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에도 바람 영향없는 산 좋고 공기 좋은 살기 좋은 마을

수천년 전 청동기 시대 유물인 고인돌은 표지도 없이 밭 가운데 방치
6·25전쟁 때 빨치산 토벌작전으로 불 탄 윗마을은 윤병태 시장 고향

▲ 노동리가 초입에 청동기시대 유물인 고인돌이 밭 가운데 농자재와 함께 방치돼 있다.

마을을 둘러싼 민둥산에 갈대가 무성했단다. 갈대 로(蘆)자를 써서 노동리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갈대마을이라는 뜻이다. 노동리가 시작되는 철로변에 고인돌 20여기가 남아있어 청동기 시대부터 사람들이 모여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표지판조차 없이 밭 가운데 방치돼 있는 고인돌 옆에는 동학혁명의 꿈을 이루지 못한 ‘오호장수’고제칠의 묘가 있다. 마을 가운데 노동저수지의 윗마을은 상노동, 아랫마을은 하노동으로 나뉜다. 올해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윤병태 나주시장은 윗마을 출신이다.

광주광역시 효덕동이 고향인 김덕님(75세) 씨는 “신혼 때 3년여 송정리에서 살다 큰아이 낳던 해인 72년에 아랫마을 작은형님네 집으로 들어와 자리잡았다”며 “오래된 헌집을 헐고 한옥지어 살다 2014년에 지금의 양옥집으로 지었다”고 뿌듯해 한다.

윗마을이 고향인 윤춘근(81세) 씨는 “부모님이 짓던 농사지으며 산에서 나무해서 장에 내다팔아 생계를 이어왔다”고 옛 이야기를 꺼내고는 “산밭에 콩이며 보리 심고 벼농사 짓다 아랫마을로 내려와서 논밭 각 10마지기 농사로 두 내외는 물론 광주 사는 3남매 먹거리로 충분하다”고 한다.

▲ 지방도 55호선을 따라 남평읍에서 화순으로 향하는 맨 마지막에 노동리가 있다.

1969년에 결혼하면서 아랫마을에 들어와 54년째 살고 있는 박순례(77세) 씨는 “채소 한다발 팔기 위해 이고지고 남평역까지 걸어가서 기차타고 남광주시장을 수도 없이 다녔지만, 정작 1시간 거리도 되지 않는 고향(화순군 춘양면)에 자주 가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며 배추며 열무, 당근, 양파가 자라고 있는 텃밭으로 향한다.

전문직에 종사하다 보니 광주와 청주 등 도시의 아파트에서 25년여 살다 단독주택에 살고 싶다는 열망으로 2012년에 윗마을로 이사온 김율희(68세) 씨는 “직장이 있는 광주가 가까워 자동차로 다니는 데 큰 불편은 없다”면서 “마을을 둘러싼 정광산이 산세가 좋아 산책이라도 다니고 싶지만 등산로가 없고 멧돼지라도 만날까 두려워 선뜻 나서지 못한다”고 아쉬움을 나타낸다.

6.25전쟁을 윗마을에서 겪었다는 윤창주(81세) 씨는 “산골마을이라 밤사람들(빨치산)이 다녀간 뒤 어느 날 군경이 들어온다는 말에 두 형님과 함께 산 넘어 화순군 앵남면으로 피했다 돌아와보니 집들이 모두 불타고 있었다”며 “다행히 미리 소식을 알고 피한 바람에 피해입은 사람은 없었지만 50호가 넘는 큰 마을에서 피어오르던 검붉은 불길과 자욱한 연기를 잊을 수 없다”고 군경의 소위 ‘빨치산 토벌작전’을 기억한다.

아랫마을 어귀에서 만난 정양님(84세) 씨는 “20마지기 넘는 논밭으로 자식들 키우고 살았는디 도로난다고 정리하고 어찌어찌 하다보니 큰아들 앞으로 된 논 두마지기만 남았다”며 “나이가 들수록 산포면 매성리 고향땅이 자꾸 생각난다”면서 거동이 불편한 남편(89세)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 고인돌 옆에는 동학혁명의 꿈을 이루지 못한 오호장수 고제칠의 묘가 있다.

