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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 엄기호(지은이)
이철웅 편집국장  |  njt20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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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6호] 승인 2018.12.28  18:4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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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고통과 함께함에 대한 성찰”

이 책은 한국 사회 내부의 깊은 속살을 드러내왔던 사회학자 엄기호가 켜켜이 쌓여 있는 고통의 지층을 한 겹씩 들여다보면서 발견하고 성찰해나간 우리시대 고통의 지질학을 보여주는 저서다.
 
책은 또한 고통을 겪는 이들의 언어에 대한 담론 분석을 통해 고통을 이루는 여러 지층을 그려 보인다. 재희 어머니를 비롯해 남편의 사업 실패와 불행한 결혼생활로 고통 받는 선아, 아내와 사별한 뒤 사이비 종교에 빠져버린 전직 대학교수인 덕룡 아버지, 학생들의 무기력에 좌절하다가 모든 문제의 원인을 ‘신자유주의’로 돌리게 된 교사 태석 등의 사례가 등장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고통을 한방에 설명해주는 ‘주문’에 매달리면서 곁을 파국으로 몰아갔다는 것이다. 실은 고통은 그 자체로 말할 수 없고, 그래서 근원적으로 외롭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에야 비로소 소통이 가능하다. 고통(苦痛)이 고통(孤痛)이 되는 것이다.

지은이는 이때 고통의 옆자리, ‘곁’에 주목한다. 불평과 짜증만 쏟아내는 어머니에 지쳐 자신 역시 고통에 빠져든 재희 같은 이들이 ‘곁’이다. 고통의 당사자는 언어를 잃고 고립된 처지이지만, 고통의 곁은 다르다. 고통의 곁은 말하고 듣는 힘이 있기에 여전히 공동의 집을 지을 수 있다. 고통의 곁에 또 다른 곁을 구축하는 게 필요한 이유다. 고통의 곁에서 함께함으로써 우리는 고통 속에서 고군분투한 이야기, 그 외로움의 이야기를 기꺼이 듣고 나눌 수 있다.

특히 고통 받는 사람, 또는 고통의 곁에 선 사람과 함께 걸으며 대화하는 것은 즉각 말해야 하고 즉각 반응해야 하는 ‘앉아서 얘기하기’보다 유연한 방법이다. 길에서 마주치는 풍경은 우리의 시선을 외부로 향하게 하는 매개가 됨으로써, ‘지금 당장’의 부담에서 해방시켜 ‘지금 여기’로 나아가게 해준다.

‘곁’은 저자 엄기호가 오래도록 붙잡아온 화두이다. “고통을 겪는 이를 지원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그 곁을 지키고 있는 사람을 지원하는 것이다”라는 그의 문제의식은 전적으로 타당하다. 고통의 당사자에게만 집중하다가 주위를 놓쳐버릴 때가 얼마나 많았던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의 가족들은 심한 우울감을 견뎌야 했고, 세월호 참사 현장에서 희생자를 수습했던 잠수사나 부검의들은 한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지금도 많은 활동가들이 가장 낮은 곳에서 노동자나 소수자들과 함께하고 있다. 저자는 “곁에 선 이가 ‘독박’을 쓰지 않도록 해야 하며 그의 삶이 파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독박 육아, 독박 간병, 독박 업무… 뭐가 됐든 ‘독박’은 사회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다.

엄기호가 ‘곁’을 강조하는 것은 고통에 대한 연대가 ‘곁’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이기도 하다. “고통은 동행을 모른다. 동행은 그 곁을 지키는 이의 곁에서 이뤄진다. 고통의 곁을 지키는 이에게 곁이 있을 때, 그 곁을 지키는 이는 이 기약 없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다. 관건은 고통의 곁, 그 곁에 곁을 구축하는 것이다.” 선문답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고통의 당사자들을 어떤 식으로든 지원하고 있는 가족이나 활동가들까지 사회적 지원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해된다.

지은이는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고통 받는 이가 언어를 잃고 절망의 사슬로 포위되는 과정을 세밀하게 보여준다. 가정에 충실하지 않고 밖으로 나돌던 남편에 상처받다 결국 남편의 사업 실패로 파산에 내몰린 선아, 남다른 투지와 에너지로 인생을 주파하다 노년에 몰려온 각종 질병으로 주저앉아버린 재희 어머니, 사랑하는 아내를 잃곤 우울의 세계에 함몰돼 있다가 신흥종교에 빠져든 노교수, 덕룡 아버지 등이다.

우리는 고통을 나눌 수 없다. 그러나 그 곁을 지키는 이의 곁에서 동행하는 것은 가능하다. 고통의 곁에 곁이 되는 것, 즉 ‘우회’를 통해서, “슬픔을 공유할 수 없다는 슬픔을 공유하는 것”을 통해서, 고통의 연대는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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