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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하다》 자크 데리다(지은이)
이철웅 편집국장  |  njt20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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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8호] 승인 2019.04.26  17:4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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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란 무엇이며, 누가 누구를 용서할 수 있고,
 또 어떤 경우에 누구를 왜 용서할 수 없을까?”

《용서하다》는 자크 데리다의 1997~1999년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 강연 축약본으로 생전에 데리다가 ‘용서’라는 주제로 진행했던 세미나를 엮어낸 책이다. 데리다는 이 세미나에서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것이 용서’라는 아포리아에서 출발해 ‘용서’라는 행위가 내포한 다른 여러 아포리아를 하나하나 짚어나간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나치가 저지른 반인류 범죄, 제국주의 일본이 식민지를 상대로 벌인 반인류 범죄에 관해 용서를 빌거나 용서를 빌지 않는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왜 그것을 용서하거나 용서할 수 없는지, 이 주제에 관한 칸트, 장켈레비치, 코이레, 아렌트 등 철학자의 주장을 소개하며 담론을 전개한다.
 
   
 
데리다는 책에서 프랑스 철학자 장 켈레비치의 저서 `시효 없음`을 거론하며 용서의 화두를 꺼낸다. 두 가지 선결 조건이 용서의 전제로 기술돼 있다. 첫째, 용서가 요청돼야 용서가 가능하다. 환언하면, 용서받아야 할 사람이 먼저 용서를 구해야 한다. 둘째, 근본적 악의 경계를 넘어선 범죄는 용서가 불가하다. 용서는 인간의 영역이다. 나치의 반인류 범죄도, 일본의 제국주의 범죄도 인간이란 척도로 가늠되는 사건인가. 데리다는 지속적으로 묻고 또 묻는다. 그들이 우리에게 용서를 빈 적이 있던가. 요청한 적이 있던가.

데리다는 ‘용서(pardon)'라는 단어의 음절(par-don)에 포함된 의미를 성찰하면서 용서행위에 포함된 논리적 난점들에 주목한다. 예를 들어 ’용서를 빌지 않는 자를 용서해야 하느냐‘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에서부터 ’피해자 각자가 아니라 집단을 상대로 용서를 구할 수 있느냐, 그럴 권리가 있느냐, 그것이 과연 용서의 의미에 부합하느냐‘는 문제, 피해 당사자가 아니라 피해자를 대신해서 제삼자나 국가가 가해자를 용서할 권리가 있느냐’는 문제, 유대인 학살처럼 ‘저지른 죄가 너무 커서 ‘인간의 한계’를 넘었을 때에도 용서가 가능하냐‘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철학적·윤리적으로 대답하기 까다로운 주제를 두고 심각한 성찰을 전개한다.

“용서는 죽음의 수용소에서 죽었다.” 블라디미르 장켈레비치는 홀로코스트 같은 ‘반인류 범죄’는 용서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인류의 인간성을 겨냥”한 범죄는 ‘속죄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또 ‘회복 불가능’한 상태에 놓인 희생자들을 위해서 가해자들을 ‘용서해서는 안 된다’고도 역설한다. 일본군 ‘위안부’ 가해자, 민간인 학살 가해자가 용서를 얻음으로써 ‘평안’과 ‘구원’을 얻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더구나 이런 범죄의 피해당사자와 가해자 다수는 이미 세상을 떠났는데, 그렇다면 대체 누가 누구를 어떻게 용서할 수 있는가?

데리다는 이 책에서 장켈레비치의 주장을 논평하며, ‘용서할 수 없는 일을 용서해야 용서’라는 아포리아로부터 사유를 전개한다. “누구나 쉽게 용서할 수 있는 것을 용서하는 것은 용서가 아니”기에, “용서-불가능한 일을 용서하라는 요구를 받았을 때”에야 용서의 ‘가능성’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피해의 ‘회복 불가능성’은,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한 용서의시간성을 환기한다고 본다. 데리다는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파울 첼란이 나치에 참여한 마르틴 하이데거를 만나고 쓴 시 ‘토트나우베르크’ 속에서 “맞이해야 할 것”으로서의 용서와 희망을 읽는다.

데리다가 생각하기에 장켈레비치도 1980~81년 용서를 비는 한 독일 청년과 주고받은 편지를 통해 용서의 실현가능성을 암시했다. 용서는 단번에 이뤄지지 않으며, 다만 화해를 목적으로 꾸준히 시도되어 역사를 지속시킬 수 있다.

데리다에 의하면 진정한 용서는 무조건적이다. 그에 따르면 용서는 변명할 수도 없고 용서할 수도 없는 자를 용서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용서는 용서를 위한 어떤 이유를 찾아서도 안 된다. 데리다는 이 책에서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것이 용서’라는 아포리아에서 출발해 ‘용서’라는 행위가 내포한 다른 여러 아포리아를 하나하나 짚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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