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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봉황면 용전리 관전마을
김덕수 객원기자  |  najukd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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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0호] 승인 2023.03.13  06:3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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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나주IC 개통되면 물류최적지로 발전할 수 있을 것” 기대

산업화 바람에 주민들 떠나 100여명 살던 마을에 20명도 남지 않아
수렁논 일구고 샘터에서 빨래하고 편 나눠 줄다리기며 윷놀이하던 기억
 
   
▲ 100여명이 넘는 주민들이 줄다리기며 윷놀이를 즐기던 관전마을이 고즈넉한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남자들이 져 주제. 그래야 마을에 풍년 들고 좋은 일 생긴다고...” 화순군 도곡면이 고향인 이귀례(89세) 씨는 열아홉에 결혼하면서 관전마을에 들어와 70여년을 살고 있다. “정초에 남자여자 편을 나눠 줄다리기하고 윷놀이·널뛰기 하며 회관에 모여 놀았다”는 이 씨는 “지금은 다들 떠나고 텅 빈 마을이 됐다”며 보행보조기에 의지한 채 발걸음을 옮긴다. 2006년 나주시에서 펴낸 ‘나주시지’에는 용전마을에 남녀 각 47명씩 94명이 산다고 기록돼 있다. 하지만 지금은 10여가구 채 20명이 되지 않는 주민들만 남았다. 
 
금천면에 살면서 관전마을 배과수원을 임대해 농사짓고 있는 손두현(59세) 씨는 “엄니 뱃속에서부터 배농사를 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배값은 30년 전보다 못한 반면 자재값은 두배세배 올라서 농사지을 맛이 나지 않지만 ‘배운 게 도둑질’이라 어쩔 수 없다”며 트랙터에 오른다. 관전마을에 배농사를 짓는 농가가 5세대였지만 지금은 한세대만 직접 농사를 지을 뿐 나머지는 모두 폐원했거나 임대를 주고 있다.
 
“할아버지가 동학운동을 하다 일본군에 붙잡혀 나주에서 옥살이를 하다 돌아가신 게 인연이 되었던지 역적으로 몰려 살림을 모두 뺏기고 화순군 도암면 고향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고 들었다”는 한우희(87세) 씨는 6살에 관전마을로 이사왔다고 한다. 인근 주민의 집에 의탁한 채 오막살이를 하던 한 씨는 스물일곱에 장흥군 출신 부인을 만나 결혼해 4남매를 두고 있다. “작은아들이 고등학교 다니던 80년대 들어 현재의 터에 집을 지었다”는 한 씨는 “마을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던 탓에 주로 논농사를 짓는 마을이었다”고 한다. 한 씨는 마을 노인회장을 맡고 있다.
 
   
▲ 이귀례(89세) 씨 집 앞에 장독대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남편과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은 윤애자(77세) 씨는 “남편은 2009년 추석을 앞두고 다도면 선산에 벌초하고 돌아오는 길에 맞은편에서 오는 차를 피하다 드들강에 빠졌고, 작은 아들은 고등학생 때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한다. 장흥군이 고향인 윤 씨는 “평생 농사만 짓다 골병 들어 어디 한군데 성한 곳 없이 어깨고 허리고 다리를 수술했다”며 “더 이상 혼자서 농사지을 수도 없어서 조그만 땅만 남기고 정리했다”고 한다. 불편한 몸으로 홀로 힘들게 살고 있는 윤 씨는 광주 사는 큰 아들과 손주들이 수시로 들러 위안이 된다고 한다.

관전마을에서 나서 결혼하고 살아온 박순단(70세) 씨는 “경지정리가 되기 전이라 수렁논, 삼각논 일구고 농한기 때 가마니 짜서 영산포 장까지 걸어가서 내다 팔아 보리쌀이라도 사와야 먹고 살았다”며 “마을 앞 샘터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 빨래도 하고 식수로 쓰고 했는디 마을사람들이 떠나면서 시멘트포장에 덮여 사라졌다”고 한다. 박 씨만 남고 나머지 식구들은 70~80년대 산업화의 바람을 타고 생계를 찾아 모두 서울로 떠났다.
 
