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의 한 농업법인이 외형상 농업회사법인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사실상 개인사업장으로 운영되고 있으면서 수십억 원대에 이르는 보조금을 지원받아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곡물 도정업 및 판매, 조리식품제조 및 판매를 목적으로 2013년 9월 설립된 A농업법인은 2017년 밭작물 공동경영체 육성 사업에 선정되어 시비 4억, 국비 5억 원 등 총 10억 원(자부담 1억여 원 포함)의 보조금을 지원받았다.

이와는 별도로 2014년 맥류 건조·저장 시설 구축을 위해 시비 2억 2천만여 원, 도비 5,400만 원, 국비 2억 7천만 원 등 총 9억 2,900만 원의 보조금(자부담 4억여 원 포함)을 지원받는 등 총 20억여 원(자부담 5억여 원 포함)에 달하는 사업비를 지원받았다.

문제는 이 같은 거액의 보조금을 지원받은 곳이 농업회사법인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사실상 개인사업장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법인은 주식회사 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대표이사와 그 배우자, 공장 직원 1명 등 총 3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의사결정 구조 자체가 사유화되어 있다는 점이 논란거리다.

나주지역에는 다시면 등 7개의 보리 생산 작목반(공선 출하회)이 구성되어 있고, 여기에 소속된 100여 농가가 이 법인과의 계약재배를 통해, 보리를 가공·유통·판매하고 있다. 이 작목반은 생산 활동에만 참여하고 있을 뿐 법인 구성원으로 참여하지도 않고 경영활동 등 의사결정 과정에도 전혀 참여하고 있지 않다.

이에 따라 20억여 원의 보조금이 보리 생산 농민 공동의 이익보다는 법인 사유재산 증식에 기여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보조금으로 구입한 설비나 건축물 등은 지원받은 순간부터 법인의 재산이 되며, 처분 제한 기간인 5년만 경과 하면 이 재산을 법인 마음대로 처분해도 아무런 제재를 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보조금을 지원받은 법인이 농민과의 계약재배를 해제하거나 유통 활동에 참여하지 않아도 아무런 제재 장치가 없어 사실상 법인의 배만 부르게 하는 구조다.

보조금으로 구입한 트랙터(1억 원) 및 콤바인(6,400여만 원)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생산자단체가 소유해야 할 농기계를 A법인이 소유해 법인 사업장의 재산이 되고 있고, 오히려 이용자인 생산자 조직 작목반은 년 200만 원의 임대료를 내고 농기계를 이용하는 실정이다.

이 같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위해서는 생산자인 농업인과 가공·유통회사가 하나로 통합된 법인을 설립해 민주적인 운영을 통해 공동체를 육성해야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렇게 통합적으로 구성된 법인을 통해 보조금이 지급되어야만 개인사업장에 대한 지원이라는 논란을 잠재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나주시는 이 법인에 대해 총 6억여 원에 달하는 시비를 보조금으로 지원하면서 ‘밭작물 지원 조례’등 관련 근거를 마련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나주시 농업기술센터 관계자는 “국고 매칭 사업의 경우에는 조례 등 지원 근거가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다. 하지만 투명하고 계획적인 지원을 위해서는 앞으로 조례 제정 등 근거 마련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협업적·기업적 경영을 통해 농업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1990년 농업법인 제도를 도입해 다양한 농업 지원 정책을 추진해 왔다. 이에 따라 농업법인은 급속도로 양적 확대를 거듭해 왔으나 부실 법인의 증가, 목적 외 사업 영위, 보조금 부당 수령 등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2019년 기준 전남지역에는 3,813개의 농어법인이 있고, 그중에 나주지역에는 900여 농업법인이 있다.

시민 A씨는 “보리 생산 농민 모두의 공유 재산이 되어야 할 보조금이 특정 사업자의 사유 재산 증식에 이용된다면 안 될 일이다. 이번 보조금 지원이 합법을 가장한 불법은 아닌지 세심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