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한라산 중턱의 구상나무를 베어오는 일 에서부터 배를 맞출 때까지 모든 일을 함께 해온 자들이다.

물구멍이 생길만한 곳은 그들의 손바닥 안에 있는 것처럼 쉽게 알 수 있다. 기억력을 되살려 물이 샐만한 이음새 부분을 찾아내면 된다. 목재와 목재의 이음새에 틈이 생기거나 뒤틀리면 그곳에서 물이 새는 것이다.
 
배를 만들면서 오직 단단한 나무를 다듬어 못으로 만든 목정(木釘)만 썼던 까닭에 어디에 이음새가 있는가를 알고 있는 그들은 그곳만 손대면 배에 들어오는 물구멍을 잡을 수 있었다. 그것도 임시로 고치기 때문에 배 안에서 판목을 덧대어 막으면 되는 것이다.

  더구나 수정호는 쇠로 만든 철정(鐵釘)을 쓰지 않아 쉽게 고칠 수 있었다. 제일 처음 경차관이 뭍에서 조천관으로 들어갈 때는 판옥선을 탔다.

판옥선도 철정을 쓰지 않는다. 그렇지만 병선(兵船)이나 조선(漕船)은 나라에서 만들기 때문에 철정을 썼다.

수정호처럼 개인이 만든 한선은 철정을 구하기도 힘들고 또 배의 수명도 오래 버티기 위해서는 철정대신 단단한 나무를 깎아 못으로 써야만 했다.
 
 철은 나무사이에서 바닷물에 녹아 내리며 녹이 슬어 벌겋게 물이 들며 부식되고 만다.

그러나 나무못은 서로 이음매사이를 홈을 파고 짜 맞추기 때문에 틈새로 물이 스며들며 부풀어올라 더 단단해지게 마련이다.

 녹슨 쇠는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부식되지만 나무못은 관리만 잘되면 썩을 염려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한선 건조 시에는 나무못을 주로 썼던 것이다.
 
 전쟁에 동원될 배들은 철정이라야 견디어낸다. 그러나 민간이 만든 한선은 배의 빠르기나 수명에서 병선보다 오래 버티기 위해서는 목정만을 사용해야 했다. 그들은 세 시간이 넘게 배의 구석을 뒤집으며 물구멍을 막았다.

  이제 배 안에 차있는 물을 퍼내기만 하면 우선 위급한 상황은 넘길 수 있다. 최부는 궁리했다. 이들의 마음을 움직여야 일이 수월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옳지! 이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일부터 하자.'
 
 먼저 배 안의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을 살펴보았다. 옷이 남루하고 찢어져서 살갗이 보이고 젖어서 덜덜 떠는 자들을 불러 들였다. 권산, 김고면, 최거이산, 김괴산, 허상리의 옷이 형편이 아니었다. 그들을 전부 불러 들였다.

  "추울 테니 내 옷을 입도록 하라."

  최부는 출항할 때부터 상복 속에 덧으로 입고 있던 천의(天衣)를 벗었다. 그리고 속옷까지 벗어서 그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입도록 했다. 턱없이 부족한 옷들은 보관함 속에 넣어두었던 옷까지 꺼내 입도록 했다.

이런 모습을 본 뱃사람들과 군인들까지 최부의 순수하고 진심 어린 애정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경차관을 따라 살길을 찾자."

살기 위해 모든 사람이 한마음이 되고

  최부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나무바가지를 손에 든 그는 물이 고여 있는 배의 밑바닥 창고선실로 들어가 물을 퍼내기 시작했다. 아무 말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땀을 뻘뻘 흘리는 최부를 보다 못해 바가지를 뺏어 자기들이 퍼내기 시작했다.
 
 무릎까지 차있던 물이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한사람도 빠짐없이 물을 퍼냈다. 들어온 물이 조금씩 줄어들자 밑바닥이 드러나고 물기가 마르기 시작했다.
 
 무장한 군인 중에서 김구질회, 문회, 김도종, 한매산, 현산 등도 최부의 헌신에 감동을 받아 다른 사람보다 더 열심히 물을 퍼냈다.

배가 조금씩 안정을 되찾았다. 설마하니 쉽게 죽지 않을 것이란 기대가 다시 살아난 것이다.
 

선장은 수정호가 바위에 부딪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키잡이 김고면 대신 자기가 직접 키를 잡았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 배는 암초에 걸리고 말았다. 선장은 혼신을 다해 배를 빼내려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암초의 바닥이 울퉁불퉁한 바위라서 수정호의 옆구리가 걸렸던 것이다. 선장은 긴급하게 호루라기를 불며 배 안의 모든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배가 암초에 걸렸다. 암초에 얹힌 쪽의 반대로 모여라!"
 
 그는 사람들의 몸무게를 이용해서 암초에 기울어 얹힌 배를 빼려고 한 것이다. 배의 반대쪽 벽을 중심으로 모여든 사람들이 같은 동작으로 함께 발을 구르며 흔들어보았지만 배는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내가 호루라기를 불 태니 장단에 맞춰 두발을 구르면서 힘을 쓰도록 하세요."
  모두가 고함을 질렀다.
  "영-차 영-차"
 
 함께 입을 맞춰 소리를 지르며 양발을 굴렀다. 기울어진 반대쪽으로 모인 사람들이 배를 쿵쿵거렸더니 한쪽으로 기울어지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다란 장대를 찾아서 들고 온 고보종과 양달해가 암초에 걸었다. 장대를 암초에 걸고 기운대로 밀면서 힘을 썼다.

힘껏 밀면서 굽혔던 허리를 조금씩 펴면 배가 조금씩 들썩거린다. 중선 배보다는 조금 더 큰 수정호는 쉽사리 움직여지지 않았다. 선장이 외쳤다.

"내 소리에 맞춰서 힘껏 구르고 밀기를 동시에 하도록 하라!"
 
일부는 발을 구르면서 무개 중심을 암초의 반대쪽으로 이동하게 하고 다른 쪽에서는 장대로 밀쳐내자 꿈쩍도 하지 않던 배가 조금씩 움직인다.

함께 힘을 쓰자 조금씩 흔들리던 배는 바다로 흘러들더니 결국에는 암초지역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아슬아슬한 위기를 벗어난 순간이다. 그런다고 배가 자유로운 것은 아니었다. 상처투성이의 배는 맘먹은 대로 부려지지 않았다. 거친 제주바다를 누비고 다녔던 노련한 자들이지만 어렵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