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학으로 스캔한 추억의 한국시 32편”

"시는 말로 지은 집입니다. 벽돌로 집을 짓듯이 말 하나하나를 쌓아 완성한 건축물입니다. 초가집이니 벽돌집이니 하듯이 시 한편은 곧 한 채의 '말집'인 겁니다. 그런데 집이라고 하면 대개, 아니 모든 경우 그 집의 겉모양을 생각하게 됩니다.

집을 그려보라고 아이들에게 말해보세요. 지붕을 그리고 칠을 하고 그리고 대문과 담을 그립니다. 사진을 찍어도 집은 언제나 그 외형만 보이게 찍힙니다. 실체의 집은 그 안에 있는데 말입니다. 사람이 살고 활동하는, 막상 중요한 집의 내부 공간은 볼 수가 없습니다. 이젠 아예 그 닫힌 내부 공간을 잊고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가령 어느 날 으스름한 저녁, 길을 지나나다 불빛이 새어 나오는 창문을 보았을 때 말입니다. 방 한구석이 얼핏 보이고 아이들이 재재거리는 말소리도 들립니다. 어떠셨어요? 그 느낌 말예요. 한마디로는 표현할 수 없는 어떤 친숙함, 평화로움. 그러면서도 내가 사는 세상과는 다른 것 같은 신비감."

책의 서문 일부로서 저자 이어령은 시에 대한 고정관념을 얘기하면서 이 고정관념은 집을 겉모습으로만 아는 아이들의 생각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그러나 시는 매우 중요한 내용을 지니고 있다. 좀 더 가가이 가면 느낄 수 있다고 얘기한다, 시의 어려움에 대한 이어령의 탁견이다.

《언어로 세운 집》은 1996년 조선일보에 연재되었던 연재물 '다시 읽는 한국시'를 20년 만에 책으로 출간한 작품이다. '다시 읽는 한국시'는 저자 이어령 교수가 직접 선정한 한국의 대표적인 명시 32편을 독창적인 시각으로 해설한 것이다. 당시 연재 10개월 동안 명시와 명문의 만남이라는 호평 속에 수십만의 독자를 매료시켰다. 시대적 배경이나 시인의 전기적 배경에 치우쳐 시를 오독해온 우리에게 시어 하나하나의 깊은 의미를 일깨워주고, 문학 텍스트 속에 숨겨진 상징을 기호학으로 분석함으로써 일상의 평범한 언어에 감춰진 시의 아름다운 비밀을 파헤쳐 보여준다.

그저 시에 대한 주관적 감상평을 나열한 뻔 한 해설서가 아닌, 30년간 문학을 가르쳐온 이어령 교수의 시문학수업을 담아낸 이 책은 「진달래꽃」, 「향수」, 「서시」, 「광야」 외에도 학창시절 국어교과서에 실려 있었지만,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도 머리가 아닌 가슴속에 각인되어 있는 32편의 명시들이 깊은 시 세계를 보여준다.

「진달래꽃」, 「향수」, 「서시」, 「광야」, 「국화 옆에서」, 「사슴」, 「나그네」, 「가을의 기도」 …. 학창 시절 국어 교과서에 실린 한국의 대표적인 명시들이다. 고단한 삶의 파고에 지쳐 영어단어, 수학 공식은 다 잊어버렸어도 이 시들만큼은 우리 기억 속에 선명하게 살아 있다. 그것은 이 시들이 머리가 아닌 우리 가슴 속에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제목만 들어도 아련한 느낌에 휩싸이고, 누구나 한두 소절쯤은 읊을 수 있는, 우리 영혼 속에 시의 이상(理想)처럼 자리 잡은 시들. 그러나 우리가 자랑스러워하고 사랑하는 그 시들의 깊은 세계를 우리는 정말로 이해하고 있을까? 김소월의 '진달래꽃'이 이별을 노래한 시가 아니라 사랑의 기쁨과 열정을 노래한 시라는 사실을 아는가? 한용운의 '님의 침묵' 속의 님은 도대체 누구일까?

저자의 꼼꼼한 재확인과 제자 김옥순 박사의 각주까지 덧붙여 세상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이 책은 시를 읽어도 시를 모르는 이 시대의 시맹들에게 시의 깊은 비밀을 밝혀주는 빛을 던져준다. 각기 깊은 비밀을 밝혀주는 빛을 던져주고 있다. 이 책은 20년 전에 우리를 매료시켰던 이 글의 존재를 알지만 제대로 접할 수 없어 아쉬움을 토로하는 많은 사람들의 저자에 대한 노랜 설득 끝에 출판이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