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 살 소년 모모의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

40여 년 전에 읽었던 소설을 다시 읽고 소개한다. 당시 문학에의 꿈을 키우면서 문학 월간지 〈문학사상〉을 열독하던 중 1976년 문학사상 출판사에서 출판한 이 소설을 처음 읽었다. 《자기 앞의 생》은 1975년 콩쿠르 상 수상작으로 이 책의 저자 에밀 아자르가 수상을 거부함으로써 당시 프랑스 문학계에 파문을 일으켰다.

출판사에서도 원작자를 몰라 광고를 통해 작가를 찾기까지 한 이 책의 저자 에밀 아자르는 가명이었다. 이 책의 저자는 1956년 〈하늘의 뿌리〉라는 작품으로 이미 쿵쿠르 상을 수상한 로뎅 가리로서 그가 1980년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한 이후 그가 남긴 유서를 통해 밝혀졌다.

로뎅 가리는 에밀 아자르라는 가명으로 발표한 《자기 앞의 생》으로 또 한 번 콩쿠르 상을 받아, 프랑스 4대 문학상 중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콩쿠르 상을 두 번 수상한 유일한 작가가 되었다.

《자기 앞의 생》은 삶에 대한 무한하고도 깊은 예정이 담겨 있는 소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한 아픈 소설이다. 누가 삶을 두고 ‘등허리에 무거운 짐은 얹고 산을 향해 조심조심 오르는 것’이라고 했던가.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 모모에 등에 지워진 삶의 무게는 산을 오르기는커녕 어린이에겐 가만히 서 있기도 쉬운 짐이 아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정작 가슴 아픈 것은 어린 모모의 인생을 짓누르는 그 삶의 무게가 아니다. 차라리 힘들다고 주저앉아 운다면, 발버둥 치며 제발 이런 환경에서 벗어나 나게 해달라고 때를 쓴다면 모모의 삶을 읽는 우리가 이렇게 힘들고 가슴 아프지 않을는지도 모른다.

삶의 무거움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어린 모모는 인생의 슬픔을 내색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시니컬한 냉소로 그 무게를 떨쳐내려 한다. 모모의 그런 냉소가 무수한 눈물들이 쌓인 알갱이들이란 사실을 잘 알기게 가슴이 더욱 아리고 시린다.

이 책은 자신이 10살인 줄로만 알고 있는 14살의 아랍소년 모모의 눈으로 펼쳐지는 소설이다. 창녀 어머니에게 태어난 모모는 창녀들의 아이를 도맡아 키우는 유태인 로자 아줌마에 의해서 자란다. 육중한 몸매에 아유슈비츠 수용 당시의 트라우마를 보이는 로자 아줌마를 비롯해서 초라한 행색이지만 현명한 하밀 할아버지, 여장 남자 창년 롤라 아줌마, 은다, 그리고 의사인 카츠 등을 주변 인물로 이야기는 엮어진다.

어린아이의 눈으로 비치는 것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생활과 삶은 초라하고 비참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통해서 세상을 배우고 진리를 깨달아 가는 한 소년의 성장기가 담겨져 있다.

자신의 삶이 이미 사회로부터 소외돼 있다는 것을 주인공 모모는 일찌감치 깨닫지만 서로를 감싸 보듬는 모습은 그의 삶을 지탱하게 되는 큰 힘이라는 것을 발견해가기 시작한다. 자신을 키워준 로자 아줌마가 뇌경색으로 몸을 쓰지 못하고 거꾸로 모모가 아줌마를 돌보는 모습에서 사랑을 받고 그것을 베풀어 가기 시작하는 모모의 모습은 이 책을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가슴 한켠을 먹먹하게 만든다.

작가는 자신의 실제 나이보다 많은 나이를 살고 있는 열네 살 모모의 눈을 통해 이해하지 못할 세상을 바라본다. 모모의 눈에 비친 세상은 결코 아름다운 세상이 아니다. 아이의 눈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세상은 더욱 각박하고 모진 곳이다.

소설가 조경란은 “《자기 앞의 생》은 비범한 일을 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비범한 일이란, 사랑을 깨닫고 그것을 실천하는 일이다. 모모는 내게 말해주었다. 슬픈 결말로도 사람들은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