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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과 나주양민학살 - 문평면 극동리 동막골동막골에 들어온 경찰 마을 불 질러
신광재 기자  |  sjs2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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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호] 승인 2007.03.0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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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1년 윤 5월 20일 마을에 들어온 경찰특공대의 잔인한 집단학살로 인해 아버지, 어머니, 누나, 형, 동생을 잃어 일순간에 전쟁고아가 되어버린 11살짜리 꼬마가 20년 후 문평면 극동리 동막골을 찾았다.
 
1971년 30살이 갓 넘은 양해봉은 20년 전 아버지와 어머니 시신을 임시로 흙으로 덮어놓아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기 위해 기억하기도 싫은 학살현장에 발걸음을 한 것이다. 20년 전 기억을 더듬어 작은아버지와 함께 아버지, 어머니를 흙으로 덮어 두었던 장소를 찾아 부모님을 선산으로 모실 수 있었지만 누나와 형, 동생의 시신은 어디에도 찾을 수가 없어 양씨의 가슴 속에 묻어야 했다. 1951년 윤 5월 20일 문평면 극동리 동막골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양씨 가족은 어느 때와 다름없이 그날 오전 7-8시 사이에 오순도순 밥상을 앞에 두고 아침을 먹고 있는데, 느닷없이 몇발의 총알이 집으로 날아왔다.

‘쓍-쓍’
 
방안으로 날아 온 총알은 머리 위를 지나 벽에 박히자 겁에 질린 아이들이 우왕좌왕하자 양씨의 아버지는 아이들을 방바닥에 엎드리게 한 뒤 총알이 날아오는 방향에 솜이불을 갖다 되었다. 동막골 앞산에서 날아 온 총알이 양씨의 집으로 5-6발 날아온 것이다.
 
다행이 가족은 무사해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는데 10분정도 지나자 마을에 경찰이 들이 닥쳤다. 나주방향에서 100여 명 규모의 경찰특공대가 무장을 하고 마을로 들어와 주민들을 집에서 끌어냈다.
 
동막, 학치, 월동마을을 동막골이라 부르는데, 45-50가구 약 160여 명이 살았던 큰 마을이었다. 동쪽이 산으로 막혀 ‘동막’이라는 명칭이 붙여질 정도로 첩첩산중인 이곳은 금성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어 다도면 다음으로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활동이 활발했던 곳이다.
 
다도와 덕룡산 아래 철천리 마을처럼 낮에는 경찰, 밤에는 빨치산의 괴롭힘 때문에 전쟁이 소강상태에 접어든 1951년 6월까지도 다시면으로 피난갔던 주민들이 마을로 들어오기를 꺼릴 정도였다.
 
약 160명의 주민 가운데 절반이상은 양쪽에 피해를 입고도 벌어먹을 땅을 남겨놓고 고향을 떠날 수 없어 마을을 지키고 있었다. 해붕이 아버지 또한 많은 논과 밭을 가지고 있어 동막골을 떠날 수 없었다. 
       
“빨치산들이 밤이면 내려와서 안방을 차지하고 앉아 있는데, 대장이라는 사람은 잠시 눈을 붙일 때도 앉아서 자는 거야. 총을 무릎과 가슴에 대고. 그리고 절대 신발을 벗지 않고 방으로 들어 와” (양해봉, )

 동네 앞으로 주민들을 불러낸 경찰은 마을에 불을 지르기 시작했다. 집은 물론 재래식 변소와 짚단, 나뭇단, 거름무더기 등 닥치는 대로 불을 질러 약 50가구 전체가 불길에 휩싸였다.
 
삶의 터전이 눈앞에서 불에 타고 있었지만 마을 주민들은 길가 바위 위에 설치해 놓은 기관총이 무서워 발만 동동 굴러야 했다. 50-60여 명의 주민이 동네 앞 밭으로(지금은 경지정리가 되어 논으로 바뀌었다.) 모아 놓은 뒤 어느 지역과 마찬가지로 군경가족을 선별하였다. 1-2가구가 앞으로 나오고, 양씨의 아버지가 경찰에게 불려 나갔다.

“둘째 외삼촌이 현역 특무상사로 군에 있는데, 아버지가 왜 그 이야기를 안 했는지 지금도 모르겠어?.
 아버지가 경찰 대장에게 다가가 ‘살려 달라’고 말한 것이 어렴풋이 기억이 나.”(양해봉, )

밭에 주민 40-50여 명 앉혀 놓고 기관총 난사

 군경가족이 나오자 분위기가 일순간에 바뀌고 경찰이 주민들을 향해 큰소리로 소리쳤다.
“앉아!, 앉아!”
 겁에 질린 주민들이 앉으면서 경찰들에게 살려달라고 하소연을 하였다.  
“살려주소. 우리는 죄가 없어요.”

