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성균 취재/보도부장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용역’이란 ‘물질적 재화의 형태를 취하지 않고 생산과 소비에 필요한 노무를 제공하는 일’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이렇게 생산과 소비에 필요한 ‘용역’이 산업현장을 비롯한 사회 전반에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이제는 행정기관에서까지도 광범위하게 시행되고 있다.

우리가 일찍이 알고 있는 ‘용역’은 재개발 건축 지구에서 철거민을 내 몰기 위해 동원된 일명 ‘깡패 용역’을 떠올리지만, 갈수록 용역은 진화하여 제조업 등에서 위험한 일을 맡아 처리하는 외주 용역, 건물 관리 용역, 심부름 용역, 청소 용역 등 사회 전반에 용역 없는 분야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확산되었다. 이러한 용역 확산이 행정기관도 예외가 아니어서 오늘날 행정 행위의 많은 부분이 용역에 의해 수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른바 ‘행정용역’이다.

나주시 등 행정기관에는 직업 공무원으로서의 전문성과 경험을 갖춘 인력이 포진해 있지만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과도하게 용역에 의존한 행정을 펼치고 있다는 지적이 대두되고 있다. 물론 사업의 성격에 따라 전문성을 갖춘 공무원도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가 있고, 외부 전문가에게 용역을 맡기는 것이 더 효율적인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공직자가 정책 결정에 따른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용역을 시행하거나 선심성 용역을 통해 보은성 용역을 남발하는 등 불요불급한 용역이 문제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소관부서별로 유사한 성격의 용역을 중복 남발하여 예산을 낭비하거나 많은 예산을 들여 수행한 용역 결과물을 공유하지 않고 사장시키고 있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용역의 문제점은 또 있다. 공정한 시장가격에 의한 용역 대가 산정이 어렵고, 용역 결과의 질에 대해 객관적인 평가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 결과에 대해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용역 결과가 시민 전체에게 영향을 미치게 됨에도 그 결과에 대해 누구에게도 책임을 추궁할 수 없기 때문에 연구 결과의 질도 담보할 수 없는 실정이다.  특히 학술연구용역 등은 입찰 참가 업체가 적어 공정한 시장가격을 결정하기 어려운 구조로, 특정인에 대한 특혜시비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분야이다.

나주시의 경우에 2016년 210건, 2017년 309건, 2018년 7월말 기준 436건의 용역을 발주하였다. 이를 월 평균으로 보면 2016년 17.5건, 2017년 26건, 2018년 62건 등으로 해가 갈수록 용역 건수가 급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용역 금액도 2016년 132억여원, 2017년 166여억원, 2018년 7월 기준 138억여 억원이며, 이를 월 평균으로 보면 2016년 11억원, 2017년 14억, 2018년 20억원으로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은 용역비는 나주시 총 예산의 약 5%를 차지하는 금액으로서 많은 예산이 용역에 사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나주시는 이와 같은 용역이 효율적으로 수행되고 있는지를 심의하기위해 ‘나주시 정책연구 관리 조례’를 제정하여 운영하고 있지만 그 실효성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이 조례에 따르면 정책연구심의위원회를 구성하여 용역의 타당성을 검토하고 결과를 평가하며, 결과의 공개 및 활용상황의 점검 등을 시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이 위원회는 부시장을 위원장으로 하고 각 국장 및 시의원 2명, 지방행정경험이 풍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사람 등 총 15명 이하의 구성원 중 외부인을 3분의 1 이상으로 구성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나주시는 이와 같은 심의제도가 무색하게 시장 불법 노점상 단속 용역, 문화예술진흥 종합계획, 반남 고분군 문화관광활성화 프로그램 연구 용역, 시장 공약이행 주민 배심원제 운영 연구 용역 등 공무원의 전문성을 활용하여 수행할 수 있는 부분까지 용역을 주고 있다.

또한 여성친화도시 조성 계획 연구 용역, 나주시 민선6기 2주년 시정운영 평가 용역, 혁신도시 노상주차장 확보방안 연구 용역, 평일 및 휴일 주정차 단속 용역, 꽃길조성용 가로등주 걸이화분 임차 용역, 천년의 소망 조사 및 타고 운영계획 등 용역도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사업에 대해 용역 말고는 대안은 없는 것인지, 해당부서에서 직접 고민하고 연구하여 집행 할 수 없는 것인지 묻고 싶다.

물론 모든 용역이 불필요하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정책방향을 미리 정해놓고 구색을 맞추거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용역을 주는 것도 문제다. 모 시장은 간부회의에서 “주요 과제를 해결하도록 지시하면 공직자들의 첫 반응은 ‘용역을 맡기겠습니다’였다며, 용역 결과를 기다리느라고 1~2년은 금방 간다. 이러면 임기 중에 시민의 삶을 바꾸는 성과를 창출할 수 없다”고 지적하였다고 한다. 적절한 지적이다.

이와 함께 용역결과를 활용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규정에 따라 용역결과를 홈페이지 등에 철저히 공개하고 디지털 아카이브를 구축하여 널리 활용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나주시 공직자들은 이와 같은 지적을 겸허히 수용하고, 용역에 과도하게 의지하는 관행을 혁신 차원에서 과감하게 버려야 할 것이다. 또한 나주시 1000여 공직자들이 스스로 머리를 싸매고 해법을 찾기 위해 열정을 쏟아야 할 것이다. 그것만이 시민의 혈세를 줄이고 공직자 자신의 전문성을 높이는 한편, 공직 복무의 성과를 창출하여 시민의 공익을 위해 헌신하는 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