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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기운 회고록 <내 인생의 전환점 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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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2호] 승인 2022.01.16  18:4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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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기운(제16대·19대 국회의원)
‘71 동지회 50년 기념문집’회원 회고록에 실린 71동지회 회장인 배기운 전 국회의윈의 회고록을 배 의원의 허락을 얻어 5회에 거쳐 연재한다. ▲편집자주
 
사장으로서 이창희(광주일고 선배) 등 공단 참모들의 협조로 과감한 공단 개혁에 착수했다. 무엇보다도 공단의 운영체계를 의료 중심 체계로 전환했다. 전국 5개 보훈병원 시설을 확충하고, 특히 광주 5.18 부상자들이 법 개정을 통해 새로이 보훈대상자로 지정된 것을 감안하여 광주 첨단단지에 대규모 보훈병원 건설을 시작했다. 
 
광주병원 신축에는 이종찬 국정원장과 임채정 정책위의장 등이 적극 도와주었다. 사장 취임 1년 반쯤 지나 총선 출마를 위해 사직서를 내자 서울병원의 노조위원장 김숙희가 사직을 만류하기도 했다. 노사 간의 관계에서 보기 드문 일이었지만, 나의 공단 운영에 대한 노조의 평가가 나쁘지는 않았던 것 같다.
 
DJ는 JP와의 내각제 개헌 논의를 유보하고 2000년 1월에 새천년민주당을 창당한다. 그 해 나는 처음으로 당료 출신으로서 16대 총선 민주당 공천을 받았다. 그것도 집권여당으로서, 고향 나주의 지역구 공천을 받은 것이다. 정치권에 입문한 지 15년 만이었고, 지천명(知天命)의 나이 50세였다. 사실, 대학 입학 전에 3수를 했던 터라 나에겐 항상 ‘지각 인생’이란 강박관념이 따라다녔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많이 늦은 게 아니었던 것 같다.
 
어쨌든 개편대회를 거쳐 지구당 위원장으로 선출되었고, 곧바로 선거 준비에 들어갔다. 상대방은 3선의 사무총장 출신 이재근(2009년 작고)과 전직 의원 나창주 박사였다. 지역 분위기는 이재근 후보가 압도했고, 지방의원들도 대다수 그 편에 가 있었다. ‘낙하산 공천’이라는 공격에 대해서는 “나는 낙하산 타고 온 공수부대가 아니라 육군보병 병창 출신으로서 당당히 걸어왔다”고 맞받아쳤다. 상대방 두 후보 모두 사실상 병역 미필인 점을 꼬집어 반격한 것이다. 30년 전 학생운동으로 강제 징집되어 병역을 필한 것이 그야말로 ‘전화위복’이 되었다. 
 
정치 초년생으로서 선거운동 기간 내내 마치 칠흑 같은 동굴 속에 갇힌 느낌이었다. 선거 당일 투표소 격려를 마치고 사무소로 돌아오는 승용차 안에서 출구조사 결과를 들었다. 낙승 예상이라고 했다. 나주 시내 LG공장 앞의 만개한 벚꽃이 처음으로 화사하게 내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그때의 감격을 잊을 수가 없다. 초심(初心)이라는 단어를 몇 번이고 되뇌었다.
 
국회의원이 되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소망해왔던 가치였던가. 우선은 무엇보다도 DJ에게 은혜를 갚고 싶었다. 한편으로는 원내부 총무로서 정균환(’43년 고창산, 4선) 원내총무를 도와 국회 운영에 관여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산자위(위원장 박광태, 3선)에서 법안소위원장으로서 전력산업 구조조정 관련 3법을 관철시켜 DJ의 국정 부담을 덜어주었다.
 
당시 DJ정부가 추진한 전력산업 개편에 대해 야당과 한전 노조가 강력 반발했는데, 노조위원장 오경호(’48년 나주산)의 적극적인 중재로 잘 처리되었다. DJ도 오경호에게 감사의 전화를 했다고 한다.
 
DJ의 특별 관심사항이었던 제주도 개발에 관해서는 당 차원의 제주국제자유도시 정책기획단(단장 이해찬)의 제3분과 위원장(금융물류)으로서 오늘날 제주특별자치도의 초석을 세우기도 했다. 4·3사태의 불명예도 입법을 통해 해결되었다. 그러저러한 공로로 제주도의회의 의결을 거쳐 도지사로부터 받은 명예 제주도민 자격은 지금도 유효하다.
 
제16대 국회의 딱 중간에 변방의 비주류였던 노무현이 예상을 뒤엎고 민주당의 대선후보가 되었다. 역동적이었던 경선에서 이인제가 대세였고 나는 한화갑을 지지했지만, 광주에서는 뜻밖에도 노무현이 1등을 했다. 이것은 경선 판도를 흔들기에 충분했다. 노무현의 광주 승리의 배경이 무엇이었을까. 이에 관해 공허한 주장들이 많지만, 궁극적으로 본선 경쟁력을 의식한 광주시민들의 분별력과 탁월한 정치 감각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본선이 시작되면서 나는 선대위 총무위원장(본부장 이상수)을 맡았다. DJ의 대선을 3번이나 치러본 경험이 있는 터라 여유 있게 직무를 수행했다. 정몽준과의 후보단일화에 성공한 직후, 포항·울산 방문 일정에 산자위 소속인 나에게 수행 요청이 왔다.
 
김포공항 식당에서 조찬을 함께하는 자리에서 후보가 정색하면서 말을 꺼냈다. “후보단일화를 꼭 해야 합니까?” 투박한 그 어투는 정몽준과의 단일화 그 자체가 싫다는 것이었다. 동행 기자들이 들을까봐 목소리를 낮추어 화제를 바꾸면서 포항·울산 연설에서 득표를 위해서 꼭 정몽준을 칭찬해달라고 주문했다. 
 
그러겠다고 했지만, 그는 연설 도중 한마디도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인간 노무현의 솔직함과 가치관이 읽히는 대목이다. 선거일 직전 단일화 파기의 고비를 넘기고 당선된 날 저녁 나는 총무위원장으로서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당선 축하 세리머니의 사회를 보았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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