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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평역을 대신했던 나주 남평南平역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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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2호] 승인 2023.04.09  21: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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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채석 작가

1925년 을축년 대홍수로 집은 죄다 사라지고 모래밭으로 남았다. 그래서 모래벌이라고도 불렀다. 달리 남평 인근 화순에도 예전에 남면이었으나 지금은 사평면으로 개칭된 곳이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시 제목에서 사평은 가상의 지명일 뿐이다. 시골 어디를 가도 평범하게 있을 간이역이라는 공간. 즉, 대합실을 중요한 배경으로 삼고, 눈이 내리는 겨울밤에 시간적 공간으로 톱밥 난로에 빙 둘러앉아 그날의 마지막 열차를 기다리는 풍경일 뿐이다.

그래서 굳이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사평역이 남평역이라는 등식을 두지 말자는 말이다. 이는 김승옥의 『무진기행』이나 황석영의 『삼포 가는 길』의 지명이 무진은 소설 속에 풍기는 대화로 보아 순천이고, 삼포 역시도 ‘삼포 가는 길’이라는 대중가요의 노래비가 있는 경남 진해의 삼포항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허구의 지명인 것이다. 곽재구의 시 〈사평역에서〉의 사평도 시인의 상상력이 부른 이름일 뿐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임철우가 〈사평역에서〉를 읽고 그 시를 모티브로 쓴 소설 『사평역』이다. 이같이 『사평역』이든, 〈사평역에서〉든, 톱밥 난로 주변을 에워싸듯 둘러앉아 막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 즉, 우리들의 모습을 곽재구는 시를 통해 함축적으로 던지지만, 임철우는 소설의 작중 인물로 역장, 청년(대학생), 중년 사내, 농부, 춘심이, 서울 여자, 미친 여자. 행상 아낙네들을 통해 보자기를 풀 듯 구체화한다.
 
철도 공무원으로 일 해온 역장은 두 명의 역무원과 함께하면서 이장이나 면장이 그렇듯 사평역 인근 마을의 사람들을 대부분 기억한다. 청년은 역에서 가까운 마을이 고향으로 부모님과 다섯의 동생이 있는 집안의 대들보인 장남이다. 역 근동에 한 명뿐인 대학생으로 집안의 유일한 희망이지만, 대모에 가담해 한 달여를 유치장에서 보내고 퇴학을 당한 후 고향 집에 내려와 차마 그 사실을 알리지 못하고 다시 열차에 몸을 담는 아픔이다.
 
중년의 사내는 사평이 고향은 아니다. 열두 해 동안 감방에 갇혀 지내다 출감한 전과자로 함께 갇혀 지내던 무기수 허 씨가 홀로 계신 어머님을 찾아가 봐 달라는 부탁을 받고 왔으나 허 씨의 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다. 북에서 월남한 이 사내는 찾아갈 사람도 갈 곳도 없는 실향민이자 전과자로 비록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으나 감옥에 있는 허 씨가 자신의 처지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슬픈 인생이다.
 
청년이나 중년이나 삶이 무겁고 편치 않다. 그중에 농부도 있다. 기침을 쿨럭이는 노인의 아들이다. 즉, 아버지의 병환으로 도회지 병원에 가기 위해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 그는 평생 농사일만 하면서도 가난과 근심에 갇혀 헤어나지 못하는 군상이다. 한편으로 아버지의 병에 짜증을 감추지 않으면서도 죄스러운 마음이다. 이렇게 톱밥 난로 주변을 에워싼 사람들의 속내는 난로처럼 따뜻하지만은 않다.
 
그렇게 난로 가에 있는 또 한 사람 춘심이의 원래 이름은 옥자다. 시골스럽기는 옥자나 춘심이나 거기서 거기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그 시절 대부분의 소년 소녀가 무작정 상경을 도모했듯 춘심이도 집에서 빈둥대다 서울로 가는 열차에 올랐다. 얻은 건 술집 여자라는 타이틀로 삼 년 만에 고향에 다녀가는 길이다. 물론 집에다 화장품 회사에 다닌다는 거짓말은 통했다. 실지 일하는 곳은 ‘민들레집’이다.
 
민들레집은 술집으로 그곳에서 춘심이는 뭇 남성들을 쥐락펴락하지만, 거리에서 여대생이라도 지나치면 괜스레 부끄럽고 주눅이 든다. 또 다른 여인으로 서울 여자가 있다. 식당을 운영하며 아들 둘을 키우는 뚱뚱한 과부다. 그러한 그녀가 사평을 다녀가는 사연은 식당 주방 일을 돕던 사평댁이 원인이다. 그 원인은 식당을 잠시 비운 사이 사평댁이 돈 삼십만 원을 들고 사라진 까닭이다. 평소 가족처럼 대한 것에 대한 배신감이 사평에 이르게 한 것이다. 그러나 막상 병든 사평댁의 몰골을 보고 부둥켜안고 쏟아지는 울음을 참지 못한다.
 
잔정이 많은 것이다. 결국 돈마저 쥐어주고 돌아가는 길이다. 그녀 서울 여자는 몸도 넉넉하지만, 마음도 넉넉한 것이다. 입맛 까다로운 손님들의 비위 맞아가며 두 아들을 건사하기 위해 억척스럽게 돈을 모으고도 사평댁의 아픔을 함께한다. 이밖에도 행상을 하는 아낙 중에 젊은 아낙은 해산물을, 나이가 든 아낙은 옷가지를 팔러 다닌다. 미친 여자는 사평역을 기점으로 어데 론가 떠났다가 오곤 하는데 이날은 대합실에서 잠이 들어 버린다.
 
이렇듯 곽재구의 〈사평역에서〉와 임철우의 『사평역』은 시와 소설이라는 분야만 다를 뿐, 사평이라는 간이역과 대합실이라는 공간과 눈이 내리는 겨울밤이라는 시간적 설정이라든가 몇몇 사람이 대합실 난로에 둘러앉아 막차를 기다린다는 공통점이 그것이다. 다만 다른 게 있다면 소설의 특성상 등장인물 사이에 갈등이 커지고 마침내는 그 갈등이 폭발하듯 사건이 확대되어야 하는데 역장이든 중년 사내든 누구든 간의 갈등이 없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등장인물들의 각자가 품고 있는 사연이 주된 내용으로 흐르되 연관성은 없다. 그렇게 연관성이 없는 다른 이야기가 모여 하나의 이야기가 되는 구조다. 마치 강진에 가면 아홉 물줄기가 흘러들어 강진만 바다로 흘러들기에 강진을 구강포라 이르듯 소설 『사평역』 역시도 그렇다. 경계심이 없도록 느슨한 삶의 이야기 속에 사는 게 뭔지? 대체 산다는 게 뭔지? 라는 공통의 질문이 있다. 그 질문 속에는 아름다운 서정이 짙게 묻어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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