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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동강면 장동리 수문마을
김덕수 객원기자  |  najukd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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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7호] 승인 2022.08.22  00:5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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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께 진상 어팔진미 ‘장어’등 영산강물고기로 생계유지
 
호미로 땅 파 모 심었지만 수확 못했던 68년 대가뭄이 젤 어려워
댄스대회 최고상 자랑…구렁이 이야기 품은 조산과 마을 앞 말무덤
 
“춤 하면 수문마을 여자들이 최고여!” 마을회관에 모인 주민들이 목소리를 높인다. 2017년 ‘노인맞춤형 운동처방 서비스사업단’이 주관한 ‘리듬댄스 경진대회’에서 동강면 장동리 수문마을 여성들로 구성된 ‘드림생미파워댄스’팀이 금상과 최고상을 받은 것이다. 
 
2016년 가을부터 매일 저녁 모여 연습했단다. 노력한 댓가가 큰 상이어서 더 기뻤다고 한다. 경쟁하는 상대편들을 응원하는 것도 재미였다고 덧붙인다. 아쉬운 것은 당시에 함께 참가한 18명 중 6명이 돌아가시고 2명은 요양원에 있다는 것이다. 세월이 야속하다고.
 
   
▲ 동강면 장동리 수문마을 주민들이 마을회관에 모여앉아 2017년 댄스대회에서 최고상을 받은 이야기를 하며 당시를 회상하며 기뻐하고 있다.
 
영산강 지류인 삼포천을 막는 수문이 있어 수문마을이라 불린다. 수문 안쪽은 민물이고 바깥쪽은 바닷물이었단다. “그 때만 해도 영산강 물고기라면 알아줬다”는 이경자(81세)씨는 “숭어며 장어, 짱뚱어, 운지리, 모치에 기(게)를 잡아서 가까운 진천리랑 공산면 화성리, 멀리는 시종장까지 걸어서 팔러 다녔다”고 한다. 
 
특히 이곳 장어는 임금께 진상하던 나주 특산품, ‘어팔진미’ 중 하나인 ‘수문리 장어’다. 무안군 일로읍이 고향인 이 씨는 “교통이 불편해 바닷길로 발동기(배) 타고 수문 앞에서 내렸다”며 “어머니가 죽어도 돌아오기 힘들 것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평야가 넓은 동강에서 굶진 않을 것이라는 말을 듣고 결혼했다”고 60여년 전을 회상한다.
 
양유순(89세) 씨는 “영암군 신북면 친정마을에서 13년을 살다 남편 고향인 이 마을로 돌아와 벼농사를 주로 지었다”며 “난리 때도 사람이 다치지 않아 숨어사는 마을이라 해서 숨은마을이라고도 한다”고 너스레를 떤다. 
 
양 씨는 “1967~68년 대가뭄은 잊을 수 없다”며 “호미로 땅을 파 모를 심었지만 다 말라죽는 바람에 쌀 한톨 수확할 수 없어서 돼지 4마리를 팔아 쌀 한말을 살 정도”였단다.
 
수문마을은 한때 90여세대 200여명이 넘는 큰 마을이었지만 지금은 채 반도 되지 못한다. 떠나는 사람은 있어도 돌아오는 사람은 없다고 아쉬워한다. 
 
맥주회사에서 정년퇴직한 남편의 고향으로 8년 전 귀향한 당진 출신의 ○○○(68세) 씨는 “일가친척도 있고 마을사람들이 모두 가족같은 분위기라 적응해 사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며 “교통이 불편하고 문화와 체육 활동을 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지만 주어진 환경에 맞춰 만족하며 살고 있다”고 말한다. 한사코 이름을 밝히지 않는 그는 시간이 나는대로 마을을 크게 돌며 걷는 운동을 한단다.
 
수문마을이 고향인 김양수(79세) 씨는 “마을 가까이에 저수지가 없어서 벼농사만으론 살기 힘들어 미장이며 목수 일을 해서 얘들을 키웠다”며 “경지정리가 끝난 90년대에서야 제대로 농사지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 삼포천을 타고 들어오는 바닷물을 막는 수문 옆 조산(사진 오른쪽 언덕) 너머 진천뜰 뒤로 수문마을이 평화롭게 펼쳐진다.
 
김 씨는 “마을 입구 고롱나무가 있는 야트막한 언덕을 말무덤 또는 몰무덤이라고 한다”며 “말을 묻었다고 하기도 하고 시신을 몰아넣고 묻었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한다.
 
