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노금 나주시의원

드디어 전라도 정명 천년을 맞이하여 새로운 천년을 향한 나주의 꿈이 선포되었다. 나주에 관한 최소한의 식견과 애정이 있는 이라면 나주인의 자존감 회복과 나주의 위상을 제고 한다는 측면에서 전라도 정명 천년의 선포에 실로 가슴 뭉클함을 느낄 것이다. 다소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이런 선포식을 지켜보며 시작이 반이라는 마음으로 위안을 삼는다.

전라도 정명 1000년을 맞이하는 마음으로 부패한 고려를 뒤엎고 백성이 하늘인 나라를 세웠던 정도전의 사상이 귀양지 나주에서 나주인 들과의 3년 교류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5년여쯤 된 것 같다.

그 후, 그의 나주에서의 족적을 찾아 역사책을 뒤지던 긴 세월 내내 늘 가슴이 뛰었다. 3년여에 걸친 동화책의 마지막 교정을 마친 지금 눈은 쓰라리고 뒷머리 땡기는 증세가 조금은 심각하지만 기쁨으로 정도전과 나주이야기를 정리해 본다.

고려 현종 1018년에 당시 전주와 나주를 합쳐 전라도라 이름한지 1천년이 되는 2018년의 기념적인 해를 맞이하여 지난 천년의 찬란했던 역사를 재조명하고 미래 천년의 나주의 비젼을 선포하면서 실로 다양한 행사와 의미 있는 작업들이 이루어지고 있어 기대가 크다.

20년 전 동화작가로서 <고려를 건국한 왕건과 장화왕후>를 펴낸 적이 있는 나로서는 지금도 천년의 역사 속에서 가장 위대한 여인을 찾으라 하면 단연코 오씨 성을 가진 장화왕후를 꼽고 싶다.

고려 현종 8년에 전라도라는 지명이 씌어 지기 시작했다고 한다면 그 태동은 태조 왕건과 나주여인 오씨 낭자 즉 장화왕후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에서부터 삼한을 통일하고 고려 개국의 혼돈했던 시대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나라의 안녕과 부흥 그리고 만대 번영을 위해 29명의 정비를 맞이했던 왕건이었다.

그러나 나주라는 지역의 토호 일뿐 아무런 정치적 세력하나 없었던 그녀였다. 지혜와 정치적인 식견의 출중하여 아들 혜종을 당당히 고려2대 왕으로 등극케 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교훈하는 바가 참으로 크다 하겠다. 목마른 장수에게 어여쁜 처자가 물 한 바가지에 버들잎을 띄워 건네는 장면은 젊은 왕건에게도 그랬겠지만 천년을 뛰어넘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어느 곳에서도 들을 수도 찾을 수도 없는 세계적인 러브스토리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거북선을 만드신 나대용 장군>이라는 동화 역시 18년 전의 작품인데 이순신에게만 충성되게 쏠려있는 거북선을 나주사람 나대용 장군을 과학자 나대용으로 재조명했다는데 큰 의미를 두고 있다. 이 책을 완성하기 위해 당시 해군 참모총장이셨던 이수용 제독을 계롱대까지 찾아가야 했다.

총장의 이순신 장군 연구의 권위자로 이순신의 업적에 관해서는 손톱만큼도 양보가 없다는 해군 충무공 수련원 연구실장이었던 최두환 실장을 소개받고 그에게 나대용에 관한 원고뭉치를 내밀었을 때 쾌히 감수를 맡아 주셨던 고마움을 잊을 길이 없다. 그리고 2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나주 출신은 아니지만 나는 나주 역사에서 도저히 그대로 뭍혀서는 안되는 정도전이라는 혁명가를 만났다.

백성이 안녕한 나라를 꿈꾸며 백성을 하늘로 삼은 정치가요 사상가이며 혁명가인 정도전은 이성계를 도와 위화도회군을 하게하고 결국 이성계와 함께 조선을 세운 분이다. 한사람의 왕을 위해 만민이 피와 땀을 바쳐야 했던 그 때에 “백성이 하늘이다”며 맑은 나라 조선이라는 국가의 아침을 열었던 그의 사상과 위대한 철학이 모두 나주 귀양살이 3년에서 싹텄다는 사실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부분이다.

이성계가 스승으로 모시며 조선이라는 국호부터 개경에서 한양 천도를 한 후 한양의 궁궐과 성벽 건축은 물론 경복궁이나 근정전 이라는 크고 작은 궁궐의 현판에 이르기까지 조선 500년이 있게 한 장본인이 바로 정도전이었다. 또한 요동정벌을 외치며 옛 국토를 회복하고 오직 모든 관리는 백성을 하늘처럼 떠받들어야 하며 왕은 백성을 편안하게 살게 하기 위해서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일해야 한다고 역설 했던 사람이었던 것이다. 왕족들은 음란에 빠져있고 세도가들이 백성들을 수탈하는 정도는 그 도를 넘어서 극도로 혼란한 고려 말의 조정이었다.

정도전은 나주 땅으로 귀양을 오면서 비로소 권문세족들의 횡포에 굶주리고 헐벗은 백성들을 보게 된 것이다. 정도전과 나주의 관계를 공부하는 동안 또 한분의 인물, 이 나라 해군의 최고봉이요 이성계와 최영과 함께 고려 말 최고의 명장이었던 정지 장군을 만나게 되었다.

나주의 자랑스러운 인물 정지장군은 역사에 한 줄로 기록은 되어 있지만 그가 위회도 회군을 도왔다는 사실을 이성계와 정도전을 통해 기록할 수 있었음이 가장 큰 수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정도전의 나주와 나주인 들을 노래한 시 “등나주동부유부로서”를 읽노라면 나주에 대한 정도전의 사랑과 존경의 마음이 어떠한지를 읽을 수 있다.

그는 이 땅 나주에서 싹틔운 백성 사랑을 <조선경국전>에 담아 민본정치를 실현하려 했다. 또 하나 나주 향교에 가면 이성계가 심었다는 은행나무가 있는데 그 역사적 유래를 그 어떤 사학자나 문화 해설가도 명쾌하게 정의해 주는 분을 만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감히 이성계의 나주방문을 정도전의 두 번째 귀양을 위문 온 시점으로 잡고 정도전과 함께 향교에 은행나무를 심었다고 썼다.

조선의 문을 열기 전 이성계는 누구보다도 먼저 정도전과 깊은 교감을 나누어야 했을 역사적, 시대적 상황에 맞추어 작가적 상상력을 동원하고 보니 최소한의 당위성을 갖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뜻하지 않게 꽤 많은 분량이 정도전과 이성계가 나주를 바라보는 시각들로 채워지게 되었다.

정도전과 나주인들 에 대한 연관관계를 살피면서 나주에 귀양 온 상처 입은 한 사람을 따뜻하게 품어 위대한 사상가로 또 혁명가로 우뚝 세운 그 옛 이 땅 나주사람들의 이야기는 실로 많은 나주인들이 가슴에 새기고 자긍심을 갖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이야기였다.

전라도 정명 천년을 맞이하여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기념 음악회를 열며 전망탑을 세우고 천년사를 발간하는 모든 일들에 부디 이처럼 위대했던 나주인의 혼과 얼을 고스란히 살려 내고 나주인의 자존감 회복과 위상을 살려 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