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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과 나주양민학살 - 양민학살 증언Ⅱ
신광재 기자  |  sjs2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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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9호] 승인 2007.03.0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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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진(구국연맹회원, 세지면, 1999년 1월 인터뷰)

영산포 엄동 골목에서 피난을 하고 있었다. 그때 영산포 구국연맹 지소에서 나와 “국군이 세지면으로 진주하러 가니까 피난 나온 사람들은 전부 같이 들어가자”는 권장이 있어서 피난하는 세지 사람들 상당수가 군인 뒤를 따라갔다.
 
영산포에서 군인들을 따라왔던 사람들은 한쪽으로 모아놓고 부락 안에 있는 양민들을 동창교 아래로 집결시켰다. 약 200명에 가까운 부락민들을 다리 밑에 모였고, 그 안에서 군인, 경찰가족들은 나오라고 해서 우리와 같은 쪽에 있게 했다.
 
군인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나이가 젊고 활동성 있는 사람 약 70~80명 정도를 한쪽으로 모아놓고 취재할 것이 있으니 밭 위로 올라가라고 하였다.

그 뒤 줄줄이 세워놓고는 아무 말도 없이 군인 1개 중대가 빙 둘러싸서 집중사격으로 양민들을 쏴서 죽였다.

그것을 현장에서 직접보고 사지가 떨려서 할 수 없이 여기 있으면 안 되겠다 싶어 영산포로 다시 돌아왔다. 그 당시 나이는 20살이었다.
 
동네에서 나이가 많으신 분이 자기 죽으면 묏자리라도 하나 잡아서 묘를 써 달라고 당부해 이날 산에 묏자리를 잡으러 간 노인 4분도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때 산기슭이나 산에 있는 사람은 무조건 빨갱이 연락병이라고 하면서 전부 죽였다. 영암, 금정 쪽에서 피난 나온 사람들도 많이 죽었다.

이하철씨 증언(구국연맹원, 세지면 대산리 거주, 1922년생)

 구국총력연맹 재무부 소속이었는데, 그날 사무실에 없었다. 국사봉에 있는 빨치산을 토벌하러 간다 하니까 어쩔 수 없이 따라나선 것이다.
 
당시 구국연맹이란 경찰들을 도와준 단체로 밥을 구해 온다거나, 잔심부름을 하던지. 그래서 가기 싫어도 따라나서야 했거든.
 
군인 행렬 제일 뒤에 따라오다 세지면 오봉리 거의 와서 금성 나씨 선산 밑에 귀학봉에서 행인 1명을 사살하는 것을 목격했다. 죽은 사람은 동네에서 밥을 얻어먹은 거지인데 정신이 이상한 바보나 다름없었다.
 
군인이 몇 가지를 물어보는데 바보가 알아야 말을 하지. 꼭 산에서 방금 내려온 거처럼 옷을 입고 말도 어수룩하게 하고, 그래서 쏴버린 거야. 같이 갔던 성명진 구련 부회장과 유지들도 그 사람이 바보인 줄 알았는데, 국군이 무서워서 말을 못했어. 나도 그랬고. 
 
동창대교에 들어오는 도중에 구련 나기수위원장이 점심준비를 하러 가라고 해서 나는 열곡부락으로, 다른 회원들은 멧계, 벽류정 등으로 흩어져서 밥을 구하러 갔다.
 
오는 도중에 열곡 산 위에서 총소리를 들리더니만 와서 보니 사람들은 사살되어 있었고 군인들인 신북여관 앞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밥 먹은 시간이 4시나 되었을까? 점심을 먹고 컴컴해질 때 학림으로 넘어갔다. 그런데 그날 사건 이후에 경찰이 반란군을 하나도 잡지 못했어. 그러니까 전과를 올리려고 죄 없는 주민만 죽이는 것이제.
 
그 당시에는 강성언 형사의 말 한마디에 사람이 살고 죽었어. 그 경찰이 옥편이었거든. 세지지서에서 근무해 주민들의 성향을 너무 잘 알아. 근디 군인 뒤에 따라다닐 뿐 맥은 못 쳤어. 군인이 하도 살벌하게 해버링께. 그때 26살 정도였을까?

조기영(마을주민, 31년생, 세지면 오봉리 거주, 2006년 11월)

 오후 3시나 되었을까? 친구들하고 지금 우체국 집 자리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세지지서에서 근무했던 손영숙 순경이 불쑥 들어와 군인이 진주하러 왔으니까 동창교 밑으로 나오라는 거야.
 
동창교로 가니까 산에는 군인이 깔려있었고 하천가에 아기 업은 아주머니를 군인이 뭐라고 하더니만 총으로 쏴버리더라고. 아기가 등에서 우니까 살면 복수한다고 아기까지 총으로 쏴서 죽여 버리더라고.
 
한쪽에는 대산리 부락에서 잡아온 백씨를 묶어 놓았어. 그러더니 모인 주민들에게 “군인과 경찰가족은 나오라”고 하자 대략 15-6명이 나왔어. 나도 사돈이 경찰이어서 살았어.
 
