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노금 나주시의원

하루에도 두세 번, 아니 너 댓 번 이상 눈길을 주며 신호등을 바라보면서 잠시 멈춰서 바라봐야 하는 곳이 나주시청 앞에 있는 완사천이라는 곳이다.

다른 곳이라면 몰라도 그 곳은 내 자신이 의원이라는 신분의 직을 수행하기 위해 들고 나는 곳이기도 하지만 20여 년 전 <고려를 건국한 왕건과 장화왕후>라는 동화를 지역신문에 연재한 후 한 편의 동화책으로 펴낸 인연 때문인지 완사천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은 늘 애틋함 이상의 그 무엇이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나주시의원이 된 직후 의욕이 지나쳐서 맨 먼저 담당 공무원을 닦달하고 괴롭힌 것이 시청 앞 완사천의 가로변 수목과 공원의 정비였었다.

하늘의 별이라도 딸 수 있을 것 같은 호기롭던 의원 초년병 시절 7, 8월은 이 부분에 관한한조금의 타협이나 물러섬 없이 공무원과의 한판 승부를 벌였지 싶다. 지나치게 길게 땅으로 축 쳐져있던 가로수목들이 전지가 되어 산뜻하게 지면에서 1미터 이상 올라가고 잡목과 수풀이 우거져 뱀 나올 것 같던 공원의 모습이 아연 산뜻하게 단장 되었을 때의 기쁨을 기억한다.

그때는 가끔씩 퇴근 때면 무언가에 홀린 듯 완사천을 한번 씩 둘러보는 일이 내게 가장 의미 있는 일이 되었었다. 고려 태조의 왕후 중 한분이 되었으며 고려 제 2대 혜종의 모후가 되신 장화왕후의 행적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녀가 우리 역사상 가장 큰 변혁기요 전환기에 살았다는 것과 그 시기의 시대 상황을 증언해 줄 수 있는 주요인물의 한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버들낭자 장화왕후 오 씨가 태어나서 활동하던 9세기말에서 10세기 전반의 시기는 통일신라 말기와 후삼국 시대를 거쳐 고려의 건국과 고려의 후삼국 통일이 이루어지는 우리 역사상 일찍이 그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대 격동의 시기였다.

이런 상황에서 왕건이 고려 왕조의 태조가 되기 이전이나 이후에 그의 일관된 관심사는 지방의 유력한 지방호족을 회유하고 그들의 협력을 얻는 것이었을 것이다. 버들낭자 오 씨의 가문은 당시 친가나 외가나 모두 대대로 나주지방의 유력한 지방 호족 가문이었음을 말해주는데  역사는 한미한 출신이라는 표현을 하고 있어 다소 혼란스럽기는 하다.

그러나 이는 29명의 정비들 모두가 당시 개경을 중심으로 중앙호족 내지는 대단한 세력을 가진 지방호족들의 딸들이었음을 부각시키고자하는 표현으로 여겨두고 싶다. 너무나 당당하고 큰 세력을 등에 업은 29명의 왕비들 중 자신의 세력이라고는 단 한사람 없는 상황에서 태조가 왕위 계승권자로 장화왕후소생 무(혜종)를 정하는 과정은 참으로 통쾌하고 드라마틱하다.

목마른 왕건에게 버들잎을 띄운 물바가지를 건넨 그 지혜롭고 사려 깊은, 그리고 왕실의 상황을 꿰뚫으며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그 통찰력과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분별력과 통 큰 추진력으로 정치적 목적을 성취한 여성이었다. 장화왕후가 아니고는 해낼 수 없는 일이었기에 태조는 그 복잡한 왕위계승권을 지혜로운 여인 장화왕후 소생에게 선물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 한다.

나주는 이처럼 고려 왕실의 든든한 후방요지로 제 8대 현종이 거란의 침입을 당해 개경을 떠나 나주에 몽진 와서 (신하들은 혹독한 추위를 못 이겨 무주나 전주에 머물기를 청하였으나 믿을 곳은 할아버지 왕건의 혼이 서린 나주밖에 없다며 굳이 나주로의 몽진을 고집하여) 9일간 머물다 가신 인연이 고려 왕실에 대한 공으로 인정이 되어 <목>으로 승격이 된 것이다. 이런 인연으로 나주는 지방행정의 중요거점이 되었고 이는 조선왕조까지 그대로 이어진 것이다.

천년 목사골의 유래가 여기에서 비롯되었고 한편의 감동적인 이야기일 수밖에 없는 왕건과 장화왕후의 이야기는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조금의 확장성도 없이 나주 완사천에만 머물러 있음이 안타깝다. 혁신도시에 이주해온 젊은 학부모들에게 이런 나주 역사를 들려 줄때면 얼마나 나주인으로서의 자부심이 컸는지 모른다.

그리고 자녀를 둔 그들 역시 옛 고려의 역사와 영웅들에 둘러싸인 나주, 그 현장이 자신들이 숨 쉬고 살아갈 땅이라는 것에 열악한 교육여건과 정주여건 등은 충분히 살아가며 기다릴 수 있다는 결의 비슷한 표정들을 엿보았던 경험이 있다.

완사천을 오갈 때 마다 나는 소박한 꿈들을 꾼다. 저곳 완사천에 많은 이들이 몰려와 나주 여인 오 씨와 꿈꾸었던 왕건의 고려 건국에 대한 큰 꿈을 배우고 사랑을 하되 그런 지혜로움으로 하기를, 그리고 자신의 꿈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완사천의 여인처럼 담대하되 분별력 있는 처신으로 결단하며 나아가기를 소망해 본다.

그러기 위해서 주차장 시설이나 진입로 부분들은 어디서부터 터주고 다시 연구해야 할까? 지금과 같은 구조에서는 백날이가도 두세 명, 큰 맘 먹고 들리러온 관광객조차도 완사천 주변을 빙빙 돌다가 욕 만 하다 가버릴까 싶어 걱정이다. 아무래도 다음 시정 질의는 다시 이 부분을 들고 나서야 할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