주민들이 앉아 있는 밭은 낮은 저지대로 길가 바위에 설치되어 있는 기관총이 주민들을 향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잠시 기관총에서 불이 품어져 나와 삽시간에 밭에 모여 있던 주민 40-50여 명이 맥없이 꼬꾸라졌다.
 
30분정도 지났을까 11살짜리 꼬마 해붕이가 깨어나 사방을 둘러보았다. 동네 할머니가 해붕이 위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기관총이 난사되었을 때 언덕 밑으로 떨어져 기절했던 해붕이 위에 다행히 동네 할머니가 총알을 맞고 쓰러져 기적적으로 살 수 있었던 것이다. 
 
총에 맞아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는 시신들이 밭에 널려져 있었다. 생지옥과 다름없었다. 바로 옆에 엄마와 누가가 총에 맞아 죽어 있는 모습을 본 해붕이는 어머니의 시신을 부등켜 안으며 부르며 울기 시작하였다.

“엄마, 엄마, 누나야...”

한참을 울고 있는데 시체 속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해붕아, 해붕아...’
 
깜짝 놀라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쪽으로 가보았더니 형(당시 15-6세)이 총에 맞아 쓰러져 있었다. 등에 총을 맞아 배 밖으로 창자가 나와 피범벅이가 되었지만 정신은 말짱했다.

“집에 가서 칼이나 낮을 가져와. 그리고 물이 먹고 싶어. 물 좀 떠와”   
 
자신의 고무신을 해붕이게 건넸다. 깨끗이 씻어 물을 떠오도라는 말과 함께. 해봉이 형 00는 배를 칼로 찢어 밖으로 나온 창자를 집어넣으면 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해봉이에게 칼 또는 낮을 가져오라 한 것이다.
 
형이 살아 있어 안심이 된 해봉이는 눈물을 닦고 밭 옆으로 흐르는 개울가로 가 고무신을 깨끗이 씻어 형에게 물을 갖다 주고는 곧장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갔더니 온 마을이 불에 타 낮과 칼을 찾을 길이 없었다. 자를 것을 찾지 못하고 다시 밭으로 간 해붕이에게 형이 말했다.

“나를 저기 언덕으로 데려다 줘”
 
형을 길 밑 언덕으로 데려가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나 살려는 의욕이 강했던 형은 창자가 밖으로 나와 있는 가운데에서도 기기 시작하였다. 언덕으로 기는 형의 어깨를 끌어 간신히 형을 언덕에 기대 놓았다. 그리고 여러 차례 고무신에 물을 떠 형의 목을 축이게 하였다.
 
언덕 밑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길 위로 경찰이 지나갔다. 언덕 밑에서 사람소리가 들리자 경찰은 언덕을 향해 총을 쏘았다. 수십 발의 총알이 날아왔으나 다행히 총알은 다른 방향으로 날아갔다. 죽은 척하고 조용히 있자 경찰은 유전마을로 내려갔다. 밖으로 나온 창자를 손으로 잡으면서 형은 다시 동생에게 심부름을 시켰다.

“우리 논 어디 있는지 알지 해봉아!. 논두렁에 낮이 있으니까 빨리 가서 찾아 와”

형의 말을 듣고 곧바로 논으로 달려갔지만 끝내 낮을 찾지 못하고 다시 돌아왔다. 동생이 빈손으로 돌아오자 문득 동네 사람들이 밭에 모여 있을 때 아버지가 경찰 옆에 있었던 게 생각이 났다. 그때가 오후 4-5시 무렵으로 오전 10시-11시 사이에 총을 맞은 형은 길가 언덕에 기댄 채 6-7시간 동안 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해붕아!. 아버지가 아침에 경찰에게 끌려가 저 밑으로 내려갔으니까 빨리 가서 아버지 찾아서 데려와. 꼭 아버지 데려와야 해..”

형의 말을 듣고 동생은 쏜살같이 아랫마을로 달려갔으나, 개미새끼 한 마리도 찾아볼 수 없었다. 마을에서 조금 내려가면 방앗간과 큰 도랑이 있었는데, 도랑에 사람 한명이 죽어 있었다.
 
누구인가 확인해 보았더니 아버지였다. 죽은 아버지를 보는 순간 아버지를 찾으면 형을 살릴 수 있다는 희망이 산산조각 나버렸다. 해붕이는 아버지를 붙잡고 울었다. 
 
한참을 울고 있는데, 피난갔던 동네 사람들이 마을에 사람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오고 있었다. 옆집 아주머니가 울고 있는 해붕이 등을 도닥거리며 함께 울어주었다.

“아줌마 동네에 가지 말아요. 사람들이 다 죽고 집도 다 타버렸어요.”

동네사람들이 마을로 올라가려다 해붕이의 말을 듣고 내일 일찍 시신을 거두기로 하고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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