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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삼재》 류시현(지은이)
이철웅 편집국장  |  njt20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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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2호] 승인 2016.12.17  21: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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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최남선, 홍명희…동경삼재의 다른 삶!”

한말에 조선인은 일본 유학생들에게 기대가 컸다. 실제로 이들은 일본에 유학하면서 습득한 근대지식을 자신의 삶에서 실천하고, 후세대 청년과 소년들에게 출판 및 저술 활동을 통해 그 내용을 전달하고자 했다. 이들 유학생 중에서도 가장 주목을 받는 세 명을 꼽으라면 단연 이광수, 최남선, 홍명희였다. 이들 세 명을 일러 ‘동경삼재(東京三才)’라고 불렀다.

홍명희는 1888년, 최남선은 1890년, 이광수는 1892년에 태어났으며 각각 두 살 터울이었다. 비슷한 연배의 이들은 한말 일제 초 ‘아시아의 런던’이라고 불렀던 동경에 유학하면서 서로 활발히 교류했다.

   
 
전근대적인 기준의 신분은 달랐으나 근대교육, 서울, 동경이라는 공통분모 속에 세 사람은 개인적인 친분이 깊었고, 민족을 대표하는 신지식인으로 성장했다. 책은 이광수, 최남선, 홍명희 의 삶을 정리한다. 동시에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상황이 끼친 영향을 분석한다. 이는 당대 민족운동에 참여했던 지식인 내부의 균열과 분화과정을 검토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동경에서 이들은 학교 및 도서관 등에서 근대학문의 세례를 받았으며, 귀국하여 각자 다양한 분야에서 조선의 문명화를 위해 활동했다. 그러나 정치적노선 차이 때문에 대립적인 입장을 위하기도 했다. 이들 동경삼재는 문학이라는 공통분모를 빼곤 식민지의 지배 정책변화와 해방과 분단의 시대 상황에서 판이하게 다른 삶을 살았다.

해방과 분단 전후 동경삼재의 삶의 궤적은 한말 일제강점기란 시대를 선도했던 우리 지식인의 자화상을 보여준다. 이들 세 사람의 삶과 선택을 조명하면서 한말에서 일제강점기, 해방과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한 시대를 읽는다. 책은 “이광수는 3.1운동에서 확인된 민족적 단결력을 우연한 변화로 보았다. 그리고 이를 ‘무지몽매한 야만인종’의 행동과 동일시했다”며 “한말 지식인이 보였던 민중에 관한 불신을 기반으로 한 전형적인 우민관의 논리였다”고 분석한다.

잘 알려져 있듯이 홍명희는 사회주의를 수용해 해방 후 월북까지 하게 되고, 이광수와 최남선은 일제와 타협하며 친일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1930년대 중반에 홍명희는 〈임꺽정전〉 집필에 몰두하고 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글을 쓰면서도 암중모색했으며, 최남선과 이광수는 민족독립의 전망이 사라지자 당대 현실을 외면하고 회고적 경향에 입각해 일제와 타협하는 정치적 입장을 보였다.

이광수는 ‘동우회 사건’으로 친일로 돌아섰다. 동우회는 안창호가 만든 흥사단의 국내 지부. 독립정신을 고취하고 민족운동을 전개했는데 1937년 이광수를 포함한 41명이 재판에 회부되고 일본 경찰에 검거됐다가 풀려났다. 이광수의 전향은 이때였다. 최남선은 1930년대 중후반부터 만주와 관련을 맺고 ‘만선일보’ 고문과 만주 건국대학의 교수가 됐다. 태평양전쟁이 시작된 이후에는 최남선과 이광수는 창씨개명, 학도병 동원 등 일제의 ‘내선일체’ 정책을 적극 지지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1945년 해방이 되자 홍명희는 좌우의 분열을 막아 하나가 된 민족국가를 수립하고자 했으나 이광수와 최남선은 일제 말 친일 행위로 실추된 문화적 권위를 해방 공간 안에서 복원하려고 했다. 1948년 반민특위가 조직되면서 두 사람은 체포됐다가 반민특위 활동이 주춤한 사이 무혐의 처분을 받는다.

홍명희는 1948년 북으로 갔다. 1948년 북한의 부수상에 올랐고 과학원원장을 지내고 최고인민회의상임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선임됐으며 1968년 81세로 사망했다. 이광수는 6.25전쟁 때 건강이 안 좋아 피난을 못 갔다가 납북된 뒤 지병이었던 폐결핵으로 59세에 사망했다고 한다. 최남선은 6.25전쟁 때 해군전사편찬위원회 일을 했고, 휴전 후 서울에서 서울시 시사편찬위원회 고문을 맡았으며, 육군대학에서 한국사 강의를 했다. 1957년 뇌일혈로 투병하다 66세의 나이로 죽었다. 홍명희, 최남선, 이광수 이들 동경삼재를 통해 식민지 시기 일본 유학생들의 고뇌와 분투를 생생하게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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