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노금 나주시의원

사는 것이 힘들다 힘들다 해도 육십 평생 이토록 심신의 아픔이 극에 달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신문이고 티비고 간에 펼쳤다하면 우리 서민들의 머리로는 상상을 초월하는 “우”째 이런일이...,싶은 청와대 높으신분의 초대형 권력형 비리는 가슴을 치지 않고는 들어 넘길 수 없는 통분, 그 자체였다.

사드배치 논란에 상여까지 앞세우고 곡소리를 내는 성주 주민들의 모습은 달려가 뙤약볕에서 함께 기진하도록 함께 울어주고 싶을 정도로 절박한 모습들이었다. 거기에 대기업 재벌 회장님의 민망하신 성매매 사건까지 도대체 이 나라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지도자 복이라고는 지지리도 없는 백성의 눈물은 피눈물 그 자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한순간의 쾌락을 위해 성매매 후에 여러 여성들에게 나눠주는 500만원과 그 재벌님의 기업 현장에서 일하다 얻은 병으로 죽어가는 어린소녀에게 500만원으로 ‘퉁치자’는 기업은 도대체 지금 우리 국민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 것인지? “어린 딸을 하루라도 살려 보려고 그 돈을 받을 수밖에 없었노라”는 아버지의 피눈물은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원통한 눈물이었다. 죄도 정도껏 지어야 하고 타락도 정도껏 해야지 이건 정말이지 하늘과 땅이 맞닿은 절망의 끝이다.

고려말 정도전은 권문세족의 치부와 음란, 혼탁함이 극에 달함을 보고 민란이 일어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태조 이성계를 도와 백성이 하늘이 되는 맑은 나라를 세웠다. 위대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가장 많은 피와 땀을 쏟았던 한 어린 근로자 소녀의 죽어가는 몸값과 그 소녀의 핏 값으로 이룬 대재벌 총수님의 한순간의 쾌락을 위한 대가 앞에서, 이것이 이 땅 이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다는 절망감에 몸서리 처진다.

대학, 대학원을 나와도 도무지 직장다운 직장에 취직 같은 것조차 할 수 없는 나라, 어쩌다 결혼을 하고 애라도 하나 생기면 누리과정 핑퐁치는 피 튀기는 싸움을 보면서 유치원이니 어린이집이니 하면서 운수를 점쳐야 하는 나라, 그러면서도 애는 더 많이 낳으라고 윽박지르는 이 나라의 엄마들은 이제 극소수 지배계층을 위해 개나 소를 많이 낳으라고 윽박지르는 소리로만 들려 차라리 이민이라도 가고 싶다고 한다.

번듯한 대학까지 나오고도 결혼은커녕 취업도 못한 자녀의 학원비를 위해 다시 돈 나오는 현장을 찾아 헤매는 육십 넘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한숨은 어디에 가서 보상을 받아야 할까? 이럴 때 도망이라 안위하며 숨어들 곳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내가 이럴 때 가는 곳은 고작해야 산포의 산림자원 연구소 이다. 여기서 고작이라고 표현 했지만 이는 아주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는 배부른 표현일 것이다. 이 아름답고 고마운 공간을 처음 발견했을 때 나는 많이 흥분 했었다. 오래 전  가을이 시작될 무렵 꽃무릇 이라는 꽃을 이곳 산림자원 연구소 입구에 들어서면서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영광이나 함평의 그것처럼 넓은 군락지에서 만개한 꽃무릇을 봤을 때 하고는 또 다른 느낌이 있었다. 겨우 듬성듬성 여기저기 피어나고 있는 꽃무릇 이었지만 정말이지 어여쁘고 반가웠던 꽃들이었던 것이다.

정성스럽게 잘 정돈된 숲길은 아늑하고 포근하였고 간간이 쉬어가라는 듯 놓여 있는 벤치에 앉아서는 큰 호사나 누리는 듯한 황송스런 기분을 맛보기까지 하였던 것을 기억한다. 늠름한 메타쉐콰이어 길이나 편백의 푸른 숲도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그 뒤 봄 여름 가을 겨울 할 것 없이 눈이오나 비가 오나 아프면 아픈 대로 좋은 일이 있으면 좋은 일이 있는 그대로 그곳을 찾아 수목과 꽃들과 바람과 새들의 지저귐에 나의 모든 아픔들을 내어 놓고 하는 것이다.

오늘아침 들른 그곳 메타세콰이어 숲길에는 과연 보랏빛 맥문동꽃이 싱그럽게 피어나고 있었다. 맥문동꽃이 한 달여간 그렇게 피고 지는 동안 얼마 안 있으면 이제 하이얀 옥잠화가( 대개의 경우 열에 예닐곱은 이 꽃을 백합이라 부른다) 피어나 그 순결한 모습과 향기로 많은 이들을 행복하게 해 줄 것이다.

옛 여인들이 머리에 꽂는 비녀를 닮았다 해서 옥잠화라는 아름다운 꽃 이름에 순결한 그 모습과 향기는 어디서나 제일 좋아하는 꽃으로 자랑하는 꽃이다. 옥잠화를 기다리는 마음에 많이 행복해 진다. 그렇다 맥문동꽃 다음은 누가 뭐래도 옥잠화의 계절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가슴이 갑자기 두근거릴까? 여름가면 가을 오고 국민들의 원통함이 하늘에 닿으면....? 말없는 대다수 백성들의 이 큰 상실감과 억장 무너지는 소리가 하늘에 닿으면...? 하늘에 닿으면...? 제어가 되지 않고 와락 두려워지는 물음이 계속되는 이 상황을 어찌 해야 할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