스무살에 결혼해서 58년째 수문마을에 사는 주정애(78세) 씨는 “4남매 장남인 남편과 함께 형제들 건사하고 6남매 키우기 위해 농사일이 없는 겨울엔 호롱불을 켜놓고 가마니를 짰다”며 “가장 비싼 ‘1등 쌀가마’를 하룻밤에 10개까지 짜며 디지게 살았어도 남은 건 16마지기 논이 전부다”고.
 
김영숙 노인회장(85세)은 “마을 앞 수문 옆에 조산이라는 무덤이 있는데 큰 구렁이가 살아 영암군 남해포 구렁이랑 1년에 한번 만나러 간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며 “광산김씨가 18호로 가장 많고 경주이씨와 제주양씨가 각 5호 정도 살고 있다”고 말한다. 
 
김 회장 등 마을사람들은 ‘양감자’로 불리던 양남조 전 전남도의원을 자랑한다. 고구마를 흙 속에 대량으로 저장하는 기술을 연구하는 데 성공해서 제2대 전남도의원(1956~60년)까지 지냈단다. 
 
1970년대에 이원섭이라는 목포사범 사친회 이사와의 인연으로 목포사범 출신 선생님이 6명이나 배출됐다. 기록에 따르면 현 공무원체계로 3급 이상 고위공무원에 해당하는 당상관, 통정대부를 지낸 광산김씨 문숙공파 16세손 대옥이 임진왜란 때 이곳에 터를 잡고 정착했다고 한다. 
 
마을회관에서 대전리로 가는 감나무밭에서 구석기시대 유물인 찍개와 몸돌 등이 출토, 구석기시대부터 사람들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80년대 마을 앞 진천뜰 논에서 문화재 발굴조사가 있었는데, 8백여평의 논을 구획을 나누어 조사한 결과 도자기와 옹기 등의 유물이 출토됐다고 한다.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에 확인한 결과, 원삼국시대(기원 전 100~서기 300년) 패총(선사시대 사람들이 먹고 버린 조개껍데기 등이 쌓여 층을 이룬 유적) 등으로 밝혀졌다. 
 
동강면에서 출발해서 공산면, 영산포, 나주로 나가는 시내버스가 하루 6번 들어온다. 수문마을의 오늘은 또 그렇게 저물어간다.   
 
   
 
김영숙 노인회장 인터뷰

거동 불편한 아내 걱정 “동강서 젤 큰 마을”
 
“건강이 젤이여. 수술하믄 좋아질 줄 알았는디 바깥출입도 못하게 돼 부렀어!”
 
수문마을 김영숙 노인회장(85세. 사진)은 지난해 다리수술 후 거동이 불편한 아내 건강이 젤 걱정이란다. 친구 소개로 옆 마을인 대전리 1구 출신인 부인을 처음 만났다. 첫인상부터 맘에 들어 양가 어른들의 허락을 얻어 1967년 결혼했다. 결혼하기 전엔 부인을 만나기 위해 그 마을에 사는 친구 집에 자주 놀러갔다고 한다. 
 
1968년 큰 가뭄이 들어 농사가 어려워지자 인천으로 건축일을 하러 갔던 김 회장은 “2년여 고생한 끝에 함께 일하던 사장님과 본격적으로 일하기로 했는데 장손이라는 이유로 다시 고향으로 내려와야 했다”며 “우리 마을이 경지면적이나 가구수 모두 동강면에서 제일 큰 마을이다”고 1970년에 이장에 당선된 이야기를 꺼낸다. 이장에 이어 새마을지도자회장과 개발위원장 등 30여년 마을일을 맡았는가 하면 농협 이사도 지냈단다.
 
강원도 홍천군에서 포병으로 군생활을 한 2년6개월과 인천에서의 직장생활 2년여를 제외한 평생을 수문마을에서 살았다는 김 회장은 “뇌혈관이 막혀 죽을 고비를 맞았지만 운 좋게도 이튿날 바로 수술을 해서 살아났고, 전립선암은 수술없이 약물치료로 회복했다”며 건강 이야기를 다시 꺼낸다. 
 
슬하에 3남1녀를 두었지만 먼저 죽은 둘째 아들이 여전히 눈에 밟힌다는 김 회장은 “살아있으면 52살인데 갑작스런 사고로 가부렀다”며 남은 3남매는 서울서 각자 사업을 하고 있고 “명절이나 생일이면 빠지지 않고 찾아오는 자식들이 큰 힘이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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