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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레예바의 눈물》 손석춘(지은이)
이철웅 편집국장  |  njt20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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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0호] 승인 2016.11.26  00: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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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헌영의 아내도, 맑스걸도 아닌 혁명가 주세죽!”

《코레예바의 눈물》은 항일 독립운동가 주세죽의 삶을 통해 남과 북의 천박한 현실과 사뭇 다른 현실을 상상케 해주는 책이다. 책은 화자가 카자흐스탄의 크질오르다를 여행하던 중에 고려인 집에서 주세죽의 내면이 담긴 기록을 발굴하면서 시작한다. 모스크바와 상해, 평양, 서울을 오가며 독립운동을 펼치던 주세죽은 소련의 스탈린 체제에서 '사회적 위험분자'로 체포되어 반사막지대인 크질오르다로 유배당한다. 그곳에서 현장 노동자로 일하며 자신이 걸어온 삶을 차근차근 기록해간다.

주세죽은 누구보다 투철한 독립투사이자 열정적인 여성운동가였다. 1919년 3.1운동으로 유관순이 수감될 때 그 또한 함흥에서 투옥됐을 뿐 아니라 모진 고문을 이겨내고 1926년에는 동지들과 6.10만세운동을 주동했다. 진보적 여성운동의 선구자였고, 독립운동가로 일제에 맞서 민중을 조직해나간 투사였다.

   
 
주세죽의 일생에서 가장 비국적인 대목은 민족해방운동 과정에서 겪은 숱한 어려움들이 아니다. 박헌영과 마찬가지로, 평생을 사회주의 운동에 투신했으나 바로 그 사회주의 국가의 이름으로 비극적인 최후를 보내야 했다는 것이다.

스탈린 치하의 소련은 급격히 분위기가 바뀌고 조선 사회주의 운동의 지도자 여럿이 일제의 밀정이라는 의심을 받는다. 1937년 감단야가 마찬가지의 혐의로 소련 경찰에 체포되면서 주세죽도 '위험분자'로 분류되어 카자흐스탄의 크줄오르다라는 지역으로 5년 유배형을 받는다. 그런데 형기가 끝나고 1945년 조선이 독립한 후에도 그녀는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소설의 초반부는 이 시절의 주세죽이 스탈린에게 보내는 청원의 형식을 띄고 있다.

고국으로 돌아가게 해 달라는 그녀의 청원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결국 주세죽은 해방된 조국을 밟아보지 못하고, 죽은 줄 알았던 박헌영과 재회도 못한 채 1953년 눈을 감는다.

주세죽의 삶이 해방이후 70년이 지나 '소설'의 형식을 빌어서야 우리와 만날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체로 남북한 역사의 비극이자 국제공산주의 운동의 아이러니다. 현실사회주의의 모순을 딛고 새로운 운동을 일구는 일은 주세죽 같은 이들의 치열한 인생 구비마다의 고뇌와 결단을 복원하는 일과 동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여성을 남성의 종처럼 취급하는 봉건적 악습은 물론 타락한 소련 공산당과도 맞서야 했다. 주세죽을 '맑스걸', '레이디 레닌', '박헌영의 아내' 정도로 취급하는 것은 그녀가 살아온 삶과 맞지 않다. 그녀는 조선의 혁명가다.

주세죽은 함흥 태생(1901년)으로 3.1운동 이후 함흥과 서울, 상해, 모스크바 등지에서 불굴의 의지로 독립운동과 사회주의 운동, 여성운동을 전개했다. 그녀는 〈상록수〉의 저자 심훈이 일찍 '대리석으로 깎은 얼굴'로 표현했을 정도로 1920년대 '조선 최고 미인'으로 불렸다. 1921년 상해에서 박헌영과 결혼했고, 박헌영이 일제에 세 번째 체포된 후 그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박헌영의 사상적 동지이자 친구인 김단야와 1934년 모스크바에서 재혼했다.

김단야는 1938년 일본의 밀정으로 몰려 소련 당국에 의해 총살당했고 주세죽 또한 사회적 위험분자로 분류돼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로 유배됐다. 주세죽은 해방 후 그의 첫 남편 박헌영이 죽지 않고 살아 조선 혁명운동을 지도하고 있음을 알았다. 박헌영과 사이에 난 딸 박영(비비안나)은 모스크바에서 성장해 유명한 무용수가 됐다. 주세죽은 박헌영이 6.25전쟁의 책임으로 김일성으로부터 미제 간첩으로 몰리자 딸을 만나러 모스크바로 가는 도중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주세죽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코레예바'는 박헌영이 주세죽에게 붙여준 러시아식 이름이다. 《코레예바의 눈물》은 소설로 이름 붙여졌지만 격동의 근현대사 속에서 한민족이 겪었던 비극을 외면하지 않고 민중해방운동을 전개했던 주세죽의 치열했던 삶을 되짚은 역사기록에 가깝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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