옆에서 지켜보던 경찰들이 마을 주민은 공산당이 아니라고 말을 해야 하는데 말을 못하고 떨고만 있는 거야.
 
군경가족과 경찰, 그리고 유지들은 신북여관 부엌으로 들어가라고 하더라고. 신북여관 부엌이 한 100명은 거뜬히 들어갈 정도로 컸어.
 
정제 문틈으로 보니까 군인들이 주민들을 밭으로 데려가 열을 세우더라고. 곧바로 M1총으로 쏘는데 난리가 아니여. ‘대한민국 만세’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어도 소용없어. 다리 위에다 기관총을 거치해 놓고 갈겨버려.
 
그 속에서 어깨에 총알이 뚫고 지나간 김만오는 물이 먹고 싶어 구정물을 마시고 기어서 집에까지 갔어.
 
얼마 전에 그 양반한테 전화가 왔는데, 서울에서 살고 있다고 그래. 살아남은 사람들은 무서워서 다음날 아침 피난을 갔고, 나도 무서워서 피난을 간 뒤 설이 지나고 한참 후에 돌아왔어.  
 
밥을 먹고 군인들이 봉황 학림으로 갔는데 구련에서 잡아온 소를 그곳에 가서 잡아먹고, 산봉우리에 박격포를 장치했어.
 
전쟁 때 세지 사람들이 고생을 많이 했어. 낮에는 신북과 봉황지서에서 경찰이 나와 운동장에 사람들을 모아 놓고 두드려 패고, 저녁에는 빨치산이 내려 와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식량과 김치까지도 가져가는 바람에 먹을 것이 부족했어.
 
그런 죄 없는 사람을 ‘인민군’이라고 죽인 사람들이 군인이여. 인민군이 진주했을 때도 이러지는 않았어.

인민군이 동창에 진주했을 때 동네 사람들이 벌벌 떨었는데 막상 들어오니까 별일 없었어. 동창교 다리 밑에서 목욕하고 하루 자고 다음날 갔는데 사람 죽인 일은 없었거든.

류복남(당시 27세, 영산포에서 따라옴)

 그날이 영산포 장날이었어. 아침 일찍 아기를 업고 장에 갔다가 영산포 언니 집에서 아침밥을 먹고 국군이 진주한다니까 함께 따라왔다.
 
대산리 주막에서 광주로 피난을 가던 백행렬이를 끄집어 내 국군이 삽으로 머리를 때리더라고. 처음에는 피가 안 났는데, 한대 더 때리니까 얼굴에서 피가 범벅이 돼.
 
장모하고 광주 작은집에 나무를 싣고 가던 백씨가 최 면장을 보고 인사하니까 “너 잡으러 왔다”면서 백씨를 낚아챘어. 그래서 백씨가 군인들에게 맞기 시작한 거지.
 
그러던 중에 학림 고개로 남자 하나가 흰 두루마기를 입고 봉황 잔등을 넘어가. 처음에는 군인이 내버려 두더니만 저만큼 가니까 ”여보, 이리와“하면서 불러놓고 말목에 앉히더라고.  
흰 두루마기를 입고 제사를 지내고 왔던가, 아니면 제사 지내러 간다고 그래. 꼬랑에 쪼그려 앉히더니만 그 자리에서 총으로 쏴버리더라고. ‘퍽’, ‘퍽’ 소리밖에 안 들려 사람 가까이에 놓고 총을 쏴서 그런가봐.
 
무서워서 떨고 있는데 군인들이 따라온 우리들에게 ”안 죽으려면 일렬로 서“하면서 정비를 하데요. 그러더니 산에 있던 사람들을 향해 총을 쏴대기 시작해.
 
군인 뒤에 따라가다 배암(뱀) 모퉁이에서 영감이 지게를 지고 나오는데 꼭 인민군처럼 털이 덥수룩해. 바우 양반이었는데, “오메 또 죽이겠구나!”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그 사람은 안 죽이더라고.
 
대산리에서 잡아온 백씨를 질질 끌고 마을 입구로 들어가더니 구르마방에서 일하는 일꾼을 잡아서 백씨와 같이 데려 가.

구르마방 일꾼이 무슨 죄가 있겠어. 두 명을 앉혀 놓고 눈이 부리부리하고 얼굴이 둥글하면서 키가 작은 소대장이라는 놈이 권총을 쏴버리까, 다리 밑으로 데굴데굴 굴러 떨어졌어.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데, 강 형사가 나를 동창교 아래로 내려 가라여. 우리 남편이 그때 아래에 있었거든. 내려갔으면 나도 죽었을 거야.

계속 그놈이 내려가라 해도 안 내려가고 얼른 정제로 들어가 버렸지. 정제에 있는데, 중학생이었던 정태진이가 부엌으로 푹 들어와서 조용히 해 달래. 그러더니만 방으로 들어가 떨고 있어.
 
문 새로 밖을 내다보니까 경찰이 “당신도 조심해”그래. 무서워서 남편이 죽은 밭에도 못 가고 집에도 못 들어갔어. 우두커니 집 앞에서 서 있으니까 옆집 아주머니가 “안죽고 살라면 따라가자”해서 영산포로 피난을 나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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