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당쟁과 인물들에 대한 깊은 성찰”

이 책은 조선시대 선조 연간의 당쟁을 정조준 했다. 선조 8년 '동서분당'에서 시작해. 기축옥사가 일어나고 일단락 된 선조 23년까지 15년간을 집중적으로 살폈다.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는 저자 이정철 박사가 〈대동법, 조선 최고의 개혁〉이라는 책을 낸 후 받았던 곤혹스런 질문이었다고 한다. 그 물음에 대한 저자의 치열한 고민의 결과물이 이 책이다.

1575년 조선의 14대 임금 선조 8년,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사림(士林) 내부의 갈등, 이른바 '동서분당'이 발생한다. 이렇게 시작된 당쟁은 정치적 사건들로 끝없이 변주되다가 선조 23년 기축옥사로 파국을 맞는다. 이 책은 이과정과 인물들에 밀착하여 놀라울 만큼 생생하게 드러낸다. 크게는 이이와 선조의 행적을 중심으로 살피되, 200여명이 넘는 수많은 관련인물들의 동선을 드러내고 그 동선 아래에 흐르는 의도까지도 밝힌다.

당쟁사라면 주선후기가 절정인데 저자는 선조 8년부터 23년까지 그 15년에 주목했다. 한 세대 앞선 퇴계 이황이 살았던 문정왕후 시대에는 물론이고, 16세기 초 등장한 이래로 사림은 정치의 주체라기보다 사화로 집약되는 탄압을 견디며 스스로를 지키는 것이 우선이었다. 선조 집권 이후 드디어 사림의 정치적 공간이 열렸던 것이다. 조선시대 통틀어 이 시대만큼 도덕적 확신과 정치적 이상(理想)이 드높이 외쳐진 시대도 드물었다.

그런데 곧 '동서분당' 사태를 시작으로 사림은 분열했다. 왜 도덕적, 정치적 이상에 대한 사림의 오랜 집단적 열망이 그들 중 누구도 원치 않았던 거대한 파국으로 귀결되었는가? 훌륭한 개인의 인격과 무관하게, 그들의 진정성에 독립하여 작동하는 정치적 힘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우선 저자는 선조 8년 심의겸과 김효원이 서로 악감정을 가지면서 당이 갈라졌고(동서분당), 이후 서로를 미워하며 죽고 죽이는 싸움(기축옥사)이 이어졌다는 표면적 진단에 머물지 않는다. 당쟁은 개인감정 이상이라는 것이다. 실제 당쟁은 권력투쟁에서 빚어지는 "보편적 정치 현상"이라는 게 저자의 기본 시각이다. 따라서 책은 "그 시대가 지향한 가치와 정치제도 및 관행 속에서" 당쟁을 살핀다.

책 가운데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 중에서도 이이와 선조라는 두 '정치인'은 중심에 우뚝 서 있다. 이이의 경우, 동서 갈등이 심해지자 '조제보합론'을 주장한다. 정파간 세력균형(조제)과 대화합(보합)을 뜻하는 말이다. 사림이 하나로 힘을 합해 선조를 압박하며 국정개혁을 이끌어내자는 것이었다. 십만양병설은 이 가운데 일부다. 그러나 그는 선조 17년(1584) 갑작스럽게 숨졌고, '좌절된 이이의 꿈'은 안타까움으로 남는다.

이 책은 '정치인 선조'도 복원해 낸다. 비록 이이 홀로 구체적으로 요구한 것이지만, 선조는 국정개혁의 요구를 시종일관 거부한다. 오직 왕권 강화가 그의 목표였다. 사림의 분열은 선조가 움직일 공간을 만들었고 국정개혁은 멀어져만 갔다. 임진왜란을 대비하지 못한 조선 정치권 전체의 무능함은 이런 구조에서 배태됐다. 

저자 이정철은 올바른 정치적 대의가 있을 때와 없을 때의 당쟁은 큰 차이를 낳는다 한다. 동서분당에 대해 "당연히 정치적 욕망을 가장 큰 동력으로 움직였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대의가 그것을 제어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며 대의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과거든 현재든 대의는 비록 수적인 우세를 차지하지 못해도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한 사회의 공적 합의를 만드는 핵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