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에 시달린 선원들은 이제야 거룻배가 떨어져 나가고 없는 것을 알았다. 눈앞이 캄캄해지며 갑자기 배 안이 뒤숭숭해지기 시작했다.

당장 저녁밥을 해먹을 일이 걱정이었다. 식수가 없어졌으니 밥을 지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우선 초란도 서쪽 언덕바지에 힘겹게 닻을 내리고 정박할 수 있었다.
 
"누가 우리를 물고기 밥이 되게 하려하는가?"
"꼼짝없이 물귀신이 되는 수밖에 없구먼."
 
호송군(護送軍) 중에서 가장 키가 크고 힘이 넘치는 김율(金栗)과 김진음산(金眞音山)이 투덜댔다. 사실인즉 이 배에는 호송군이 탈 필요도 없었다. 다만 제주목사의 특별한 배려에 의해 탔던 것이다.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왜구와 해적들 때문에 경차관을 예우하기 위한 조치였다.
 
제주출신의 격군들은 모든 바다 일에 능수 능란해서 호송군의 일도 잘할 수 있었다. 군인들은 무장한 상태로 코를 씩씩 불며 불만이 가득했다. 궂은 날씨에 출항한 원망을 되뇌며 고회(高廻)와 김송(金松)의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이다.
 
나머지 군인들도 한곳에 모여 쑥덕공론이다. 고보종(姑保終), 양달해(梁達海), 박종회(朴從回), 김득시(金得時), 임산해(任山海)까지 모든 군인 9명이 소리를 높여 말했다.
 
"이제 모두 죽게 되었으니 누구의 잘못인가?"
 
군인들의 반항하는 품새가 완강하다. 선장이 뭐라 해도 듣는 둥 마는 둥이다. 이러다는 금세라도 부어터질 기세다. 배고픔과 추위에 떠는 사이에 벌써 삼경에 이르렀다. 밤이 깊어 1시경이 되었다.

이제 수정호의 상태에 따라 최부를 포함한 43명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 배의 제일 위층에 자리한 최부는 답답하기만 하다. 사무장 허상리가 상기된 얼굴로 최부에게 말했다.
 
"경차관님, 시간이 지날수록 배가 떠밀리고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선장과 사무장, 총무 안의 그리고 정보와 최부가 함께 모였지만 뾰쪽한 대책이 나올 리 만무하다. 전라도 나주에서부터 최부를 따라 함께 행동하고 있던 자들은 뱃길을 잘 모른다. 그러나 제주사람들은 배를 부리는데 능숙하고 바다의 상황에 따라 대처능력이 자유로운 자들이 아니던가.

  "초란도는 동풍은 막아낼 수 있지만 삼면이 터진 섬이라서 배가 정박하기에는 적당하지 않습니다. 현재 상황은 바람이 세지며 북풍이 시작할 염려가 다분합니다. 어둡지만 다른 곳으로 배를 이동해야 갰습니다."

  불안하고 공연히 성가신 마음에 누구하나 잠든 사람은 없었지만 이들을 독려해서 배를 똑바로 부릴 일이 참으로 난감했다.

  "우리가 탄 배가 바다 가운데로 떠밀리는 듯해서 나가보니 이미 배는 조금씩 떠밀리며 바다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배의 닻이 끊어진 것이 아닌가 걱정입니다."

배는 바다 한가운데로 떠밀려 가고

  아닌 게 아니라 삼경의 배가 혼자 떠밀려 처음의 자리보다 한참 아래에 있는 것이었다. 서로 말하는 다섯 사람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정박해둔 자리에 배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조금씩 밀리면서 바다 가운데로 빨려들듯 내려가고 있는 중이었다.

  "어떻게 할까?"

  최부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하다. 지역 바다의 사정을 훤히 알고 있는 선장과 사무장은 떠밀리는 닻을 올려서 해안가로 가자고 했다. 그래야만 배를 메어 둘 수 있다고 했다. 그들의 주장은 일단 추자도로 들어가자는 주장이었다. 별다른 방책이 없는 선원들은 그의 말을 따라 배를 돌려보기로 했다.

  "닻을 올려보아라."

  천천히 닻줄을 당겼다. 아니나 다를까 줄은 이미 끊어지고 빈 줄은 저 혼자 물 속에서 하늘거렸다. 아-아 이를 어쩌란 말인가?

  개인별로 칼과 활을 갖고 있던 군인들은 자신들이 죽을 줄도 모른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웅성거리면서 투덜댔다. 왜구의 침략과 해적선을 막아내기 위해서 제주목사의 특별한 배려로 배에 오른 호송군 9명은 최신식 비밀병기를 갖고 있었다. 그런 그들이 말을 듣지 않으니 답답하고 속이 탔다. 폭발직전의 호송군들을 다독거려야만 했다.

  그들이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활이 그것인데 화살이 가늘고 멀리 날아가며 명중률이 높은 신무기였다. 활줄에 덧 살을 대고 당기면 덧 살은 손에 잡힌 채로 있게 되고 그 속의 애기살만 날아간다.
 
 애기살[편전 片箭]은 화살의 이름이기도 하고 동시에 통아를 이용하여 사격하는 특수한 사격방식을 의미한다. 애기살은 조선에만 있었다. 그래서 중국의 창이나 일본의 총과 함께 천하무적이었다.
 
 가볍고 날렵한 애기살은 가속을 받아 시위를 떠난다. 보통의 화살보다 조금 더 작은 애기살은 멀리 날수 있으며 강했다.

  애기살은 펄펄 끓는 더운 물 속에 담가두었던 시누 대를 꺼내서 똑바르게 펴는 일을 해야 멀리 날아간다. 화살의 생명은 곧은 직선이라야 한다. 살이 곧아야 명중률이 높은 것은 당연하다. 그래야만 일정한 방향으로 날릴 수 있다.
 
 어느 때고 화살을 만들어야 했기에 지역마다 시누 대를 보호하며 가꾸어야 한다. 최첨단 무기제조 원자재가 대나무였던 것이다. 곧고 발라야 직선을 그리며 목표점을 관통할 수 있다. 오늘날의 개인화기에서 덧 살은 탄피와 화약이며 애기살은 실탄인 샘이다.

  보통 화살이 200∼300m쯤 날라 가는데 비해 덧 살을 대면 400∼600m나 나아갔다. 사(射)거리가 거의 배는 더 갔기 때문에 방어할 시간을 주지 않고 적을 물리칠 수 있다.

그리고 화살의 길이가 작고 짧았다. 행여나 적에게 회수된 화살이라 하더라도 재사용할 수 없는 이점이 있어서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개인 무기로 공포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이런 활을 갖고 있는 군인은 조선군 뿐이었다. 무기를 갖고 있는 군인들은 다루기가 힘들었지만 서로 달래고 협조하며 난파선의 위기를 이겨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