“어른들로부터 벼슬 ‘관’이랑 밭 ‘전’은 서로 어울리지 않아 큰 인물이 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자랐다”는 박남규 이장(68세)은 “마을 출신으로 40여년 전 해병대 대령이 있었는데, 끝내 장군으로 진급하지 못하고 예편해야 했다”고 한다. 마을 뒷산의 울창한 숲에 황새가 많아 황새 ‘관’자를 써서 관전마을이었는데, 조선시대 높은 관직을 지낸 마을 출신이 있어 벼슬 ‘관’자를 쓰게 됐다고 한다. 마을 앞에 배를 맨 흔적이 있었다고 한다.
 
   
▲ 관전마을 뒤 야산에는 삼국시대 고분 3기가 미발굴된 채 심하게 훼손돼 있다는 기록만 남은 채 대나무가 무성하다.
 
박 이장은 마을의 앞날에 희망을 건다고 한다. “지금은 형편없이 쪼그라 들었지만 마을 앞으로 지나는 고속도로가 개통되고 나면 더 나아질 것”이라는 박 이장은 “남나주IC가 개통되고 영산포로 가는 도로가 확포장되면 우리 마을이 물류의 최적지로 선호될 것”이라는 것이다. 2004년 건립된 마을회관 기념비에 쓰여진 “온 주민의 총결집으로 경로효친하는 예절의 교육장으로써 훌륭한 전통을 이어가는 요람으로…(중략)…높고 높은 금성산과 푸르고 푸른 영산강과 더불어 무궁하리라”는 글귀처럼 관전마을이 오래도록 발전해 나가기를 소망해 본다.
 
2009년 문화재청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가 펴 낸 ‘나주시 문화유산 종합학술보고서’에 따르면, 마을 동쪽 야산에 삼국시대 고분 3기가 있었다고 한다. 훼손이 심하고 발굴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용전리 관전고분군’이라는 기록을 따라가 봤지만 대나무숲만 무성할 뿐 아무런 흔적도 찾을 수 없다. 물길을 따라 터를 잡고 살았을 선조들의 모습만 그려볼 뿐이다. 
 
 
   
 
박남규 관전마을 이장 인터뷰

“부모님이 물려준 땅이 고향을 지키게 해”
 
“마흔 넘어 결혼해 어렵게 얻은 딸이 올해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교육공무원에 합격하고 발령을 기다리고 있어 더 없이 행복하다”는 박남규 이장(68세)은 “결혼도 극적이었지만, 집사람이 허약해서 아이를 갖기 어려울 줄 알았는데...”라며 말끝을 흐린다.
 
대형 벌크트레일러에 시멘트를 싣다 추락해 3개월여 병원에 입원해야 했던 박 이장은 “같은 병실에 입원한 분의 소개로 부인을 만나게 됐다”며 “왜소한 체구에 희귀한 RH-혈액형을 가진 일본인이라 대화도 쉽지 않았지만 결혼하고 5년만인 1999년에 첫 아이를 낳았다”고 한다. 2006년생인 둘째딸은 봉황고 2학년이다.
 
“거동이 불편한 두 부모님을 정성껏 돌보는 집사람 모습을 지켜 본 마을사람들이 추천해서 효부상도 받았다”는 박 이장은 “두분 돌아가시고 나서 ‘하고 싶은 일 맘껏 하라’고 했더니 봉황초 유치원 보조교사 일에 만족해하고 있다”고 한다.
 
“고교를 마치지 못하고 상경해 굶지 않으려고 중식당에서 배달을 시작했다”는 박 이장은 “배달 일을 하면서 복싱을 배워 전국체전에 출전했지만 성적은 좋지 않았다”고 한다. 박 이장은 고향에서 군복무를 마친 뒤 1979년 1종 대형부터 특수트레일러와 굴삭기 면허를 취득하고 광주에서 운수업을 시작했다. “손재주가 좋아 정비 등 각종 자격증도 갖고 있다”는 박 이장이지만 IMF위기를 넘지 못하고 사업을 정리해야 했다. 
 
“아버지에 이어 어머니까지 병환으로 쓰러지는 바람에 3~4년 정도 살아계시는 동안이라도 보살펴야겠다고 맘먹고 고향으로 내려왔다”는 박 이장은 “부모님이 물려주시고 떠난 과수원과 논밭을 남겨두고 도시로 나갈 수 없었다”며 과수원은 폐원하고 고구마와 담배 농사를 지으며 굴삭기 일을 하고 있다.
 
고구마 등 농작물이 잦은 시세 변동으로 어려움이 많은 반면, 계약재배인 담배는 매년 0.1%라도 가격이 인상되기 때문에 안정적이라며 지인들에게도 권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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