을 나와 택촌에서 쌀농사 지어 6공주를 키웠다”며 “영산강에서 투망으로 붕어 잡고 대사리(다슬기의 방언)며 조개 잡아 마을사람들이랑 어울려 잔치도 벌이며 살았다”고 한다.
 
   
▲ 영산창과 성, 와요지가 있던 택촌에 봄볕이 따뜻하다.
 
현대건설에 근무하면서 중동을 비롯해서 한강·영산강 등 현장에서 일한 10여년을 빼고 9대째 고향을 지켜왔다는 나종순(71세)는 “아버님 대까지만 하더라도 한해에 서울대를 너댓명이 입학하고 군수며 대학교수, 변호사도 여럿 나온 학자마을이었다”며 “강변마을이라 논도 적고 산업화 바람에 사람들이 떠나면서 그 맥이 끊어진 것이 안타깝다”고 한다.
 
동수농공단지에서 유리온실용 철구조물 제조회사를 경영하는 나 씨는 “국내 시장의 50%를 차지하고 매년 열번 이상 해외 전시에 나가기도 했지만 욕심 버리고 맘 편히 사는 게 최고라 생각한다”며 트랙터를 몰고 집앞 텃밭으로 향한다.
 
나주나씨 집성촌으로 형성된 택촌은 고려 말에 지금의 국영창고라 할 수 있는 영산창과 성이 설치됐다. 마을 입구에 덩그러니 놓인 표지석만이 그 역사를 알려주고 있다. 기와를 굽던 와요지가 마을 남쪽 영산강변에 있었지만 발굴되지 못하고 유실됐다는 기록만 있다. 와요지를 묻는 말에 마을사람들은 ‘공사하면서 그냥 묻어버리더라’고 답한다. 
 
택촌을 둘러싸고 폐선된 호남선에 만들어진 철길공원에 도내기샘이 있다. 도내기샘에는 나합 양씨의 전설이 있다. 한학의 대가인 전주 감사 이서구가 나주에 인물이 날 것을 점치고 사람을 불러 “삼영리로 가면 어린아이를 낳은 이가 있을 것이니 그 아이를 찾아 남아면 즉시 죽이고 여아면 살려주어라”고 했다.
 
확인하니 여아라 살려주었는데, 자라면서 자태가 곱고 소리도 잘하고 기악에도 뛰어나 인근 남자들의 애를 태웠다고 한다. 조선말 외척인 안동김씨 김좌근의 애첩이 된 그녀의 세도가 정승 못지 않았다고 하여 정승들의 존칭인 ‘합하’를 붙여 나주합하, 나합이라 했다고 한다. 
 
   
 
나진균 영강동 택촌 통장 인터뷰
 
외지인과 교류 통해 발전 꾀하는 공병 줍는 통장
 
“‘통장이 뭘 그리 줍고 다니냐’고 핀잔처럼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다”며 웃음짓는 나진균 통장(65세)은 “분리수거로 환경도 살리고 재활용품 판매수익으로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주변 사람들에게 빈병 함부로 버리지 말고 모아달라고 부탁한다”고 한다.
 
“어른들이 모범을 보여야 우리 사회가 더 건강해진다는 생각으로 3년째 빈병을 수거하고 있다”는 나 통장은 “작년에 빈병 팔아 마련한 21만원을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쓰고 텃밭에서 기른 배추 300포기를 ‘영강동 독거노인을 위한 김장담그기’에 내놓았다”고 한다.
 
1979년 말 군에 입대한 나 통장은 1군단 제1공병여단에서 수송병으로 복무했다. “우리 부대가 전두환이 사회정화를 명분으로 만든 삼청교육대를 직접 설치하고 교육을 담당했다”는 나 통장은 “광주항쟁에 대한 실상도 모른 채 전라도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선임병들로부터 많은 핍박을 받았다”고 한다. 나중에 휴가 나와서 선후배들로부터 항쟁 소식을 들었다는 나 통장은 “간첩이 침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지만 보안대의 서슬이 시퍼렇던 당시 군대에선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고.
 
군복무를 마치고 광주에서 택시와 인연을 맺은 나 통장은 “그 때만 하더라도 수입이 좋아 선망받던 직업이었다”며 “해마다 수백대씩 택시를 늘리던 시절이라 4~5년 무사고면 가능할 줄 알았는데 90년대 들어서면서 증차를 중단하는 바람에 2005년에서야 14.8년 경력으로 내 차를 받았다”고 한다. “20년 넘게 일했지만 부기사로 일한 시간은 경력을 인정받지 못했다”는 나 통장은 “나이 드신 부모님을 모셔야겠다는 생각으로 2010년에 광주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왔다”고 한다.
 
결혼 34년째인 나 통장은 “착하고 순한 집사람에 반해 3년여 사귀고 결혼했는데 지금도 여전히 최고”라며 “직장 그만 두고 쉬자고 하는데도 본인이 좋아라 해서 지금도 회사에 나간다”고 한다. 두 딸과 세 손주가 ‘전 재산’이라는 나 통장은 “지난달에 태어난 손주만 바라보면 세상 부러울 게 없다”며 행복감을 감추지 않는다.
 
“마을 어른들한테 인사 잘하고 말벗하며 어울리는 조건으로 빛가람동 등 도시민들에게 텃밭을 주말농장으로 분양했다”는 나 통장은 “택촌이 택촌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라 외지인들과 교류를 통해 발전해야 한다는 소신으로 통장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힘주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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