윗마을로 이사와서 만성비염이 나았다는 문영숙(63세) 씨는 “광주 아파트 살 때는 시간만 나면 여행을 떠나고 싶었는데 여기 와서는 밖으로 나갈 생각이 나지 않는다”며 “태풍이 와도 바람이 없고 아늑한 공기가 너무 좋다”고 만족해 한다. 마을사람들 도움으로 앞마당 빈 터에 황토방을 직접 지었다는 문 씨는 부녀회 총무를 맡아 마을일에 함께 하고 있는데, “외양간이며 옛 이야기가 마치 교과서 속에 살고 있는 것만 같다”고 덧붙인다.

윗마을 맨 끄트머리에 ‘남촌산방’을 짓고 대금과 글씨를 공부하며 지인들과 차를 즐긴다는 김양수(79세) 씨는 “공기 좋고 살기 좋아 이 마을로 들어왔다”며 “이웃들과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는 맛에 삶의 보람을 느낀다”면서 동양 최대의 한옥이라는 인근 평산리 집에 한번 와 볼 것을 권한다.

윤판주 이장(60세)은 “광주랑 가까워서 다른 마을에 비해 외지인들이 많이 들어와 살고 있지만 원래 살던 주민들과 소통이 부족하다”며 “자기 땅이라고 울타리치고 마을 길을 막는 바람에 주민들과 갈등을 빚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어려움을 터놓는다.

윤 이장은 “7~8년 전에 동충하초를 가공하는 농업회사가 들어와 사업을 했지만 제대로 얼굴 한번 못 본 채 지금은 보이지도 않을 정도”라며 이웃들끼리 편하고 즐겁게 어울려 사는 마을을 꿈꾼단다. 한 때 60여호가 넘는 큰 마을이었지만 지금은 20여가구만 남은 노동리이지만 윤 이장의 꿈이 현실이 되길 기대해 본다.      

윤판주 이장 인터뷰

“첫인상에 반한 집사람과 여행다니며 살고파”

“착하고 이쁜 첫인상처럼 여전히 가족과 마을 일에 최선을 다해준 집사람한테 항상 고마울 따름”이라는 윤판주 이장(60세)은 “객지서 직장생활하던 1990년 첫 만남에 반해서 6개월 연애 끝에 결혼했다”며 부인자랑에 웃음짓는다.

지난해 정부지원사업을 신청했던 정광산 등산로 정비사업을 못내 이룬 것이 아쉽다는 윤 이장은 “어려서 친구들과 어울려 산에 오르면 광주시내가 훤히 내려다 보였다”며 “광주생활권인 탓에 다른 마을에 비해 5-60대 젊은 사람들이 적지 않으니만큼 잘 준비해서 옛길을 다시 다닐 수 있도록 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윤 이장은 15년 전 고향으로 돌아왔다. “20대 때 직장을 찾아 부천으로 갔다가 처갓집이 있는 부안을 거쳐 광주에서 사업을 했다”는 윤 이장은 “진월동에서 식당 할 때는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잘 되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고향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고 귀향을 설명한다.

양봉과 벼농사와 함께 비닐하우스에서 무, 배추, 시금치 등을 재배해 인근 로컬푸드에서 판매한다는 윤 이장은 “전날 저녁부터 새벽까지 준비해서 광주 남구와 남평, 산포, 나주로컬푸드 매장을 돌고 나면 오전이 다 지난다”며 “지금까지 한눈 팔지 않고 성실히 살아왔듯이 앞으로도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한다.

12년째 이장을 맡고 있는 윤 이장은 “이번을 마지막으로 이장은 그만 둘 계획”이라며 “대학생인 막내가 학업을 마치면 농사를 줄이고 집사람과 여행도 다니며 여유를 가지려고 한다”는 소박한 소망을 밝힌다. 매일 전화통화로 가족의 정을 나누는 세 딸 중 맏이가 선물한 승용차를 바라보는 윤 이장의 얼굴이 밝게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