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꽃들이 천국일 때
봄이거나 말거나 눈 딱 감고 수행하더니
꽃들의 향연이 끝나고 테이블마다 빈 술병이 어지러운
어느 더운 날 새벽, 모시옷 떨쳐입고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여자는 100일 동안 밥을 먹듯 꽃을 피웠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관능적인 그 여자는 사랑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기둥처럼 길어나 그녀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하늘을 지탱하는 기둥 덕분에 어디에서도 꽃이 보였습니다
허기진 나그네마다 벌처럼 날아들어
천국 같은 여자의 꿀을 따먹었습니다

무궁화꽃이 떨어졌습니다
노을이 여자의 단심처럼 낯붉힐 때
여자는 꽃잎을 말아 제 스스로 염을 하고
꽃관에 못을 박았습니다
시간을 둘둘 말아 한 치의 틈도 없이 첩첩이 말린 여자
아무도 여자의 한낮을 읽을 수 없었습니다
댓돌에는 고무신이 하얗게 닦여있었습니다
방문 걸어 잠그고 꽃이 떨어졌습니다
누구의 조문도 받지 않고
태어날 때 그 모습으로 도로롱 말려
왔던 길로 되돌아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